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이었다 (※퍼온이 : 원글 작성시기는 16년도 10월이니 15년도 크리스마스인듯)
나는 상꺽이었고 휴가를 단 하루 앞둔 날이었지
근무 중 라디오가 울렸다

1-3 는 지금 즉시 서로 와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게 없었다. 겨울이었고 접촉사고가 잦고 미군 관련 인원 - 한국인간의 교통사고에서 보험처리라던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게 겨울의 주 업무니까 당연히 예상했다

본부까지 불렀다는건 부대 밖에서 터졌다는거고 보통은 교통조사계의 써전과 함께 나가서 초동조사 및 과실판단, 한국 경찰과 공조시 통역을 맡는다


서에 가보니 데스크 안쪽이 난리였다. 한국 경찰 설명을 들으니 중령이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부상, 순천향대병원에 있다고 했다



서빙고역 근처 지하차도를 향했다

현장엔 오토바이가 사고 지점으로부터 약 30미터 가량 쓸려나간 흔적, 쓰러져있던 것을 세운 흔적, 뭐 흔히 있는 교통사고 흔적이었다. 피와 함께 덩어리진 핑크빛 물체를 봤다. 사람의 뇌 조각이라는걸 직감했다. 본적도 없는데 왜 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2차선짜리 지하차도를 사실상 틀어막듯이 한 현장은 사고와는 다른 의미로 아비규환이었다.

경찰아저씨와 이런저런 초동 조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오토바이의 인계문제 등을 정한 후 사진을 몇장 찍고 순천향대 병원으로 갔다



이때까지도 피해자의 이름을 모르고 그저 한국 경찰이 알려준 '중령' 계급 단 하나밖에 몰랐다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에 뛰어가보았으나 상황설명을 이래저래 한 이후에야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죽었고 우리는 영안실로 안내되었다
그 기분 나쁜 차가운 기운을 아직 잊지 못한다






영안실 사람이 시신을 보여주었다
뒤통수가 박살이 나 있었다. 소지품이 들어있는 봉투라며 건내준 파란 비닐봉지에는 헬멧이 있었다. 헬멧 뒷부분은 깨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봉지 안에는 피가 가득했다


구역질이 났다.


같이 따라온 미군에게 잠시 담배를 피고 오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고 겨우 한번 진정했다. 다시 바라본 시신은 눈이 채 감겨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점을 찾았다

그의 얼굴이 중령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보였다

다시 응급실에 갔다. 소지품이나 옷의 일부는 응급실 측이 가지고 있었다. 지갑을 꺼내들고 신분증을 확인해보니 모 중령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급하게 통역을 하는 나를 보고 병원 사람들은 계속 내 말꼬리를 잘라대며 어떻게든 '돈은 어떻게 내실건데요?' 라고 물어댔다

경찰아저씨는 '일단 병원에서 돈 문제를 해결해야 시신 인계를 받죠' 라며 나를 채근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과 그게 업인 사람들 간의 온도 차이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한마디 한마디 말을 옮길 뿐이었다. 정말 무기력했다



오전 근무였기에 퇴근시간은 4시였지만 이태원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를 넘긴지 오래였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배는 고프더라
경찰아저씨가 cctv를 뽑아오는걸 기다리는동안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웠다



cctv를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하차도에 진입.
살짝 커브진 곳에서 감속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었고 그대로 충돌, 운전자는 그대로 튕겨져날아가 뒷통수를 기둥에 들이박았다


뺑소니라고 의심했던 사고는 그렇게 한 소년의 치기어린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고사일 뿐이었다. 정확히 말 해줄 수는 없지만 20살도 안 된 어린 놈이었다.


그의 소지품 중 혹시 몰라 가져온 휴대폰만이 계속해서 공허하게 울려댔을 뿐이었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직접 병원을 찾아 사태파악 및 해당 장교의 위안을 했다고 한다. 저녁 8시 이후론 후임이 병원에 가서 통역을 했고 그 이후의 일은 잘 모른다


경찰서를 떠나 헌병대로 다시 향했다. 데스크에 들어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다들 어딘가 얼빠진 표정이었고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배럭에 들어간건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샤워를 하다가 토악질이 나왔다.



막사 옆 벤치에서는 한 무리의 미군들이 담배를 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친한 친구 D모 일병이 있었다
그 친구를 붙잡고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너 술 좀 있냐?'


그 후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엄청난 술을 단시간에 마셔댔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은채 밤을 지샜다. 무슨 정신력인지 07시에 기상해 휴가보고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술냄새가 들키지 않은게 용했다




그렇게 군생활 두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그리고 이듬해 전역했지


군대 떠난지 반년 다 되가지만 가끔 이렇게 고요한 밤에 혼자 있으면 어렴풋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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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밑에 크리스마스이브 휴가전날 영외교통사고 사망사건
케이스 처리하고 왔다고 온 헌병 썰 보니 말인데..
저거터질때 내가 데스크 근무하고 있었다..

좀 길다 그래도 요약있으니 잘 읽어주면 ㄱㅅ

이브날 당일날 다 12시간 주간 근무여서 ㅅㅂㅅㅂ거리며
그래도 이맘때면 기지 각계각층사람들이 도네이션도 해주고 땡큐포유어서비스 하며 각종 먹을거리도 주고가니 
이왕 근무서는거 꿀빨면서 조용히 사건없이 지나가려니 마음속으로 빌면서 한시간한시간 일하고있었다.

진짜 새벽 5시부터 전화한통 안걸려오더라. 그런 고요함은 어색할 정도로. 근데 ㅡ시간도 기억난다ㅡ오후 3시반이 조금 안됐을때 뭔가 불길한 전화가 왔다.

