3. 쿠나르 주의 게릴라 부대의 봉쇄와 격멸 by 소령 구칼로프(V. A. Gukalov)


(구칼로프(V. A. Gukalov)소령은 1979년에서 1981년까지 아프간에서 공수사단의 선임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했었다.) 


 1980년 12월, 쿠나르 주에서는 50명의 게릴라부대가 파키스탄 국경과 쿠나르강을 건너서 아프간 쿠나르 주 지역으로 잠입해 왔다. 우리는 챠가사라이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계곡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계속에서 휴식을 위해 잠시 멈춰 있는 사이에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지휘관은 다음과 같은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12월 15일 04:00시에 1개 공수중대를 투입하여 계곡의 남쪽 능선을 봉쇄하고, 동시에 공수소대와 연대 공수 수색소대를 투입하여 적의 북쪽과 서쪽의 퇴로를 차단한다. 05:00시에는 나머지 공수대대(전술한 1개 공수중대 제외)를 투입하여 계곡에 있는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적을 탐색 격멸한다.




 12월 14일 22:00시, 봉쇄부대가 GAZ66트럭으로 이동을 개시하였다. 이 트럭은 전조등을 소등한 채 대대 숙영지를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챠가사라이를 향해 북쪽으로 이동하였따. 무자헤딘 정찰대를 기만하기 위해서, 몇대의 GAZ66트럭은 대대 숙영지에서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이 트럭은 계곡 남쪽 2km 지점에 첫 번째 제대를 하차시키고,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첫 번 째 제대는 하차 후, 봉쇄 지점까지 도보로 이동하였다. 나머지 봉쇄부대 역시 계곡 북쪽에서 하차 후 봉쇄지점까지 도보로 이동하였다. 12월 15일 04:00시에 계곡으로 이르는 모든 퇴로는 차단되었다.

 05:00시에 대대(봉쇄부대는 제외)는 계곡에 대한 위력수색작전을 시작하였다. 무자헤딘의 경계인원이 우리 부대를 06:00 경에 발견하자, 그들이 통상 수행하던 전술대로, 일부인원으로 우리 탐색격멸부대의 전진을 지연시키고 본대는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철수를 시작한 무자헤딘 부대는 우리 매복부대(봉쇄부대)에 모두 포착되어 섬멸됐다. 적은 24명이 죽고 4며잉 생포되었으나, 우리는 1명의 부상자만 발생하였다(그림3 참조)


 프룬제 군사학교 강평: 이 절은 예하부대를 이용해서 적을 기만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만요소를 분석해 보면, 완벽한 등화관제, 트럭을 이용한 봉쇄부대 투입, 트럭을 이용한 양동(반대방향으로 기동), 최종봉쇄지점까지 도보로 이동 등이 포함된다. 이 절은 시간의 제한으로 인해 수색정찰도 제대로 실시해 보지 못했고, 증원 및 지원부대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일궈낸 빛나는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s. 옛날에 갑갤이 누가 올리던데 갑자기 왜 다 삭제했나? 무슨 보안문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