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챠리카 계곡의 주거지 탐색 by 중령 마코비에프(A. L. Makkoveev)
(마코비에프 중령은 1979년 12월부터 1981년 11월까지 아프간에서 기계화 소총중대를 지휘하였다. 그에 대한 공로로 "소련 육군의 조국 봉사 훈장" 3등급을 수상하였다)
1980년 겨울, 카불과 인근의 아프간 주들은 전투가 없이 조용하였다. 그러나 봄이 되면서 게릴라부대들의 조직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장갑차(BMP)가 편제된 제7기계화 소총중대(제108 기계화 소총사단의 예하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7월 21일 아침, 갑자기 상급부대로부터 명령을 수령하였는데, 카불에서 챠리카로 이동한후, 현재 종심 깊은 강습과 탐색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산악 대대에 작전통제되어 그 부대 전력을 증강시키라는 것이었다.
전투준비는 주둔지에서 시작되었다. 중대는 완편된 인원과 무기,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3일분의 전투식량(소련군의 전투식량은 미육군의 씨레이션과 비슷한 건조식량이라고 한다. 3가지 종류의 전투식량이 있었는대, 1번은 고기통조림 1개와 크레커, 토스트, 잼과 차가 들어있다. 2번은 고기통조림 2개와 오트밀이 들어있다. 3번은 한개의 고기 통조림과 야채와 과일 통조림이 들어있다.)을 휴대하였고, 장갑차는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손질되었다. 나는 검열을 마치고 대대장에게 전투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우리는 제 3산악 소총대대의 작전지역까지 차량행군을 무사히 완료하였고, 그날 저녁, 대대장 레빈타스 대위로부터 대대의 임무를 설명받았다. 아울러, 우리 중대가 대대의 주력이 되어 지정된 도로를 따라서 인근 마을들을 탐색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도 동시에 수령하였다.
PKS기관총
Utes 기관총
AGS-17
7월 22일 05:00경, 제 7기계화 소총중대로 증강된 제 3산악 소총대대는 이동을 개시하였다. 장갑차를 탑승하고 있어서 많은 자연장애물을 손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구간과 구간 사이 전개해야 할 장소에서는 장갑차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전진하였다. 우리가 전개하고 있을 때, 인근의 마을을 수색하고, 수색 후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서 대대 본대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분대 규모의 정찰대를 마을 입구에 배치하여 전방을 경계하도록 지시하였다. 내가 이렇게 한 이유는 이 분대로 하여금 중대가 전개하는 동안 엄호를 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외곽에 도착했을 때 기관총 및 고속 유탄발사기 소대(기관총 및 고속 유탄발사기 소대는 기계화 소총중대의 제 4소대로서 PKS 또는 Utes 기관총과 AGS-17 자동 유탄발사기로 화력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소대는 1980년대 중반 전력구조 개편작업시 편제에서 삭제되었다.)가 진지구축을 끝내고 사격자세를 갖추었다(<지도2> 참조).
중대는 고지에서부터 대형을 갖추어 하향수색을 시작하였고, 마치 빗질을 하듯이 마을 수핵해 들어가 주택과 지하실까지 수색을 실시하였다. 2시간이 지나서야 탐색잔전을 마쳤고, 중대는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에 집결하였다.
순간, 적이 #2번 고지에서 우리에게 기습적인 사격을 가해 왔다. 중대는 방어대형을 취한 후, 남쪽과 남서쪽의 토담을 뒤로 후퇴하였다. 나는 1개 소대에서 2개 분대를 차출하여 #2번 고지를 포위하고, 전방과 후방에서 적을 기습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정찰분대로 하여금 #1고지를 점령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소대가 기동하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는 무자헤딘이 #1, 2, 3번 고지에서 사격을 가해 왔다. 30분이 흐른 후, 나는 대대로부터 우리 중대를 우리가 처음 전개했던 #4번 고지로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을에서 철수하는 동안 우리 중대는 #3번 고지에서의 사격으로 흩어졌던 대열을 정비하였다. 우리는 #2번과 #3번 고지의 적을 소화기와 헬기화력(gunship) 지원으로 격파한 후, 중대를 지정된 집결지로 이동시켰다.
프룬제 군사학교 강평: 이 교전에서 높이 사야 할 점은 중대원이 적의 사격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신속하고 질서있는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헬기에 의한 화력지원(Gunship)과 같은 상급부대 지원화력을 요청하여 교전에 임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교전으로 볼 때 중대가 산악지역에서의 전투경험이 다소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것은 장교, 부사관, 병사들까지도 적의 전술을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아군이 #1번과 #2번 고지 사이의 통로로 이동하기 전에, 적이 중대병령에 대해서 사격을 가해 왔다면 개활지(밀밭) 한 가운데서 좌, 우측 고지로부터 적의 사격을 받게 되는 것이고, 이 중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적은 중대가 마을 남쪽 어귀에 이르렀을 때 사격을 했다. 중대는 수색정찰을 강력하게 실지하지 않았다. 주요 감재고지를 장악하려는 중대의 의도가 실퍠로 끝났기 때문에, 적이 전 중대지역을 감제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사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을 이 중대가 훈련 중에 접촉단절과 철수 연습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동일한 상황을 실전에서 맞은 것이다.
이 교전의 결과는 지휘관(자) 훈련(특히 전술훈련간)에 대한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지휘관(자) 훈련은 아마도 소대, 중대, 대대 그리고 야외 종합훈련이 분리되어서 개별적으로 시행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훈련들은 반드시 소부대 지휘관이 포함되어야 한다. 용기와 과감한 행동은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탁월한 개성들이다. 그러나 전투에서 반드시 필요했지만, 평상시 소련군 훈련에서 습득되지 못했던 것이 분대와 소대의 상황에 받는 기술적인 지휘기법이다.
저자 강평: 지휘관은 탐색격멸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주요지형과 전부대를 감체할 수 있는 고지는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탐색격멸부대(수색부대)를 적절하게 운용하지 못하고, 감제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것은 이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이번 절에서는 소련이 산악이 많은 아프간 게릴라부대의 전술에 맞춰 실시한 군구조 개편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것이 산악 소총대대이다. 이절에서 등장하는 제 3산악 소총 대대처럼, 대부분의 산악 소총대대는 투르키스탄 군사지구에 있는 산악 훈련 본부에서 배출되었다.
PS. 지난번 3편에서 '부대이름(-1)'으로 표기된 거 손 아파서 그냥 넘겨 읽으면서 타이핑했는데 나중에 4편 쓰면서 다시 수정해서 같이 올려볼게. 그런데 갑갤에 1편 올라온 거 다시 올리는게 나을려나?
출처는 산맥을 넘을 불곰
장비는 달라도 얻는 교훈은 다들 비슷비슷하네
고지 사격은 지금도 미군이 아프간에서 지긋지긋하게 당하더구만. 위험도 낮다고 생각한 마을 하나 수색할 때마다 근처 고지를 전부 장악하는 것도 좀 지난하다보니 1 km 쯤 되는 산악고지에서 저격이나 기관총 사격 당하고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