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축소 또는 누락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동학군과의 전투를 통틀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일본군 전사자는 연산 전투에서 전사한 상등병 스기노 도라키치(杉野寅吉)가 유일한 반면 동학군의 전사자는 최소 수만명 ~ 십수만명...


심지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 업고 뛰고, 훗날 을미사변 당시 전사한) 홍계훈은 동학군 규모만 보고 조정에 '청나라에 원군 요청해야 한다.'고 보고했는데 청군 오기도 전에 본인이 이끄는 관군이 완산 전투에서 동학군 대파하고, 전봉준도 허벅지에 총상 입혔음.


각종 픽션에서 종종 전주 화약이 동학군의 매서운 기세 때문이었다고 미화되는데... 사실 청군과 일본군이 들어오니까 빠른 수습을 원했던 조선 조정과 더 이상 싸우기 어려웠던 동학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임.


전쟁은 투지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고, 군율과 체계가 없는 군대는 숫자가 많아도 무의미하며, 무엇보다도 역사는 정의롭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교훈이 담김.




[출처]


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북신문,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