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IUjt8a7ruw


(전략)  … 첫 번째 습곡 아래 후위에서 스타인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약간 마음을 놓았다. 부하들 사이에서 습곡 꼭대기 쪽으로 기어간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정신을 수습하느라 얼굴과 온몸이 긴장되었다. 당장 아무런 총격이 없자, 그는 몸을 일으키고서 1소대가 중간 습곡을 떠나 세 번째 습곡의 꼭대기에 도달한 것을 보았다. 적어도 그들은 거기까지 갔다. 어쩌면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는 다시 앉아서 몸을 뒤로 기대며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고, 주위에 엎드린 부하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더욱 자랑스러워졌다. 등 뒤, 습곡 저지대에서는 박격포 분대가 포대를 세우고 있었다. 여전히 공중에서 지옥 같은 굉음이 들리는 가운데, 그들에게 기어간 스타인은 컬프의 귀에 대고 왼쪽의 풀이 나 있는 능선을 목표물로 삼으라고 외쳤다. 박격포 옆에서 브롱크스 출신의 이탈리아계 청년 마치 이병이 겁에 질린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스타인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도 대부분 그랬다. 스타인은 다시 습곡 꼭대기로 기어갔다. 거기 도착한 다음 몸을 일으켰고, 바로 그때 1소대와 2소대의 공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첫 번째 습곡 꼭대기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그 광경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봐도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전술상의 심각한 실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정말로 전술상의 실수였다면, 잘못은 화이트의 몫이었다. 먼저 화이트의 잘못이엇고, 그 다음은 2소대의 톰 블레인 소위의 잘못이었다. 화이트는 마지막 세 번째 습곡 꼭대기까지 사상자 없이 도착했다. 그는 그 사실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너무 낙관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숙지하고 있었다. 풀이 자라는 능선 두 공에 감추어져 있는 거점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 화이트가 받은 임무였다. 그중 더 가까운 오른쪽 능선은 오른쪽 앞으로 80야드쯤 떨어진 곳에서 좀 가파르게 시작했다. 부하들이 납작 엎드려 땀을 뻘뻘 흘리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조심스럽게 팔꿈치를 짚고 눈썹이 보일 정도로만 몸을 들어 지형을 살펴보았다. 일본인이나 진지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화이트는 겁이 나긴 했지만 오늘 잘해내야 한다는 긴장감이 더 강했다. 그는 잠시 어깨너머로 209고지 능선에서 군인들이 절반쯤 위치를 드러내고 서서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중 하나는 군단장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공중의 굉음과 폭발음도 약간 잦아들더니, 작은 능선에서 코끼리 머리(주1) 로 이어지는 탄막이 걷히자 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화이트는 다시 한번 지형을 살펴본 다음 정찰병들에게 전진하라고 손짓했다.

  이번에도 두 소총수는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염려되지만 않았더라면 그에게 무슨 생각이냐고 묻고 싶었다. 이번에도 화이트는 팔을 아래위로 흔들어 신속하게 전진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소총수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손과 무릎을 먼저 짚어 몸을 일으킨 다음 벌떡 일어나 25야드를 전력질주하여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납작 엎드렸다. 그들은 스스로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려고 손과 무릎을 짚는 순간, 앞장섰던 소총수가 쓰러지더니 풀썩 튀어 올랐다. 조금 뒤 덜어져 있던 병사도 어깨를 당에 부딫치며 쓰러지더니 굴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저격수에게 희생된 채 쓰러졌다. 둘 다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둘 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화이트는 충격을 받은 상태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들과 근 넉 달 동안 함께 지냈다. 앞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다시 텅 빈 능선의 조용한, 가면을 쓴 얼굴을 노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은가? 공중에서 들려오는 굉음은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살집 좋고 당당한 체구의 청년 화이트는, 해양 생물학자가 되려고 공부하던 대학에서 권투와 유도 챔피언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내 최고의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어쨌든 그들이 우리를 다 잡을 순 없다고 그는 믿음을 갖고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란 주로 그 자신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는 결정으 내렸다.

