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산한 밤바람이 차갑다. 문득 잠을 깬 나는 서늘한 한기에 옷깃을 여미면서 딱딱한 침상에 걸터앉았다. 물을 끼얹은 듯 괴괴한 정적만이 옥죄여 왔다. 멀리선가 당직 간수들인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달 바람이 차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뉘른베르크 교도소의 쇠창살 창문 바깥으로 내다 보이는 달은 그렇게도 써늘하게 차갑게 보일 수가 없다. 한때 저 넓고 광활한 하늘도 모두가 나의 것이로되, 이제 나에게 허락된 하늘은 교도소 창문이 만들어낸 얼마 안 되는 직사각형 공간뿐이 아닌가. 이제는 하늘을 올라보는 것마저 참람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쇠창살이 만들어낸 줄무늬 문양이 나의 머리 위에 낙인처럼 아른거린다.  

내 이름은 헤르만 빌헬름 괴링, 전직 제국 원수이다.   한때 전 유럽 하늘의 지배자였던 붉은 남작 아래 무수한 전공을 올려, 영예로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에 빛나는 에이스였으며 패망하여 뭇 나라들의 질시와 견제를 받던 조국의 하늘 아래 유럽 최강의 공군을 일구어냈고 나아가 유럽을 호령하던 제 3제국의 명실 상부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에 있던 사나이, 그것이 바로 나였다.  이제 공군 잃은 공군 원수, 제국 잃은 제국 원수, 나라 잃은 군인, 한 때 전 유럽을 공포에 질리게 했던 우리의 독수리들, 날카로운 눈과 발톱으로 전 유럽의 하늘을 지배했던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수장이었으되 이제 패망한 나라의 군인으로 비웃음과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 그것이 바로 나이다.  한 때 영광에 빛났던 새하얀 제복 대신, 나는 이제 감색 수형복을 입고 베를린 그 드넓은 카린 할(Carlin Hall) 저택을 호호탕탕히 거니는 대신 좁은 독방 속에 영어의 몸으로 쭈그리고 있는 사나이,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독일 민족이 숙적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쓰러지고, 아름다운 조국의 전통 있는 도시들이 불타오르고, 수많은 전쟁 난민들이 망령처럼 떠돌아다니게 된 지도 수 개월이 흘렀다. 그 충격적인 경험이 그 동안 미몽 속에서 감았던 눈을 다시 뜨였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았다. 마치 오랫동안 중병을 앓아 누웠다가 문득 눈을 뜨고, 커튼 사이로 비쳐오는 아침 햇살의 찬란함에 눈을 뜨기 어려워하는 환자처럼, 나는 조금씩 눈을 떴다. 오랫동안 자리 보전하여 쓰지 못해 약해진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여보고 자신의 몸을 돌아보는 환자처럼, 나는 조금씩 나의 몸을 돌아보았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는 달리 늦잠을 자 버린 베를린의 한 월급쟁이가 마침내 뜨여지지 않는 눈을 뜨면서 자신이 얼마나 늦잠을 자버리고 말았는지, 그 충격적인 진실을 앞에 두고 베게 속에서 몸부림치듯이 나 역시 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뚱보 마이어 아주머니, 찬란하고 솜씨 좋은 공군을 건설하였으나 오랫동안 낮잠을 자고 말았던 사나이......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러했는가?  차가운 목소리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대답하려 했다. 이 모든 것은 음모였다. 나는 오랫동안 부하들의 거짓 보고에 속아 왔던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예의 그 목소리가 다시 쩡하고 울렸다. 나의 마음속을 사정없이 후벼파고 마는 엄격하고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 앞에 나의 혀는 차갑게 굳어버렸다.  

정말 그러하다면, 지금껏 네가 그 자리에 올라 앉은 의미는 무엇이었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 앞에 부옇게 흐려져왔다.  나는, 나는......  그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남은 것은 차가운 독방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로 베게를 적시는 나, 헤르만 괴링이 있을 뿐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초연하게 법정에 임했다. 판사들과 검사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솔직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나는 떳떳하게 임했다. 나의 잘못들, 나의 과오들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뭇 사람들 앞에 나는 나, 헤르만 빌헬름 괴링으로 임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훗날 들은 말로는 자기 변명과 시치미떼기, 추악한 자기변호만으로 가득했던 재판정 안에서 나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나의 모습에 내가 드디어 맛이 가버렸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니까. 전범 재판정에서 증인으로, 혹은 나와 같은 피고인으로, 혹은 고발자나 재판장으로 나를 본 사람들의 시선은 처음에는 비웃음과 멸시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점차 의외라는 눈빛으로 변해가더니, 새삼 다시 보겠다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와 오랫동안 악연을 쌓아 왔던 해군의 에리히 레더 제독과 칼 되니츠 제독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원망과 감탄이 묘하게 혼합된 듯했다. 마치, 어째서 그 동안에는 두 눈을 감아왔던 거요, 원수? 와 같은 시선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나의 옛 부하이자 전투기 총감이었던 아돌프 갈란트였다. 그를 재판정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 때, 나는 차마 그를 바로 볼 수 없었다. 이미 그 모든 멸시와 조소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건만, 그 앞에서는 눈을 들 수 없었다. 내가 방향타를 잃어버린 전투기처럼 추락해가고 있었을 때, 마지막까지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나의 유능한 부하. 내가 겨우 용기를 내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났다.  제국 원수, 제국의 2인자...... 그 모든 오만과 허영으로 입혀진 옷을 벗어버리고 감겼던 눈을 뜬 나는 마치 새털 같은 기분이었다. 요컨데 나는 패망한 조국의 폐허 위에서, 뉘른베르크 형무소 안에서 다시 태어난 듯했다. 그것이 비록, 너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서야, 이미 한정없이 늦은 마지막 순간에서야 초심을 되찾는 법이다.


