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동군
이란, 군민관계, 그리고 중부사령부의 전략적 소용돌이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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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는 일부 국방·외교정책 분야에서 일종의 밈(meme)이 되었다. 미국의 중동 내 전략적 타성(惰性)을 가리키는 약어로서, 그 지역에서 자원과 관심과 정치적 의지가 별다른 지속적 성과 없이 끝없이 소모되는 현실을 상징한다.¹ 그런데 밈이 현실이 되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역대 행정부들은 21세기의 결정적 도전—중국의 부상, 강대국 경쟁, 해양 안보—이 인도·태평양에 있다고 공언하며 아시아로의 '중심축 전환(pivot)'이나 '재균형'을 약속해왔다.² 그러나 그 명료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중력은 계속 작용한다. 중부사령부는 미군의 작전적·제도적 중심으로 남아, 고수요 자산을 끌어들이고 배치 주기를 좌우하며 정책 대역폭을 독점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끝 없는 공중전은 수십억 달러의 탄약과 항공기를 소모하면서도 아무런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³ 지난 토요일 이란 핵시설에 대한 타격 역시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⁴ 이처럼 중부사령부는 관할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우선순위를 낮추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관료적·전략적 소용돌이다. 이 역설은 미국의 대전략 내면에 있는 더 깊은 기능 장애를 드러낸다. 즉, 군사 구조를 지정학적 우선순위에 맞추지 못한 무능이다. 이 기능 장애의 중심에 중부사령부가 있다. 미국의 관동군—정책의 중립적 집행자가 아니라, 스스로 집행해야 할 정책을 점점 더 형성하는 깊이 고착된 제도로서의 관동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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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사령부는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응하여 창설된 신속배치합동기동부대(Rapid Deployment Joint Task Force)의 후신으로, 1983년에 공식 창설되었다. 그 목적은 에너지 자원과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인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된 중동·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군 작전에 단일 지휘 구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1986년 골드워터-니콜스 법(Goldwater-Nichols Act)이 통합전투사령부를 강화하고 각 군(軍) 간 합동 작전계획을 의무화하면서 중부사령부의 권한과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⁵ 그럼에도 초기에 이 사령부는 한직(閑職)으로 여겨졌다. 진급을 원하는 야심 찬 장교라면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였다.⁶ 하지만 이 기동부대와 그 후신이 이후 40년간 미국 외교·국방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1990~91년 걸프전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중부사령부를 변방의 사령부에서 미국 원정전의 핵심으로 끌어올렸다.⁷ 노먼 슈워츠코프(H. Norman Schwarzkopf) 대장의 지휘 아래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의 신속하고 결정적인 수행은 중부사령부를 전국적 명성으로 끌어올렸고, 페르시아만을 미국 현대전 수행의 시험장으로 확립했다. 이 새로운 명성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은 중부사령부의 중심적 역할을 굳혀, 그 책임 지역이 이후 20년간 미국 국방 정책의 작전적 템포와 전략적 상상력 모두를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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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은 제국 일본 육군에서 가장 명망 있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령부로, 러일전쟁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만주에 주둔했다. 본래 러일전쟁 이후 남만주에서의 일본 이권을 수호하기 위한 국경 수비대로 구상되었으나, 점차 반자율적인 권력 중심으로 탈바꿈하여 도쿄로부터 독립성을 점점 높여갔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31년의 봉천사변인데, 관동군은 철도 폭파를 위장하여 천황, 문민 정부, 대본영(大本營) 어느 쪽의 공식 승인도 받지 않은 채 만주 전면 침공 및 점령을 개시했다.⁸ 이로써 관동군은 일본의 대륙 팽창 야욕을 크게 확대시킨 것은 물론, 일방적인 군사 행동을 통해 국가 정책을 형성할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과시했다.