딱 받았는데 웬 경찰관이다. 신고전화가 한국어로 오면 필히 좋지않은 사인이길래 난 틀어놨던 음악 볼륨을 줄였다.
"여기 서빙고 지하차돈데,, 미군이 교통사고나서 죽었어요"
??!?
당장 홀드를 걸고 옆에 데스크써전 (책상)에게 보고했다.
"SGT, we have an off post ta..with casualty.." (※번역 : 병장, 영외 사고...사상자를 동반한 사고가..)
나보다도 더 꿀빨면서 있던 책상의 입이 그 순간 떠억
벌어지는것을 난 봤다.

신원조회와 경위파악이 최우선이니 난 우선 사망자의 이름이나 신원 확인된거있으면 알려달라 했다.
몇번이고 철자확인해보고 시스템조회하니 아뿔싸. 나이 지긋한 중령이 뜨는거다.
순간 ㅅㅂ ㅈ됐다 싶었다. 윗선에 즉시 올라갈 보고하며, 그 이후부터 그 윗선들이 시시각각으로 시도때도없이 데스크에 전화해서 추가정보나 바뀐사항 요구해서 남은 두어시간동안 꼴랑 두명이 일하는 데스크에도 헬게이트 열릴것은 불보듯 뻔했다.

더군다나 한국 경찰의 국가적 체계적 시스템이 아닌 카투사와 미군의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겨우겨우 돌아가는 피엠오(※퍼온이 : 헌병대 상황실? 사무실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에서, 몇년만에 처음인 영외 사망사고인데, 그런 신속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은 한계가 명확했다.

딴데는 모르겠지만 용산은 영외교통사고시 미군 트래픽(※퍼온이 : 교통관리)과 한국인 군무원이 나간다. 군무원이 없을때만 트래픽카투사, 그마저도없으면 패트롤(※퍼온이 : 순찰)뛰는카투사중 하나 골라서 보낸다. 근데 이브날이라 트래픽 군무원 없고, 트래픽카투사도 행정병스케줄이라 외박으로 없고, 설상가상 데스크 군무원선생님도 하필 당일 휴가라, 당시 영내근무중이던 3명의 카투사중 제일짬높고 일잘하고 믿을만한 동기녀석 보낼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짠하고 미안하다.

트래픽미군이랑 카투사 데스크와서 상황설명해주고 현장보내는데 다들 벙쪄있고 심지어 화나 보여서 되게 미안했다. 물론 그때 데스크써전이랑 나는 경위파악해서 보고 sop 에 따라 옵스써전, provost 써전(※퍼온이 : 대충 헌병대 상급 부대 그런거로암), pm (※퍼온이 : 이것도 헌병대 관련 부대), jpic (※퍼온이 : 이건 뭔지 모르겠다), cid(※퍼온이 : 범죄수사대), des (※퍼온이 : 이것도 뭔지 모르겠다), 121 (※퍼온이 :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 병원)등등 거의 모든 비상부서에 전화를 돌리고 해당 시각을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중령' 이 죽었다기에 심각성은 더했다.

근데 한 한두시간쯤 지났을까, 현장에서 연락이와서 얘 중령 아닌데? 이런거다. 철렁했다. 그럴리없는데, 분명 경찰이랑 몆번이고 확인했는데.. 만약 잘못된정보가 나로 인해서 보고올라간게 알려지면 그 이후 후폭풍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군인, 특히 카투사라면 이 경우 얼마나 그 신분이 ㅈ같은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알고보니 멀쩡히 살아있었던 중령 아빠와
죽은 갓 어른이된 아들의 이름은 같았다.
마지막에 jr, sr, iii 같은 suffix(※퍼온이 : 이름 뒤에 붙이는 어미)차이 빼고.
처음에 그 차이가 통보가 안되서 이 사단이 난거다.
그런데 아들이름을 조회해보니 아예 나오질 않는다.
보통 기지에 아이디카드 가지고 출입하는사람이면 예외없이 나오는데;;
근데 이것도 알고보니 골때린케이스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자녀가 아니라 본토에서 잠시 놀러와서
군속신분증이 없이 임시로 들락날락거리는 
민간인 신분이었던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관할과 관계없는 민간인 단독과실 사망사고였기 때문에 통보가 제대로 왔으면 사건처리를 안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났기에
다다시 전화해서 아빠가아니라 아들이었다고 정정해야했다.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 걱정만하던 내게 야간 교대하러 온 여자 책상이 괜찮다고, 그런거 커버쳐주려고 자기네들이 있는거라고 하는데 정말 고맙고 찡했다. 

진짜 그때 세시반부터 정신없이 전화통 붙들고 뒤에 시스템 조회하고 하다보니 교대시간 5시반을 훌쩍 넘어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하도 인수인계해줄 내용이 많아서 이브날 저녁도 대충 배달온 저녁차우로 때우고 7시 넘어서 퇴근한거같다.

그리고 다음날 크리스마스날 서류때문에 그 아빠가 피엠오 왔을때 그 표정.... 그 오토바이도 자기가 며칠전에 선물해준거였다는데...

아무튼 그때 또다른 현장의 막후는 이랬다.
거의 일년전이지만 이브날의 악몽으로 기억될듯..
긴썰 읽어줘서 감사

4줄요약
1.영외미군아들 교통사망사고가 이브날에남.
2.이름과 신원 혼선으로 보고 처음에 잘못올라감.
3.아들로 정정; 데스크 멘붕.
4.어떻게 원만히 처리.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 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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