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중요한데. 만이 중요해.
발해만이 있는 천진 북경, 경기만에 있는 인천 서울, 도쿄만이 있는 도쿄
쀽진(space7130)2026-02-10 11:49
베이징은 전통적으로 유목민들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그러다보니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이자 북쪽에 기반을 둔 왕조의 중심지로 꽤 오래 자리매김함.
바닐라스카치(maronim)2026-02-10 11:51
답글
현대의 베이징은 명-청-현대 중국으로 이어진 연장선에 있는거고 개별 왕조 수도로서의 역사는 남북조시대까지 올라가긴 함.
바닐라스카치(maronim)2026-02-10 11:52
답글
타이페이 같은 경우는 국부천대시에 이미 타이완섬 경제, 행정 중심지로 어느정도 개발이 진행된 상태여서 수도로 삼기 좋았고
바닐라스카치(maronim)2026-02-10 11:54
답글
유목민 저지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결국 유목민과 너무 가까워서 따잇 당했잖어ㅋㅋ
익명(bbong33kk1)2026-02-10 12:15
답글
@ㅇㅇ
사실 따잇은 이자성한테 당한거긴 함. 이자성반란을 확실히 진압하고 홍승주군을 북방으로 돌렸으면 북경이 함락되는 사태까진 안 갔을 것
익명(175.198)2026-02-10 12:22
타이페이는 청나라에 복속되기 전까진 별볼일 없는 지역이었고 오히려 대만섬의 수도로 기능한건 남쪽의 타이난임..하지만 청에 복속된 후 대만에 한족이 대거 이주하며 대륙과 연결이 용이한 타이페이가 급속도로 개발되며 수도로 발전함.
muralist(livefire11)2026-02-10 11:56
베이징은 화북평야 주요 거점이자 북방 유목민 대비 감시하기 최적화된 위치고 어차피 대운하때매 교통도 괜찮고
익명(trigger0604)2026-02-10 11:57
답글
현대 중국 수도 된건 원-명-청까지 근 천년동안 중국 통일왕조 수도로 자리잡은채 유지되었다보니 그 연장선상으로 된 느낌이 강하긴 함.
그리고 경쟁자인 난징은 중화민국의 본거지였던 느낌이 강했던 것도 있고
익명(trigger0604)2026-02-10 11:59
명이 원래 난징이 수도였음. 명 연왕 시절 베이징 인근 북부가 근거지였던 주체가 황위를 찬탈하고 영락제로 즉위한 뒤, 자신의 근거지를 도읍으로 천도하면서 수현대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기초를 마련함. 다만 이게 군사적으로 그렇게 좋은 선택이였나로는 좀 아니라고 보는게, 베이징은 너무 북쪽에 있어 이민족의 공격에 취약했음. 다만 만주쪽은 산해관으로 틀어막을 수 있었는데 내몽골쪽에서 넘어오는 공격은 수틀리면 베이징까지 직빵이라 포위당한적도 있었고.. 그래서 명은 돈을 많이 써서 만리장성을 개축하는 등 투자를 많이 해야 했음 - dc App
어린이회원(hanyh22232)2026-02-10 12:00
답글
다만 영락제 시절도 그렇고 한동안은 명의 군사력이 굉장히 강대했기 때문에 명이 공세를 나서는 입장이었지 수세로 돌아가는 입장은 아니였어서
근데 나중에 도읍으로 굳어지고 나서 보니까 이거 몬가몬가다 이거야.
그 뒤에 이자성의 난이 있고 청군이 베이징을 접수하면서 베이징을 도읍으로 삼는데, 이때는 군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별로 없었던게 이미 청 황제가 몽골의 대칸이 되면서 팔기체제 안으로 몽골인들을 흡수, 같은 나라가 되어버리미 수도를 둘러싼 안보문제가 증발했기 때문임 - dc App
어린이회원(hanyh22232)2026-02-10 12:02
답글
오히려 그 덕에 유목민 통제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수백년 버틴거 아님? 서쪽 유목민들은 통제 실패해서 얻어맞기도 했지만 동북부만큼은 암군 연타로 좆망하기 전까지 계속 통제해내고 있었음
솔직히 수도 난징이었으면 진작에 어디한테든 털려서 송처럼 북중국 상실했을거같음 베이징이니까 이악물고 통제하면서 막아온거지
익명(sksmsskqle0205)2026-02-10 12:04
답글
@ㅇㅇ
어쨌든 위험감수를 해야했던거지. 근데 송도 처음부터 수도가 아얘 항저우에 있던건 아니었음. 개봉부는 생각보다 북경이랑 가깝고 위도로 치면 상하이 근처임. 걍 송은 그냥 여진족이랑 요나라 밀고나서 통수친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다보니 좆박았을 뿡 - dc App
어린이회원(hanyh22232)2026-02-10 12:11
화북평야의 평야지대만 한반도+일본보다 크고 그 사이를 그 거대한 황허강이 관통하면서 수자원을 공급함
양쯔강 중심의 장강평야도 있는데 여긴 화북만큼 크거나 평탄하진 않음
강도 중요한데. 만이 중요해. 발해만이 있는 천진 북경, 경기만에 있는 인천 서울, 도쿄만이 있는 도쿄
베이징은 전통적으로 유목민들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그러다보니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이자 북쪽에 기반을 둔 왕조의 중심지로 꽤 오래 자리매김함.