마침내 운명의 그 날이 왔다. 재판정에 선 나는 눈 앞의 판사들을 훑어보았다. 수백 회에 달하는 심리에서 수없이 보았던 얼굴들...... 수석 판사 프란시스 비들과 제프리 로렌스, 이오나 니키첸코, 앙리 드 바브리 판사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재판정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그럼,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헤르만 빌헬름 괴링......"

  나는 가슴을 폈다. 그래,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교수형."  

나는 그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충격에 빠진 표정이었을까, 글쎄, 그 때 이미 나는 적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자의 죄 갚음은 인간 세상의 손길을 벗어나, 아마도 있다면 (나는 무신론자였다) 저 하늘에 계실 누군가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의 죄값까지 함께 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은 부랑배 무리들 중 단연 최고위 인사였다. 그리고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이름 아래 자행된 수많은 학살과 잔학행위들...... 그 중 일부는 나조차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던, 인간 행위 이하의 파렴치한 행위들....... 그 책임은 누군가는 져야만 했다.  하지만 교수형......! 나는 마음 속으로 신음했다. 나는 적어도 군인답게 죽고 싶었었다. 교도관 노릇을 하는 미 육군 헌병대에 이끌려 가는 나의 발걸음은 자못 무거웠다. 마치 갈 곳 잃은 망령처럼, 나의 두 다리는 힘이 빠져 흐느적거렸고, 스스로 걷는다기보다는 양 팔을 붙든 헌병들에 이끌려가다시피 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의 머릿속 한 구석에는 테이프가 돌아가듯 돌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앞으로 걸어나가서, 똑바로 걸어나가고, 그런 다음에는 재판정 바깥으로 걸어나가서, 그 다음에는......

문득 나는 상념에서 퍼뜩 깨어났다. 나의 팔을 붙든 헌병들은 재판정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이 쪽 길이 아닐 텐데...... 나는 비몽사몽간에 그렇게 생각했다. 수백 번은 넘게 왔다 갔다 한 길이니 헛갈릴래야 헛갈릴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한 조그만 문 앞에 섰다. 나를 붙잡고 있던 헌병 한 명이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안쪽에서 퉁명스럽게, '들어와'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 멍청이처럼 서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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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시오. 괴링 씨."  

내 앞에 앉은 자는 깨끗한 플란넬 양복을 잘 차려입고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그 앞의 철제 의자에 걸터앉았다. 의자가 삐그덕 하고 비명을 질렀다. 수형 생활 동안 나름대로 청년 시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꽤 살을 뺐다고 생각했는데...... 의자가 낡은 게 아니라면 아직 살집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헛기침을 한 그 양복쟁이는 자신을 미 국무부의 관리라고 설명하더니, 이내 중언부언 인사말을 건네었다. 나는 여전히 몽롱한 기분이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 그러니까 말이오, 괴링 씨."  

그는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뺐다. 마치 자신의 말을 강조라도 하려는 양, 그는 손깍지까지 끼며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바람에 나도 졸음에서 퍼뜩 깨어났다. 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고 있던 나는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기면증도 그중 하나였다. 그 덕분인지 나는 앞에 있던 사내가 나를 괴링 '씨'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사소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하기야, 나라 잃고 군대 잃은 군인이 일반 민간인과 다른 게 없겠지만.  

"전후 세계는 지금과는 다를 겁니다. 다르고말고요! 그 동안 여러 유럽 국가들이 지배했던 지역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그 많은 나라들은 이제 독립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의 전후 세계관 강의를 듣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 강의를 듣는 거지. 이제 조만간 사형 집행인의 밧줄에 목이 대롱대롱 매달릴 자가 말이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 앞에는 크게 두 가지 선택의 기로가 있어요...... 자유 진영에 잔류하느냐, 아니면 공산 진영에 가담하느냐."

아마 나는 그때 비몽사몽간에 멍청이 같이 질문을 던졌지 싶다. 왜냐하면 그 자가 야단스럽게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아아, 중립국!"  

그는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아아, 물론 그런 회색지대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나라들일수록...... 우리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각축지대가 될 겁니다. 중립국이라 해도 어느 쪽과 아주, 아주 연락을 끊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는 조금 '더' (그는 이것을 강조했다) 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 다음 한동안은 나는 살짝 졸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내의 말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으니까.  

