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군 소령 조지 스트리트 3세(George L. Street III)는 1945년 3월, 텐치급 잠수함(Tench-class) 2번함 티란테(USS Tirante, SS-420)를 몰고 일본 규슈 남서쪽에서 통상파괴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야마토 같은 대형 군함을 잡고 싶었지만 전쟁 말기에는 일본군함은 물론이고 민간 상선마저 씨가 마른 탓에 먹잇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스트리트 함장은 일본 본토 가까이 접근하여 정박한 선박을 격침 시키는 방법으로 전과를 올렸다. 공격 직후 항상 일본군 해방함들의 폭뢰 공격에 몇 시간씩 시달렸지만 스트리트 함장은 매번 티란테를 이끌어 피해 없이 위기를 빠져나왔다.
한달이 넘도록 격침 시킬 배를 찾아 동중국해를 돌아다니던 티란테는 보급물자도 거의 바닥났고 어뢰는 7발 남았다. 그 때, 스트리트 함장은 한반도의 부속 도서중 제일 큰 퀠파트 섬(Quelpart Island)에 일본군 선단이 정박했다는 첩보를 받았다.
4월 13일, 중앙에 커다란 산이 하나 우뚝 솟아있는 퀠파트 섬을 정탐하던 스트리트 함장은 섬 북서쪽에 붙어 있는 또 다른 작은 섬에 해방함 3척, 수송선 1척으로 이뤄진 모시02 선단(モシ02船団)이 정박한 것을 확인했다. 그 섬은 매우 작았고 마치 퀠파트 섬의 산 꼭대기만 잘라서 바다에 박아놓은 것 같았다. 지도 상 섬의 이름은 앤더슨 섬(Anderson island)이라고 적혀있었다. 섬에는 제대로 된 항구는 없었으나 큰 배들도 정박할 수 있는 작은 만이 하나 있었다. 섬 주변에 암초가 많았고 연안 수심은 18.3m에 불과했다. 배가 드나들만한 길목에는 기뢰가 깔렸고 주기적으로 일본군 비행기들이 정찰비행을 했으며, 일본군에서 희귀했던 해안 레이더 기지도 있었다.
하지만 스트리트 함장은 이번에도 티란테를 세심히 조함하여 수 km에 걸친 구역을 주파하여 섬 북동쪽으로 잠입하여 수면으로 부상했다. 만 외곽에는 병형 해방함 31호(丙型海防艦 31号, 745t)가 배치되어 있었고 티란테는 고작 20m 차이로 이 해방함을 지나쳤으나 배의 견시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4월 14일 새벽 04시, 어뢰 최소사거리까지 접근한 스트리트 함장은 첫번째 타겟으로 3,943톤짜리 수송선 주산마루(寿山丸)를 향해 선수 3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그중 2발이 명중했다. 그리고 엄청나게 화려한 폭발과 함께 버섯구름이 600m 상공으로 치솟았고 주산마루는 20분도 되지 않아 침몰했다. 주산마루에 타고 있던 500여명의 일본육군 장병들은 미친듯이 바다로 뛰어내려 앤더슨 섬으로 헤엄쳐 가거나, 침몰하는 주산마루 난간에 매달리려고 서로를 밀치고 떨어뜨리는등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죽어나갔다.
(주: 주산마루는 화물칸에 중국전선에 있는 일본해군 함정들에게 보급할 어뢰 36발을 싣고 있었는데 하필 거기에 명중했다.)
폭발과 섬광으로 인해 앤더슨 섬 전체가 밝아졌고 티란테의 위치도 노출됐다. 스트리트 함장은 기관실에 전속 후진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두번째 타겟으로 주산마루 바로 옆에 있던 미쿠라급 해방함(御蔵型海防艦) 4번함 노미(能美, 940t)에게 선수 어뢰 2발을 더 발사했다. 노미는 뒤늦게 엔진 시동을 걸려고 했지만 2발의 어뢰중 1발이 함교 바로 아랫부분에 명중했다. 그리고 노미의 탄약고가 유폭하면서 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단 몇분만에 침몰, 승조원 130명 전원이 전사했다.
