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몬테의 세 권으로 나눈 군용무술과 군사학 선집

Petri Montii Exercitiorum Atque Artis Militaris Collectanea in Tris Libros Distinc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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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중세 전투의 프로가 되는 길

http://gall.dcinside.com/m/war/462428 (데이터 주의)


2편. 중세 전투의 프로가 되는 길 2

http://gall.dcinside.com/m/war/464001


3편. 15세기 이탈리아 용병대장의 군사학 강의

http://gall.dcinside.com/m/war/468485


4편. 중/근세 군인의 삶: 웅변술과 철학

http://gall.dcinside.com/m/war/47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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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12장. 완벽한 군인이란 무엇인가


용맹한validus이라는 용어는 맥락상 강하고 활력 있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며, 카스티야어에서는 무기를 잘 다룬다는 의미를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카스티야어에서는 호전적인bellicousd이라는 말 역시 전투에 숙련됐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용맹함의 문제로 돌아가서, 이번 장에서 논의할 주제는 '하나의 무기만 잘 다루며 하나의 방식으로만 싸우는 군인을 과연 용맹하다고 할 수 있는가'이다.


내 생각에는 일단 검이든 창이든 손에 맞는 무기 하나를 들고 굳건한 자세로 적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용맹하다고 불러도 되는 게 맞다. 그러나 여기에 부족함과 완벽함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경우 나는 완벽하게 용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자신의 명성, 재산, 신체에 대한 외부의 위협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며, 운이 좋은 시기에는 음식이나 여자 등이 충분히 제공되기도 하지만 운이 없을 때는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서 버텨야 한다. 이럴 때 지휘관 자신마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다면 군대라는 집단이 유지될 수 없다.


지휘관이 미식에 빠져 있는 동안 적의 공격을 받기라도 한다면, 그는 돼지처럼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지휘관이 다른 병사의 여자를 취한다면, 원한을 사는 동시에 자신의 몸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지휘관이 그 밖의 오락거리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부대 운영에 신경을 덜 쓰게 되고 적의 계략를 놓치게 될 것이다.

지휘관이 전리품의 약탈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부대 전체가 불시의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로 있을 것이다.


이는 전부 군대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지휘관은 언제나 친근감 있고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지휘관에게 온갖 추문이 따라다닌다면 모두가 그를 배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량이 부족할 때는 그 사실을 모두에게 공표한 다음 남은 양을 계산하면서 아껴 먹고, 배급을 받을 때 지휘관이 솔선수범해서 병사들보다 적게 받아가야 한다.



세간의 소문에는 누구는 도보전투에서 용맹하지만 다른 누구는 마상전투에서 용맹하고, 누구는 검을 들었을 때, 누구는 창을 들었을때, 누구는 유격전에서, 누구는 야전에서 용맹하다는 식으로 군인을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이런 지엽적인 기준으로 군인의 능력을 평가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 경험 많은 고참병들은 적군의 공격이든 도적의 습격이든, 무기가 있을 때든 없을 때든, 창을 들고 있을 때든 검을 들고 있을 때든, 말을 타고 있을 때든 걸어다닐 때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전쟁 중에 겪는 일들을 요약하면,

어떤 날은 포로를 감시하고, 다른 날은 포로가 돼서 감시를 받는다.

어떤 날은 적을 추격하고, 다른 날은 적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친다.

어떤 날은 강을 헤엄쳐 건너가고, 다른 날은 벽을 기어 올라간다.


말 그대로 온갖 역경을 겪는 것이다.


어떤 군인이 갑옷을 입고 야전에서 싸울 때는 용맹하지만 천옷만 입고 싸울 때는 약해빠졌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그가 포로로 잡혔는데, 감방은 허술하고 감시병도 두세 명, 혹은 한 명 밖에 없다. 그러나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는 감히 탈출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경비병을 때려눕히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탈출을 하려고 해도 굴을 파는 재주나 벽을 넘는 재주 정도는 있어야 한다.


반대로 어떤 군인이 천옷만 입고 싸울 때는 용맹하지만 갑주전투에 자신이 없다면, 그가 얼마나 재빠르건 간에 전열이 맞붙는 순간 너무 겁에 질려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또한 다른 기술에는 숙련됐으면서 수영 하나만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얼마나 용맹하건 간에 강을 헤엄쳐 건너 적과 대적해야 할 상황에서 항상 패배할 것이고, 검 하나만 잘 다루는 사람은 창을 들고 싸워야 할 때 곤경에 처할 것이다.


체력이 약한 사람도 좋은 말을 타고 있고 기마술이 뛰어나면 남들 만큼 잘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도보전투에서 약하다는 점 때문에 언젠간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경사진 지형이나 높은 성벽을 말을 타고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완벽하게 용맹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얻는 방대한 지식과 운동을 통해 얻는 강인한 체력, 산과 협곡과 초원을 통과하고 강을 헤엄쳐 건너는 기술, 남들의 호의와 존경을 받기 위한 친절하고 관대한 태도 등 배울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면 전부 습득해야 한다.


