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이나 되는 일본군을 3천명의 조선군으로 지상전에서 물리친 행주대첩


권율스스로 화차가 있어 승리할 수 있었던 전투라고 말할 만큼 화차의 비중이 부각된 전투였음


해외에서도 40대의 화차로 3만명을 물리친 전투라고 하면서 화차의 실전사례로 주로 언급하는 전투고


그런데 이 전투에서 위 그림에 나오는 문종화차말고도 활약한 화차가 또 있음

이 사진에 나온 네모난 상자가 바로 행주대첩에서 쓰인 변이중화차


조선시대 문신이였던 변이중이 개발한 화차임

변이중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무기를 개발,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음


변이중은 당시 일본군의 주력 무기인 조총에 큰 관심을 나타냈고 조총에 대한 방호력을 가진 신무기를 여러가지 만들게됨

그중 한가지는 소가 끄는 전차인 우거


수레에 나무벽을 세우고 거적데기를 씌워서 조총에 대한 방호력을 갖춘 전차였음


병사들이 안전하게 안쪽에서 사격할 수 있게 만든 장갑차같은 물건


변이중은 우거를 수십대 만들고 실전에 투입해서 학익진까지 펼쳤는데 일본군이 바보는 아니라서 조총대신에 불화살을 쐈음


덕분에 우거는 모두 불타고 병사들도 전차안에서 다 타죽었다고 함


실록에서 대놓고 크게 패했다고 적혔을 만큼 대패한 사건임


괴팍하고 자만심강한 인물이라고 까인 건 덤


나름 머리좀 굴렸지만 전장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실패한 사례

우거말고도 만든게 바로 이번에 소개할 변이중 화차임


왼쪽의 그림은 문종화차의 수레와 신기전기,총통기고 오른쪽에 네모가 바로 변이중화차


변이중이 집필한 망암집에 그려진 화차인데 위의 그림과 함께 "수레하나에 40개의 구멍을 열어 승자총통40개를 도화선으로 연결하여 발포한다"라는 설명문이 함께 있음


설명만 보면 수레에 탑재한 크레모아수준임


정사각형모양을 한 그림과 40개의 승자총통이란 기록덕분에 복원할때는 주로 이렇게 구멍뚤린 네모난 상자로 표현되는 편


단순한 생김새지만 변이중후손의 손에 복원되어 행사에도 쓰이고 드라마에도 등장해서 조선의 장갑차로 표현되면서 은근히 미디어에 자주 나타나는 화차임


그런데 이렇게 복원된 변이중화차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인물이 있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김평원교수가 그런 경우임


김평원교수는 몇가지 근거를 들면서 이러한 복원형태에 문제제기를 했음


1.장갑차형태의 문제점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복원된 변이중화차의 모습은 사진처럼 너무나도 육중한 모습임


당시 변이중의 전란에 급하게 전라도로 내려가서 병기들을 제작하고 있었음 


승자총통이야 여기저기서 주워서 쓰면 되지만(?)열약한 환경에서 저렇게 사면을 다 막는 식으로 중무장한 전차를 한두개도 아니고 우거포함해서 300대나 만드는건 전라도에 있는 나무를 다 깎아도 무리인 편임


그리고 변이중의 화차가 움직이는 것이 나는듯이 빨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는 기록도 있어 원래 변이중화차는 좀 더 경량화한 모습일 수 있음



게다가 지금처럼 복원된 변이중화차는 외관은 전차인데 바퀴는 화차처럼 2개뿐인 혼종의 모습을 하고 있음


사면을 다 막는 전차의 형태라면 무게중심때문에라도 바퀴를 4개로 만들어야 하는데 복원된 변이중화차는 억지로 2개의 바퀴를 쓰고 있어서 위에 사진들 잘 보면 기울지말라고 모든 모서리에 받침대를 끼우고 있음


2.승자총통의 점화방식

"수레하나에 40개의 구멍을 열어 승자총통40개를 도화선으로 연결하여 발포한다"


변이중화차에 탑재된 승자총통의 점화방식을 나타낸 기록임


위에 기록대로라면 40개를 도화선으로 연결해서 한번에 발포한다는 뜻인데 저렇게 3방향으로 나누어진 승자총통을 한번에 발사한다는건 적이 없는 방향으로도 화약과 탄약을 소비한다는 소리임

변이중화차가 혼자서 전장에 덩그러니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함께 진을 짠 병사들이 옆에 있을텐데 그 방향으로도 탄환을 발사하게 만든다는건 상상하기 힘든 일


위 그림같은 경우엔 옆까지 쏘게 만들면 당장 보조하고 있는 병사가 맞게 생겼고 징비록드라마장면을 보면 앞면만 쏘고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음


분명 승자총통40개를 함께 도화선으로 묶어서 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미디어에서는 정면에서 쏘는 모습만 나오고 옆면에서 함께 발사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놓고 기록과 불일치하는 연출을 하고 있다는것


결론: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망암집의 기록과 위에 나온 문제점,행주산성의 환경을 고려한 교수팀이 복원한 모습임 (미디어에서 나오는 복원물보다 경량화,40개를 한번에 쏠 수 있도록 한 구조)


이동시와 전투시의 모습을 따로 두어서 최대한 기록에 맞게 복원한 모습일텐데 망암집엔 저렇게 상황에 따라 형태를 변형한다는 기록이 없어서 저것도 창작이 큰 편


남은게 저렇게 단순한 그림뿐이고 기록도 얼마 없는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나의 물건을 두고 복원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사례임


이런식으로 우리나라 전통 무기에 관심과 비판할 수 있는 마음이 많아졌으면 좋겠음


아 그리고 나무위키보는데 뭔놈의 변이중화차타령이 많은지 모르겠다.


무슨 행주대첩,화차문서마다 "사실 쓰인건 모두 변이중화차뿐이다,하지만 변이중화차가 나오지 않은건 아쉽다."이런 말들이 도배되어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