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하얀전쟁\'의 작가 안정효씨는, 1967년 9사단 1진 파병당시에 병사였지만 기자생활을 하다 군대에 갔던 사회경력덕분에 있던 육본의 빽과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현지 특파원 비슷한 신분으로 월남에 다녀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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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플레이어 동영상은 바로 띄울수가 없어서 링크로 대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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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두 주의 닝화 전투를 끝내고 중대로 돌아와 미처 배낭도 다 풀지 못했는데, 사단의 정훈참모부에서 묘한 연락이 왔다. 이미 다 끝나버린 전투를 취재하겠다며 사이공과 나쨩에서 한국 종군 기자들이 몰려왔는데, 9중대에서도 기자를 \"한 사람만 맡아서 협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들에게 배당된 김준억 특파원은 \"병사들의 생생한 전투 장면을 기록영화로 찍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훈참모는 중대장에게 불길한 귀띔을 한 마디 햇다. 김준억은 한국의 일간지 「대한일보」에서 파월한 종군기자였지만, 그가 소속된 신문사에 보낼 기사는 별로 취재하는 적이 없고, 연출한 전투 장면을 동사진과 정사진으로 찍어 비스뉴스(Visnews)와 AP같은 외신에 팔아먹는 장사에만 혈안이어서, 다른 한국 특파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위인이니까 \"알아서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김준억 특파원은 오전 11시쯤에 연대 정훈장교 장민규 중위의 안내를 받아 우리 중대 전술기지로 찾아 들어왔다. 김 특파원은 베트남군 공수대 군복을 걸친 작달막한 체구에, 목에는 흑백과 천연색 필름을 따로따로 담은 정사진 카메라 세 대를 주렁주렁 매달고, 한쪽 어깨에는 동사진 촬영기를, 그리고 다른 어깨에는 필름 가방을 멘 모습이 무척이나 부지런한 인상이었다. 호리호리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정훈장교에 비하면 김준억이 훨씬 더 군인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 기자는 전투가 벌어진 현장은 아니지만 \"배경 그림이 좋으니까\" 닝화 남쪽의 고무나무 농장으로 병력을 2개 소대만 데리고 가서 그림을 찍겠다고 주문했다. 중대장은 우리 3소대에게 출동 지시를 내렸다. \"격전의 실감을 최한 살리고 싶다\"는 특파원의 욕심에 따라 부상병들도 나까지 포함하여 네 명이나 동원되었다.
전투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고 수면 부족에서 오는 피로감이 쏟아져 무릎이 흐물흐물한 병사들은 김 기자의 인솔을 받고 철로를 따라 1킬로미터나 걸어서 영화를 찍으러 갔다.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 사람들이 조성한 고무나무 숲에 다다르자 김 기자는 같이 따라온 정훈장교에게 촬영할 내용에 관한 설명과 지시를 했고, 장 중위는 그 내용을 3소대장 최상준 소위에게 반복해서 설명했다.
전희식 병장과 장돼지가 연출의 지시에 따라 논바닥과 고무나무 숲 입구에 빨간 빛깔과 초록빛의 연막탄을 터뜨려서, 연기가 꾸역꾸역 피어올랐다. 김 기자는 우리들더러 총을 앞으로 내밀고 함성을 지르며 색깔 연기를 뚫고 나와 그의 카메라를 향해 씩씩하게 달리라고 지시했다. 작전중에 헬리콥터에게 착륙 지점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나 쓰이던 연막탄이 영화에서 홍길동이 펑 사라졌다 나타나는 효과를 내려고 활용되는 광경을 나는 이때 처음 보았다.
김 기자는 우리들더러 고무나무 숲을 토오가하여 논바닥으로 돌격하라고 지시하고는, 기관총 옆에 바싹 붙어 땅바닥에 눕더니 연속사격을 할 때 튀어나오는 탄피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삼아서 클로즈업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는 1개 분대가 개울에 온몸을 잠근 채 낮을 포복으로 기어가라고 주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숲으로 우리들이 엉금엉금 두꺼비처럼 전진하는 모습도 열심히 찍었다. 김재오와 김문기는 재미있다고 킬킬 웃으면서 시키는 대로 철버덕거리며 논바닥을 건너갔고, 베트남 농민 몇 사람이 농사를 짓다 말고 철로변까지 나와 멍청하게 서서 군인 배우들을 구경했다.