현대의 베이징은 명-청-현대 중국으로 이어진 연장선에 있는거고 개별 왕조 수도로서의 역사는 남북조시대까지 올라가긴 함.
타이페이 같은 경우는 국부천대시에 이미 타이완섬 경제, 행정 중심지로 어느정도 개발이 진행된 상태여서 수도로 삼기 좋았고
유목민 저지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결국 유목민과 너무 가까워서 따잇 당했잖어ㅋㅋ
@ㅇㅇ 사실 따잇은 이자성한테 당한거긴 함. 이자성반란을 확실히 진압하고 홍승주군을 북방으로 돌렸으면 북경이 함락되는 사태까진 안 갔을 것
타이페이는 청나라에 복속되기 전까진 별볼일 없는 지역이었고 오히려 대만섬의 수도로 기능한건 남쪽의 타이난임..하지만 청에 복속된 후 대만에 한족이 대거 이주하며 대륙과 연결이 용이한 타이페이가 급속도로 개발되며 수도로 발전함.
베이징은 화북평야 주요 거점이자 북방 유목민 대비 감시하기 최적화된 위치고 어차피 대운하때매 교통도 괜찮고
현대 중국 수도 된건 원-명-청까지 근 천년동안 중국 통일왕조 수도로 자리잡은채 유지되었다보니 그 연장선상으로 된 느낌이 강하긴 함. 그리고 경쟁자인 난징은 중화민국의 본거지였던 느낌이 강했던 것도 있고
명이 원래 난징이 수도였음. 명 연왕 시절 베이징 인근 북부가 근거지였던 주체가 황위를 찬탈하고 영락제로 즉위한 뒤, 자신의 근거지를 도읍으로 천도하면서 수현대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기초를 마련함. 다만 이게 군사적으로 그렇게 좋은 선택이였나로는 좀 아니라고 보는게, 베이징은 너무 북쪽에 있어 이민족의 공격에 취약했음. 다만 만주쪽은 산해관으로 틀어막을 수 있었는데 내몽골쪽에서 넘어오는 공격은 수틀리면 베이징까지 직빵이라 포위당한적도 있었고.. 그래서 명은 돈을 많이 써서 만리장성을 개축하는 등 투자를 많이 해야 했음 - dc App
다만 영락제 시절도 그렇고 한동안은 명의 군사력이 굉장히 강대했기 때문에 명이 공세를 나서는 입장이었지 수세로 돌아가는 입장은 아니였어서 근데 나중에 도읍으로 굳어지고 나서 보니까 이거 몬가몬가다 이거야. 그 뒤에 이자성의 난이 있고 청군이 베이징을 접수하면서 베이징을 도읍으로 삼는데, 이때는 군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별로 없었던게 이미 청 황제가 몽골의 대칸이 되면서 팔기체제 안으로 몽골인들을 흡수, 같은 나라가 되어버리미 수도를 둘러싼 안보문제가 증발했기 때문임 - dc App
오히려 그 덕에 유목민 통제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수백년 버틴거 아님? 서쪽 유목민들은 통제 실패해서 얻어맞기도 했지만 동북부만큼은 암군 연타로 좆망하기 전까지 계속 통제해내고 있었음 솔직히 수도 난징이었으면 진작에 어디한테든 털려서 송처럼 북중국 상실했을거같음 베이징이니까 이악물고 통제하면서 막아온거지
@ㅇㅇ 어쨌든 위험감수를 해야했던거지. 근데 송도 처음부터 수도가 아얘 항저우에 있던건 아니었음. 개봉부는 생각보다 북경이랑 가깝고 위도로 치면 상하이 근처임. 걍 송은 그냥 여진족이랑 요나라 밀고나서 통수친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다보니 좆박았을 뿡 - dc App
화북평야의 평야지대만 한반도+일본보다 크고 그 사이를 그 거대한 황허강이 관통하면서 수자원을 공급함 양쯔강 중심의 장강평야도 있는데 여긴 화북만큼 크거나 평탄하진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