티란테는 후진으로 방금 지나쳐 온 31호 해방함을 다시 지나쳐 외해로 빠져나갔다. 31호 해방함은 동료들의 복수를 하려고 대공포와 기관포를 쏴대며 쫒아왔다. 잠수함이 아무리 빨라봤자 수상함의 속도를 이길 순 없었고 31호 해방함은 티란테를 거의 따라잡았다. 너무 가까워서 긴급 잠항을 해봤자 폭뢰 타겟이 될 운명이었다. 스트리트 함장은 선미 어뢰관에 있던 3발 중 2발을 발사했다.
31호 해방함은 변침으로 1발은 피했으나 1발이 선미 쪽에 명중했다. 하지만 폭발음이나 물기둥은 치솟지 않았다. 티란테의 음탐사는 스트리트 함장에게 '거리 때문에 신관이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보고했다. 31호 해방함은 다시 변침하여 티란테를 따라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윽고 선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31호 해방함은 티란데를 따라 잡자마자 폭뢰를 투사할 요량으로 선미의 폭뢰들의 안전신관을 미리 제거 해놓았는데, 아까 불발 어뢰에 맞은 충격으로 인해 폭뢰 1개의 신관이 기폭해버렸다. 선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고 프로펠러와 방향타가 손상된 31호 해방함은 옆으로 빙빙 돌다가 침몰 해버렸다.
티란테의 승조원들은 마지막 럭키샷에 환호하며 마지막 1척 남은 미쿠라급 해방함 미야케(三宅, 940t)가 뒤늦게 따라나와 추적하는 것까지 뿌리치고 동중국해로 나와 미드웨이로 귀환했다.
1달 반 동안의 초계에서 적함선 6척, 13,000톤의 전과를 올린 티란테와 스트리트 함장 활약상은 곧바로 의회에 보고됐다. 티란테는 대통령 표창(PUC)을, 부함장 에드워드 비치 주니어(Edward L. Beach Jr.)는 해군 십자장(Navy Cross)을, 그리고 스트리트 함장은 의회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훈했다.
앤더슨 섬, 즉 제주 비양도(飛揚島)에는 이 때의 일화가 노인들의 입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져 왔다. 비양도 주민들은 주산마루의 일본군 생존자들을 구해주고 떠내려온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 매장해줬다. 이 때 매장된 일본군들의 유해는 1972년 후생성(厚生省)에서 찾아왔을 때 반환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미국 쪽에서는 이 전투에 대해 잘못 서술된 부분이 많음. 제주도가 아니라 당시 명칭이었던 퀠파트 섬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비양도가 아니라 제주항에 침투했다던지, 비양도에는 제대로 된 항구도 없는데 무슨 스캐퍼플로 U보트 침투사건처럼 존나 큰 군항에 들어간 것처럼 서술된 것도 있음.
반면 얻어터진 일본 쪽에는 생존자들 사료등이 꽤 많음. 이때 살아남은 군인 중에는 자신 구해준 한국인들한테 전후에도 주기적으로 찾아가는등 꽤 많이 고마워했다고 함.
https://www.war.gov/News/Feature-Stories/Story/Article/3735862/medal-of-honor-monday-navy-cmdr-george-l-street-iii/
https://www.jeju.kr.emb-japan.go.jp/itpr_ko/11_000001_00319.html
https://www.yomiuri.co.jp/serial/jidai/20190214-OYT8T50024/
https://www.yomiuri.co.jp/serial/jidai/20190214-OYT8T50028/
티란데 이 미친 보라색 유두년이
포도맛
정보글 너무좋음
미야케 머쓱
저거 당시 주민들이 증언하는 다큐도 있더라 - dc App
개쩐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