"그런 점에서 말이오, 괴링 씨. 우리들은 당신의 역량을 살려, 한 가지 일에 써먹어볼까 합니다."  

양복쟁이 사내의 표정이 갑자기 써늘해졌다. 그래도 전쟁에서 수없이 굴러 본 적이 있던 나조차도 차갑게 얼려버릴 듯한.  

"착각하지 말 것은, 당신을 사면했다는 뜻이 아니오. 괴링 씨. 다만 짐승처럼 나가 뻗게 될 나치 전범을 저기 바깥 텃밭 비료 정도로 쓰기 전에, 조금 더 쓸모 있는 일을 한 번 맡겨 볼까 하는 것뿐이지."  

그의 눈은 차가웠다. 나는 주춤주춤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돌연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마치 미키 마우스를 연상시키듯.

"아,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그는 요란하게 손뼉까지 쳐 대며 킬킬거렸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나는 '거물'이란 표현을 꿀꺽 삼켰다. 차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복쟁이는 그것만으로도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정말 눈치 빠른 사내였다.

  "어떻게 교수형에서 끌어낼까, 그런 말이지요? 아, 그건 당신이 걱정할 필요없소!"  

양복쟁이는 자신의 서류 가방을 툭툭 흔들었다.

"신분 세탁은 우리 전문이오. 괴링 씨. 당신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우리가 지정하는 나라에서 고문 역할을 해 주면 되는 거요. 당신의 전문 지식을 이용해서 말이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때 미국은 정말로 나치 독일에서 일했던 수많은 학자, 그 중 일부는 정말로 나치즘에 경도되어 있던 골수 나치주의자들이었는데도 비밀리에 빼내고 있었다. '페이퍼 클립', 그 작전명이 세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는 조그만 갑을 하나 꺼내 보였다. 나는 멍하니 그 갑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공식적으로는 음독 자살을 한다고 하면 될 거요. 청산가리 캡슐이라...... 나치 고관들에게는 정말이지 마지막을 같이해주는 동료 아니었소?"


#   그 이상했던 만남으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미 공군 수송기에 올라앉아 있었다. 기묘한 일이지만, 승무원에게 듣기로 미군은 공군을 불과 1년도 못되는 기간쯤 전에서야 별도의 군종으로 독립시켰다 한다. 정통 공군으로 독립되어 자체적인 예산과 인력 운용을 하는 선진적인 운용을 갖추었던 독일이나 영국보다도 후진적이라 할 만하겠는데 (공군 장성인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대한 항공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스카이트레인' 수송기만 해도 물경 일만 대로 전시 독일 공군의 웬만한 전투기들에 버금가는 대수로 갖추는 나라가 미국 아니던가.

"도착합니다."  

조종실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엉거주춤 창 밖을 내다보았다. 갈색 산천이 한가득 내려다보였다. 이내 비행기가 구름 사이를 뚫고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풍경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이제 초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 철이라 그런가. 살풍경한, 어쩐지 퇴락해 보이는 듯한 풍경이다. 하기야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다가 막 독립한 나라가 산뜻한 유럽 마을들 (물론 지금은 대부분 폐허가 되어 있겠지만)처럼 보일 수가 없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수송기가 덜컹 하면서 흔들렸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버클을 풀었다. 2, 3년 동안 옛모습을 되찾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살집이 줄어 있었다. 옛날 나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이내 수송기의 문이 열렸다.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나는 비행기 밖으로 나섰다.  

"으윽......"  

나는 짙게 풍겨오는 역한 냄새, 구린내에 코를 싸쥐었다. 코가 녹아내릴 것 같은 냄새. 이건 흡사...... 대변 냄새가 아닌가.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미군 병사 하나가 낄낄거렸다.  

"냄새 죽이죠, 고문관님! 앞으로는 여기에 적응하셔야 할 겁니다. 이게 한국이란 나라라구요!"  

나이 이십을 넘기기나 했을까, 주근깨투성이의 정비병은 싱글싱글 웃으며 외쳤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사람이 눈 대변으로 벼라는 작물을 길러서 먹는다죠. 아마 고문관님이 눈 똥도 비료로 쓸걸요!"  

그는 왝, 하고 구역질하는 흉내를 내어 보이며 낄낄거렸다.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으로는 코를 싸쥔 채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얀 모래사장에 대충 만들어진 활주로와 허름한 막사들. 탁한 빛깔의 누런 갈색으로 들뜬 채 나지막하게 뻗어가는 능선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간다니......'  

첫눈에 보아도 그다지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었다. 벌써부터 나는 바이에른이나 잘츠부르크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산촌 마을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마치 퇴락해가는 세계, 시들시들 죽어가는 세계 같아 보였던 것이다.
이는 분명히 낭만적인 감상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1947년 10월 1일, 그 즈음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던 신생 독립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근처, 여의도 비행장에 내려선 나 헤르만 괴링의 첫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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