\"이 영화 찍으면 극장에서도 상영해요?\" 김재오가 기자에게 물었다.
\"내 얼굴 좀 잘 나오게 찍어주세요.\" 김문기가 큼직한 금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대한 뉴스에 나오면 고향 친구들도 볼 테니까 말예요.\"
촬영은 두 시간이나 걸렸고, 곧 끝난다는 김 기자의 말에 점심도 걸러야 했던 나는 뱃속이 탄산가스로만 가득 참 피로를 느끼며 고무나무 숲에 엎드려 이 엉뚱한 장난을 한심스러워했다. 내가 텅 빈 논바닥에다 총질을 하는 지금 서울에서 친구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뚝섬에서 여자들과 배를 타고 나가 릴케와 장미를 찬미할지도 모르지.
아직도 돈이 될 만한 그림을 건지지 못해서 초조한 표정이 역력해진 김 기자가 잠깐 촬영을 중단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김 기자는 동사진 촬영기를 땅바닥에 높고 잠시 사방을 살펴보더니, 논둑에 앉아 다름 지시를 기다리는 소대장에게로 가서 매우 못마땅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실감이 전혀 안 나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열 명쯤 저쪽에서 여기까지 총을 들고 뛰어와 엎드리고는, 땅바닥에서 이렇게 몸을 굴려 재빨리 거총을 하고, 무전병은 이 나무 밑에서 긴박하게 교신을 하는 장면을 찍읍시다. 무전병이 부상을 당한 상황으로 만들면 좋겠군요. 그래서 무전병이 교신을 하는 동안 의무병이 그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도록 하고요. 그리고 저 독립 가옥에 화염방사기를 쏴서 불을 지르고, 그 순간에 베트콩이 손을 들고 튀어나오게 했으면 좋겠는데, 헌병대에 부탁해서 포로를 하나 데려다 찍으면 안 될까요?\"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난 최상준 소위는, 잠깐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로와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기자를 노려보더니, 총을 놓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한마디씩 끊어가며 말했다.
\"이봐요, 기자 양반. 이게 다 무슨 개좆 같은 짓이요? 당신이 이따위 엉터리 뉴스를 찍어 필름이나 팔아먹으라고 배우 노릇 하기 위해 내가 육사 졸업하고 베트남까지 온 줄 알아요? 전투 장면을 찍고 싶으면 실제로 전투가 벌어질 때 와서 찍어요.\"
최 소위는 멍청히 사태를 지켜보던 우리들에게 명령했다. \"가자, 이 새끼들아.\"
소대장이 \"이 새끼들아\"라고 한 말이 우리들에게는 정다운 구원의 부름처럼 들렸다. 김 기자가 놀라서 바보처럼 멀거니 쳐다보는 동안에 우리들은 소대장을 따라 주섬주섬 무기를 챙기고 옷을 턴 다음, 북쪽으로 철로를 걸어갔다. 정훈장교가 황급히 쫒아와서 이러면 어떡하느냐고 화를 냈지만, 최 소위가 더 심하게 화를 내었다.
\"전쟁이 해태제과에서 나오는 무슨 사탕입니까? 왜 이렇게 영화까지 찍어 선전을 해요? 이런 엉터리 영화를 찍어 현지 보도라는 이름을 붙여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극을 우리들이 왜 도와줘야 합니까? 그런 영화 찍고 싶으면 황해하고 박노식 불러다 찍으라고 해요.\"
김 기자가 고무나무 농장의 사건을 정훈참모에게 일러바친 모양이어서, 오후에 최 소위는 연대장과 대대장에게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고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도 불쾌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릴케... 장미...
이 소설은 해로운 소설이다
소대장님 충성충성
김준억인가 저 사람 짜빈동 전투였나 거기 현장보고 울었다고하지 않았나
실제 인물이 아니겠지. 실제 인물 저렇게 욕하는 이야기 썼다가 고소라도 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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