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19471



(위의 책 <나치의 병사들>이란 책을 쓰며 독일 국방군 무오설의 허구성을 말한 역사학자)


유럽이 그토록 강조해 온 전략적 자율성은 오늘날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상황에서도 유럽의 국방력 강화는 여전히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가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고 있으나, 면면을 뜯어보면 이는 사실상 모병제의 변칙적 운영에 가깝다. 징집 대상 연령의 남성들을 심사한 뒤 자원자에 한해 병력을 충원하는 방식을 두고 징병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기만이다.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해 병력을 확보하는 징병 본연의 취지는 사라지고, 행정적 편의와 정치적 타협만 남았다.


역사학자 죈케 나이첼의 경고는 그래서 더 뼈아프다. 나치 정권의 군국주의가 초래한 해악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한 그가 '무늬만 징병제'가 아닌 실질적인 강제 징병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현재의 안보 위기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나이첼은 실효성 있는 국방 개혁을 가로막는 사회민주당(SPD)을 향해 그들이야말로 독일의 안보 리스크라(Sicherheitrisiko)고 직격탄을 날렸다. 역사의 과오를 경계해야 할 학자조차 지금의 안보 공백이 초래할 미래가 과거의 망령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사민당(SPD)는 줄곧 독일에 필요한 국방개혁을 훼방놓기만 했다. 사민당은 보편적인 징병제 도입을 반대하였고, 국방비의 효율적 운용에도 미온적이었으며, 같은 사민당 출신의 국방장관 피스토리우스의 개혁안을 계속 방해했다. 


유럽은 말로만 자율성을 떠들 뿐 정작 그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은 외면하고 있다. 병력과 보급은 물론이고 현대전의 핵심인 군수 생산, 공중급유, 정찰 자산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미국 없는 유럽 안보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은 이러한 종속적 구조를 직시한 냉정한 진단이다. 자율성은 누군가 부여하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물리적 힘에서 나오는데, 유럽은 그 힘을 기를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전략적 자율성을 회복하려면 뼈를 깎는 고통과 환골탈태의 각오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효성 없는 가짜 징병제 논의조차 거부하며 시위에 나서는 독일 청년들의 모습에서 안보 주권의 미래를 찾기란 어렵다. 국민적 합의와 희생이 뒷받침되지 않는 안보 전략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일 수밖에 없다. 유럽이 지금처럼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전략적 자율성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