이후 10년에 걸쳐 관동군은 일본 제국의 정치 구조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일본 군사 자원의 불균형적인 몫을 흡수하고, 만주국 내에 자체적인 정보·산업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원래의 방어적 임무를 훨씬 넘어서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능동적으로 좌우했다. 관동군 장교들은 상당한 이념적·관료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격적 팽창주의를 옹호하고, 도쿄의 민간 및 온건 군사 세력의 목소리를 주변부로 밀어냈다.⁹ 이 사령부는 자신의 전선에서 거의 완전한 자율성으로 작전을 수행하며, 중앙 권위를 자주 뒤집고 초국가주의적 비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국의 정책을 왜곡했다.¹⁰ 중국 전역과 동남아시아로 일본의 군사적 개입이 확대되면서, 관동군의 일방주의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지역 사령부가 멋대로 작동하며, 일관된 전략이 아닌 관성(慣性)에 이끌려 국가 전체를 건 승산 없는 전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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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사령부와 관동군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은 단순한 역사적 흥미거리가 아니다. 이는 지역 사령부가 어떻게 원래의 임무를 넘어 국가 전략을 형성하는 자율적 중력의 중심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에 관한 더 깊은 통찰을 드러낸다. 두 기관 모두 인식된 전략적 위기에 대응하여 탄생했다. 관동군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륙 안보 불안에서, 중부사령부는 1970년대 말 이란의 붕괴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둘러싼 미국의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두 경우 모두, 이 사령부들은 애초에 국가 정책의 지역적 실행 도구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각각 일종의 제도적 자기이익을 발전시켜, 자원과 관심을 독점하는 동시에 국가 의사결정 구조 위로 영향력을 투사했다.
관동군의 경우, 이 역학은 특히 위험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만주에서의 전쟁 도발이라는 일방적인 결정은 일본을 군국주의와 대륙의 수렁으로 이어지는 되돌릴 수 없는 경로에 올려놓았다. 도쿄의 민간 당국은 군의 모험주의를 억제할 의지도, 수단도 결여돼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부사령부가 문민 통제를 벗어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전 지구적 태세에 대한 불균형적인 영향력을 축적해왔다. 9·11 이후 중부사령부는 미국의 중동 전쟁 허브가 되어, 정보 자산과 특수작전부대, 전 지구적 군수 인프라를 빨아들였다.¹¹ 역대 행정부들은 인도·태평양으로의 중심축 전환을 거듭 약속했으나, 중부사령부의 지속적인 중심성이 이 노력을 잠식해왔다. 중부사령부의 작전적 요구는 전략적 타성을 만들어내어, 강대국 경쟁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선들에서 주의와 전투 준비 태세를 흩트린다.
관동군과 중부사령부 모두, 위기를 통해 권한을 부여받은 지역 사령부가 어떻게 매몰비용, 관료적 이익집단, 그리고 지속적 개입의 논리를 생성함으로써 국가 전략을 왜곡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경우 모두, 본국은 점점 더 자율화되는 지휘 구조에 기율을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관동군이 궁극적으로 일본을 파멸적인 과잉팽창으로 이끌었다면, 중부사령부는 같은 규모의 재앙을 낳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중력은 전략적 명료함을 침식하는데 기여해왔다. 그 결과 미군은 장기적 전략 목표가 다른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부사령부의 책임 지역 내에서 계속해서 전술적으로 활동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요컨대, 이 비교는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경고 사례로서 기능한다. 작전 사령부들이 정책을 단순히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하기 시작할 때, 전략적 관심과 자원 배분의 기본값이 될 때, 그것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위험에 처한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모두, 이 제도적 관성은 국가 지도부가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경우에도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도전은 정책의 방향만이 아니라 구조적 개혁의 문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의 지정학적 현실에 맞게 지휘 우선순위를 재정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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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사령부의 부상은 미국의 군민관계(civil-military relations)에 대해서도 심각한 함의를 지니는데, 특히 작전적 필요성이 어떻게 전략적 재량을 점진적으로 잠식할 수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미군이 헌법적 의미에서 확고하게 문민 통제 하에 있다 해도, 국방 기획에서 중부사령부의 지속적인 지배는 영향력이 어떻게 작전 수준으로부터 위로 이동하여 민간 정책 선호도와 정치적 위험 감내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부사령부가 전투 경험, 정보 흐름, 그리고 기관 간 조율의 중심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민간 고위 지도자들은 종종 그들의 지역 상황 평가와 프레이밍에 구조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러한 역학은 군민관계에서 미묘하지만 강력한 비대칭을 만들어낸다. 