특히 무술은 평생 수련해야 되는 것이다. 지휘관이 도보전투와 마상전투에 뛰어나면 병사들도 좋아하고, 지휘관의 능력에 만족한 병사들이 일도 더 잘 한다.



현대인 중에 완벽하게 용맹한 군인의 모범을 찾는다면 무르시아 왕국의 알폰소 파하르도 경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용맹함만으로 일국의 군주가 되었고,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삼국과 동시에 싸워서 다 이겼다. 그리고 적어도 그가 군주에 걸맞는 미덕을 보이는 동안은 왕국이 번영했다.


알폰소 왕은 풍채가 좋은 미남에 달변가였고, 달리기, 높이뛰기, 레슬링, 창 던지기, 도보전투, 마상전투에서 누구도 그에게 대적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 누가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일대일 결투든, 소규모 접전이든, 대규모 전투든, 적이 많든 적든,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적의 숫자가 얼마나 되든 간에 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을 테고, 신하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나 혼자 그들을 다 물리칠 수 있으니. 적들은 내게 대적한다는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순결하고, 신실하고, 겸손하고, 관대한 삶을 사는 동안은 왕국이 번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모든 미덕을 저버렸고, 이웃의 재산과 아내를 탐내기 시작했다. 결국 길바닥의 돌멩이들 조차 날 혐오할 지경에 이르자, 과거에 모든 싸움에서 이겼던 것처럼 이제는 모든 싸움에서 패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은, 전투에서 용맹함을 보이고 싶다면 우선 너 스스로 고결한 행동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체력과 교양을 쌓으며, 무엇보다 네 이웃에게 관대함과 친절함을 보이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군사 지휘관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용맹하다고 불릴 자격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지휘관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읽음으로써 수많은 교훈을 배우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다시 여러 종류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을 거쳐야 한다.


지휘관은 자연의 덕(natural virtue)을 배움으로써 상황에 맞는 연설로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누구보다 뛰어난 체력으로 제일 앞장서서 길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지휘관이 허약해서 적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다면 병사들의 사기도 얼어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휘관에게 교양과 지혜가 부족하다면, 그가 아무리 용맹하게 앞장서서 적들을 때려눕히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더라도 그날의 승리는 전적으로 우연에 불과하며 언젠간 더 신중한 적을 만나서 패배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대의 역사 기록들에서 가장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런 기록들에서 가장 많은 적을 이겼고,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으며, 많은 전투에서 연승을 거둔 지휘관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예리한 지성과 풍부한 교양을 가졌고 신체적으로 정력이 넘치는 사람들 뿐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다윗 왕은 비록 체격은 작았지만 힘은 장사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와 헥토르는 '모든 남자들 중에 가장 감탄스러운' 힘과 지혜를 가졌다.

알렉산드로스는 힘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대신 활발하고 근면하고 교양이 풍부하다는 언급은 많이 나온다.

한니발에 대해서는 이미 쓰여진 것 이상으로 더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신체와 정신 양쪽에서 당대의 모든 사람들을 능가했다고 한다.

샤를마뉴, 부용의 고드프루아, 엘 시드 로드리고 역시 책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모두 힘 세고 지혜로운 영웅들이었다.


즉 예로부터 완벽한 군사 지휘관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은 거의 모든 분야의 모든 기술에서 뛰어난 자질을 지녀왔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짐꾼 같은 육체노동자들은 남들보다 힘이 세기만 해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신체적으로 허약한 사람도 최고의 학자가 될 수 있다. 교양 없고 몸까지 허약한 사람이라도 금전감각만 있으면 상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군사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능력과 기술에 숙련되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친구와 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며,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끔찍한 살생을 저지르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 해도.



지금까지 군사 전문가로서 성취해야 할 수많은 기술들을 열거해왔지만, 그렇다고 군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본받을만한 지혜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단지 필요성에 근거해서 군인과 다른 직업인 사이의 차이를 논증하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군인이 아닌 사람들 역시 길을 따라가거나 황무지를 통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추위와 더위를 견디는 법, 사람이나 동물과 싸우는 법, 다리를 놓거나 장대를 들고 뛰거나 헤엄쳐서 강을 건너는 방법을 배워두는 것이 좋다.


강을 건너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은 예로부터 기피되는 일이었고, 부모들 중에는 아이들이 개천에서 노는 것을 금지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들이 수영을 배움으로써 얻는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사고가 날 것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영을 배운 사람이 수영을 모르는 사람보다 강에 빠져 죽기 쉽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수영을 배운 사람이 더 깊은 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영을 배우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다. 오히려 수영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멀리까지 헤엄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기 쉬울 것이다. 수영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오랫동안 배울 수록 안전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릴 때부터 배울 수록 더 안전하다.