  \"자, 제군! 가서 놈들을 잡자!\"

  그는 이렇게 소리치고 벌떡 일어나 소대에 돌격 신호를 했다. 그날 아침 일직부터 내내 총검을 겨누고 진격해 왔던 소대원들을 바로 뒤에 거느리고, 그는 두 걸음을 떼더니 쓰러져 죽어 버렸다. 허리께부터 어깨까지 대각선으로 총알들이 궤뚫었고, 그중 하나가 심장을 파열시켰다. 죽기 직전 그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짬은 있엇다. 어쩌면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그 소대의 다른 다섯 명도 그와 거의 동시에 쓰러졌는데, 부상 정도가 제각기 달라서 몇몇은 죽고 몇몇은 찰과상만 입었다. 그러나 화이트가 시작한 진격의 여세는 계속 남아 있어서 소대는 맹목적으로 달렸다. 그 기세를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른 힘이 필요했다. 몇몇이 더 쓰러졌다. 보이지 않는 소총과 기관총이 사방에서 발사되는 것 같았다. 정찰병 둘이 죽은 자리에 도착하자 그들은 보다 멀리 있는 왼쪽 능선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고, 더욱 격렬한 교차사격을 받게 되었다. 나머지 군인들과 함께 달리며 뜻모를 소리를 지르던 빅 퀸 병장은 그로브라는 소대 선임 부사관이 두려운 듯이 소총을 집어던지고 가슴을 쥐어듣으면서 고함을 지르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퀸은 무슨 영문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근처에서는 마치 눈을 재빨리 깜빡이면 살 수 있다는 듯이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이며 돌 일병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공포에 질려 완전히 굳어버렸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힘든 시험을 겪고 있었지만, 돌은 아직 화이트처럼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정찰병들을 지나쳤다. 왼쪽에서 더 많은 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등 뒤의 세 번째 습곡 꼭대기에서부터 2소대원들이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이것은 2소대 블레인 소위의 책임이었다. 그것은 그다지 복잡한 책임은 아니었다. 선망이나 질투, 망상증, 혹은 억압된 자기 파괴 본능과는 무관한 것이엇다. 그도 역시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 무엇인지 숙지하고 있었고, 빌 화이트를 뒤에서 도와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 역시 군단장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오늘 잘해내고 싶었다. 동료만큼 운동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상상력과 감수성이 더욱 풍부한 블레인은 1소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소대에게 진격하라고 신호했다. 그는 상상 속에서 이 진격이 어떻게 끝날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자신과 화이트와 부하들이 의기양양하게 거점을 확보하고 파괴된 벙커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역시 비탈을 올라가던 중에 죽었지만, 화이트처럼 꼭대기에서 죽은 것은 아니엇다. 아직 숨어 있던 일본군 사수들이 총신을 들어 올리는 데 몇 초가 걸렸고, 2소대는 그 총이 발사되기 전에 완만하고 짧은 비탈을 10야드쯤 내려가고 있었다. 아홉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둘이 죽었고 그중 하나가 블레인이었다. 블레인은 기관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불운하게도 세 소총수의 표적이 되었다. 그 사수들 가운데 누구도 그가 장교라는 사실은 몰랐다. 그는 앞으로 5야드를 굴러갔고, 흉강에 세 발의 총알이 박혔는데도 즉사하지는 않았다. 그는 바로 누워, 꿈속처럼 멍한 기분으로 높고 아름답고 새하얀 구름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화창하고 새파란 열대의 하늘을 웅장한 함선처럼 헤치고 지나가고 있엇다. 숨을 쉴 때 약간의 통증이 있었다. 그는 의식을 잃으면서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자각했다. … (후략)



1 . 작중에서 언급되는 일련의 고지들이 모인 지형, \'춤추는 코끼리\' 중의 일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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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그냥 순식간에 지나가던 장면이었는데 나중에 원작 소설 번역본 나와서 글로 읽으니까 장난 아니더라. 특히 내가 이거 읽기 전에는 김경진류에 뇌가 절여져 있던 시절이라 더 와닿았었음.

적어도 나는, 이만큼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이 가슴에 깊게 와닿은 글은 이전에도 못 읽어봤고 앞으로도 못 읽어볼거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