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강습간 바미안시와 외곽지역 소도시탐색 by 소령 피보바렝코(A. P. Pivovarenko)



(피보바렝코 소령은 1980년 1월에서 12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색정찰 소대장으로 근무하였다.)


 1980년 겨울(연 초) 동안, 테르메즈와 카불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서 전황이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중요 "목"인 살랑 터널로 이르는 살랑 협곡 지역에서 적의 활동이 빈번해졌고, 게릴라부대가 종종 소련군 차량과 트럭의 호송대를 습격하였다. 3개 증강된 기계화 소총대대로 구성된 우리 기계화 소총연대(이 연대는 제 108기계화 소총사단의 예하부대이다)는 1980년 2월부터 5월까지 이 지역을 책임지역으로 부여 받았다. 그러나 그해 5월까지 도로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3개 대대 중 1개 대대가 강습부대로 재구성되었다. 이 대대는 전차중대, 사단 포병 소속의 자주포 중대, 연대 수색중대, ZSU-23-4s소대와 공병분대로 증강되었다.



(ZSU-23-4는 자주화된 대공무기로서 4정의 23mm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는 화기다. 이 화기는 대매복작전과 지상표적 파괴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수색중대는 5월 20일과 21일 사이 새벽에 고르반드 지역에 대한 첫 번째 강습작전을 실시하여, 동이 트기 전에 이 마을에 도착하였다. 강습부대가 신속히 고르반드 마을에 진입하여 10명의 무자헤딘을 사살하였다. 이후 마을의 모든 집들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무자헤딘 병력이 북쪽으로 비밀리에 철수한 후라, 수색작전 동안 몇 정 안되는 무자헤딘의 소화기만 발견하였다. 다음날 모든 강습부대는 마지막으로 바미안 시로 이동은 개시하였다. 이 강습제대는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무재헤딘의 매복에 걸려서 장갑차(BMP1)과 ZSU-23-4 1대를 잃었다. 강습부대는 바미안을 포위하였다. 우리 중대는 바미안에 진입하여 시의 블록들을 수색하였다. 우리 강습부대는 며칠동안 이 도시에서 머물러 있었다. 우리의 탐색격멸로 무자헤딘이 이 도시를 포기한 것 같이 보였다. 이어서 주변의 마을들을 수색하였지만 무자헤딘은 발견하지 못했다. 적은 일시적으로 주거지역을 포기한 것이었다. 우리 수색중대는 바미안 시에 살고 있는 아프간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였는데, 우리가 적이 보유하고 있던 63개의 적의 무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강습부대들도 2정의 적 무기만 노획했을 뿐, 이것 역기 고물에 가까웠다.
 이 강습부대는 인근 마을과 계곡을 대상으로 하여 빗질을 하듯이 탐색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이미 철수한 이후여서, 비어 있는 마을만 수색하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프룬제 군사학교 강평: 성공적인 봉새와 위력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3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달성되어야 한다. 첫째, 작전 초기에 실시하는 수색정찰을 통해서 게릴라부대의 위치뿐만 아니라, 그들의 구조, 가능한 행동까지도 알아내어야 한다. 둘째, 전술적 공중강습부대와 습격부대가 적이 철수할 통로와 도로를 차단하고, 봉쇄부대의 공격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게릴라 부대의 기동성을 가능한 제한해야 한다. 셋째, 적은 위력수색부대나 정면공격에 의해서 격파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달성되지 않으면 임무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번 절같이 실패한 경험을 통해서, 적과의 근접접촉, 봉쇄부대의 배치, 이를 통한 적의 행동 제약, 뒤 이은 게릴라부대의 포위와 격파 등이 얼마나 중요한 순서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적을 탐색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서, 수색부대의 효과적인 활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투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예하부대들이 수색과 지원 그리고 화력지원과 본대 등으로, 신혹하고 효과적으로 분리되어 작전에 임해야 한다.

 저자 강평: 지휘관은 게릴라 부대의 본대를 고착하거나, 적의 퇴로를 차단 또는 적이 아군이 의도하는 지역으로 유도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본대의 철수를 엄호하려는 무자헤딘의 후방경계 부대와 전투를 벌였을 뿐이다. 지휘관은 그의 수색정찰대를 활용하지도 않았고, 그거 단계적으로 작전활동을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임무를 신속히 달성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봉쇄부대없는 위력수색은 시간의 낭비이고, 자기 부대의 손실만 초래하는 행위이다. 이 지휘관은 야전감각과 주도권 추구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로 느껴진다. 근본적으로 이 절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단편적이 예에 지나지 않으며, 교훈이 너무 미약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점을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소련군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소련군은 유럽 대평원에 대비하여 훈련하였기 때문에 아프간이라는 새로운 환련을 극복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전술지휘관은 주도권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였고(소련의 전략 개념 자체가 전술적인 주도권이 전략 및 작전적 차원의 주도권을 저해할 수 있다고 해서 간과되어 왔음.) 무자헤딘은 이것을 역이용하였다. 소련의 지휘관들은 수색정찰대를 수색정찰에 활용하지 않고, 전투임무를 부여하였다. 수색정찰대는 기계화 소총중대보다 잘 훈련되고, 기강이 잘 서 있는 부대이나, 당장 급한 전투에 투입하다 보니 그들의 사상률이 타 부대에 비해 다소 높았다. 이렇게 수색정찰대를 잘못 활용한 것은 수색정찰 임무만 전담하기에는 아프간 지역에 소련군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아프간의 소련군 야전부대는 장기간 병력 부족으로 고생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 절에서 등장하는 바미안 시는 전쟁기간 동안 더 이상 정부군에 의해서 통제받는 바미안 주의 수도가 아니었고, 테메즈로 연결되는 도로 역시 사용할 수 없어서 동쪽으로 150 km 이격된 우회도로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ps. 읽으면서 타이핑하니까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기는 하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