수영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자기 능력 이상으로 멀리 헤엄쳐 나가는 일이 없고, 위험을 감지하면 곧바로 옷을 벗어 던질 것이다. 그러므로 원칙만 잘 지킨다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던져지지 않은 이상 물에 빠져 익사할 걱정은 없다.


많이 양보해서 수영을 배우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어떤 지식을 배우는 것이 칭찬받을 일이라면 반대로 지식이 부족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실생활에 자주 사용되는 지식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인간의 거주지 근처에는 항상 큰 물이 있기 때문에, 살다 보면 좋든 싫든 물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개천에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수영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수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므로 이를 막는 것은 부당한 처사이기도 하다.



13장.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야 하는 이유


어떤 대상에 대한 지식을 현실에 응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상의 본질이 단단함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대적할 때 더 단단한 물건을 다루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덕이 미덕으로 파훼되듯이, 가끔 어떤 개념은 더 강한 힘에 의해 손상되지 않는 대신 반대되는 개념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어디까지나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작용에 관한 것이므로 더 이야기 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전쟁의 본질은 잔혹함에 있다. 폭력과 살인, 약탈과 감금이 전시의 일상이며, 이를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자는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훌륭한 전사는 본성에 의한 것이든 훈련에 의한 것이든 잔혹함을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서를 읽어 보면 하느님께서 지상의 악한 존재들을 칼로써 멸하게 하신 수많은 예시를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의 한니발 역시 전장에서 대적한 적들에게 잔혹했으며, 관용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유명한 명장들도 예외 없이 그에 뒤지지 않는 잔혹함으로 적을 굴복시켰다. 자비와 관용은 최종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뒤에나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인물 중에는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왕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인들의 방식을 모방해서 그들을 패퇴시키고 왕국에서 내쫓았는데, 그 과정에서 진정성이나 신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기만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이탈리아를 유린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록 잔혹한 행위들을 권장하거나 찬양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의 관습으로 용인하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온화하고 인자한 군주를 지지하면서도 전시에는 오만하고 잔혹한 군주를 두려워하며 따르는 것이다.


교육을 잘 받았거나 경험이 풍부한 일부 식자들은 평범하거나 모자란 범인들이 절대 닿지 못하는 지점까지 통찰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러므로 전쟁을 대비하는 군주들은 재능 있는 신하들을 다른 나라에 보내서 그곳의 문화와 군사 전략을 공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들이 나중에 적이 됐을 때 적절한 대응 방법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들은 각자 자기들 고유의 군사 전략을 가지고 있고, 각국의 군대가 맞붙으면 주사위 게임이나 체스, 혹은 레슬링 시합처럼 전략에 따른 유불리가 드러난다. 조반니는 피에트로를 이기고, 피에트로는 페르디난도를 이기며. 페르디난도는 다시 조반니를 이기는 식이다. 하지만 조반니 혼자서 다른 두 사람의 전략을 연구한다면 피에트로를 이기면서 페르디난도 역시 이길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은, 군인들은 고향에서 싸울 때보다 외국에서 싸울 때 더 사나워진다는 점이다. ‘젖소도 제 집에서는 황소를 상대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속담은 대개 현실에 맞지 않으며 외지에서 싸우는 군대는 오히려 집 없는 늑대와 같다. 그들은 언제든 전쟁으로 한 몫을 잡을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고, 친척이나 친구를 우연히라도 마주칠 걱정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눈에 보이는 사람을 약탈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 그 나라의 군주가 상대국의 전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면, 지역민들이 약탈자들을 간단히 쫓아낼 수 있도록 그들의 약점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전투만 잘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군대가 넓은 장소에서 맞붙는 야전은 주로 양측 모두가 싸움을 원하고 있을 때나 일어나는데, 보통은 전력이 약한 쪽이 강한 쪽을 피해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공세측의 작전 지속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지연 작전에 말려든다면, 한동안은 승세를 유지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민들의 호의를 잃어버리고 인력과 예산의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전쟁을 준비하는 군주나 장군들은 반드시 전시 복무 경험이 많은 사람들한테만 자문을 받아야 한다. 실제 전투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도 거기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매우 염려하므로, 그 중 겁이 많은 사람은 특히 전쟁의 위험성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Pietro del Monte (1457-1509)



출처:

Jeffrey L Forgeng, 『Pietro Monte's Collectanea: The Arms, Armour and Fighting Techniques of a Fifteenth-Century Soldier』

Mike Prendergast and Ingrid Sperber, 『The Collection of Renaissance Military Arts and Exercises of Pietro Mon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