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를 보았다. 충청도 행대 감찰(行臺監察) 김종서가 장계를 올리기를,
"도내 각 관청에 기민(飢民)이 남녀 장정과 약한 자 모두 12만 2백 49명인데, 진제(賑濟)한 미곡이 1만 1천 3백 11석이고, 장(醬)이 9백 49석이라."
하였고, 함길도 행대 감찰 최문손(崔文孫)이 장계하기를,
"기민이 1만 2천 2백 23명이라."
하니, 임금이 김종서의 장계한 바로써 각도 감사에 명하여,
"병이 있는 집에는 등급을 높여서 진제하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 5월 10일 갑인 2번째기사
함길도 구석의 굶주린 사람들을 한자리수까지 전부 파악해서 조정에 보고함
종이로 된 보고서 작성만 탑, 그게 끝임
근대 이 이후에 귀신같이 떡락해서 세종때 토지계산어케함??이소리 나오잖아
18c 초중반 즈음부턴 그것조차 밀릴기운이 풀풀 나는디
종이로도 못하는 데 널림 실은
저게 다 나라에서 나온 사람들이 발로 이리뛰고 저리뛰어서 눈물겹게 뺑이치면서 남긴 기록인데 무슨 붓글씨 놀음인줄 아네. 상세하게 글로 남길수 있다는거 자체가 행정력 입증이다 이 친구야
정확하다는 근거가 없어서........
지금도 인구조사 사람이 발로 방문해서 하잖아 그거의 전근대 버전인데 그걸 정확하게 해내는게 행정력이지 뭐
1차사료가 정확하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떻게 찾아야하냐? 막말로 통계청의 각종 근거는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