중부사령부 사령관들은 군사적 실행 가능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평가에 대해서도 권위 있는 목소리가 되어, 정책 선택지를 그 사령부의 작전적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것들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두 가지 주요 효과를 낳았다. 첫째, 단기적 군사 해결책이 장기적 전략 재조정보다 우선시되어 왔다. 여러 행정부의 민간 지도자들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으로 미국 정책을 재정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중부사령부 책임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들—테러 위협, 이란의 도발, 지역 불안정—은 주의와 자원을 끊임없이 중동과 중앙아시아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불과 이틀 전, 브래드 쿠퍼(Brad Cooper) 중부사령부 부사령관은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란의 군사 능력을 지칭하며 "전술적 차원에서는 약화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¹² 그러나 그는 수년간의 제재와 대리전, 코로나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중동 주둔 미군에 여전히 "상당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¹³ 그렇다면 어느 쪽인가? 이 엇갈린 메시지와 모순은 이란 및 지역 전반에 대한 중부사령부의 태세를 둘러싼 더 광범위한 전략적 혼란을 상징한다.¹⁴ 한편으로 이란의 재래식 군사 역량은 약화되었고, 이란의 대리 세력은 전장에서 손실을 입었으며, 최대 압박 정책이 일정한 효과를 발휘했다. 다른 한편으로 중부사령부는 이란을 지속적, 심지어는 커져가는 위협으로 계속 프레이밍하며, 이를 근거로 병력의 전진 배치와 지역 기지 유지, 상시적 위기 대응 준비 태세를 정당화한다.
이 긴장은 단순한 수사적 비일관성을 넘어 무언가를 드러낸다. 바로 중부사령부의 지속적 지배를 추동하는 제도적 논리다. 이란이 전술적 차원에서 진정으로 약화되었다면, 강력한 전진 배치의 전략적 정당성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란이 약화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위협으로 남아 있다면, 어떤 지표를 사용하여 성공을 측정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태세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중부사령부는 다른 어떤 고착된 사령부와 마찬가지로, 자원의 몫과 존재 이유를 유지하기 위해 위협에 대한 인식을 지속시킬 유인을 가진다. 토니 스타크(Tony Stark)는 최근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 지난 10년간 모든 중부사령부 사령관과 케이블 뉴스 게스트들이 떠들어대며 인도태평양사령부로부터 항공모함과 토마호크 미사일을 빼앗아온 '무시무시한 크고 흉악한 늑대'는 사실 그냥… 굶주린 코요테다. 야생적이지만 당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진짜 위협은 아닌.¹⁵
민간 정책입안자들은, 지역 불안에 무관심하거나 안이하다는 인상을 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에, 이런 평가에 종종 순응한다. 그 결과는 목적을 대신하는 존재감, 명료함을 대신하는 타성의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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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부사령부의 작전적 템포는 전시와 평시 간 군민 상호작용의 경계를 흐리는 저강도 영구전쟁 상태의 정상화에 기여해왔다. 지역적·시간적 한계가 전혀 설정되지 않은 무력사용승인(AUMF)의 무게 하에 의회의 감독은 위축되었고, 민간 지도부는 신속성과 군사적 판단이라는 명분 아래 중부사령부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일이 잦았다. 그 결과 중부사령부는 군사 작전의 창구일 뿐 아니라, 지역 외교와 정보 공유, 우방국 군대 육성의 주된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는 국무부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기능이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있기 며칠 전, 전투사령관인 에릭 쿠릴라(Eric Kurilla)가 민간 또는 군 상관들에게 보고한 것보다 이스라엘의 동향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의도적이든 아니든 상부에 전달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여러 보도가 있었다.¹⁶ 배경 설명을 요청한 한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부 내 어느 누구보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하려는지, 그들의 정보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더 나은 정보를 우리보다 먼저 갖고 있었다."¹⁷ 폴리티코의 기사에서 또 다른 소식통은 배경 설명을 전제로, 그가 다른 국방부 고위 관료들을 무시하며 이란 문제에 대한 미국의 다음 행보에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¹⁸
이는 여러 이유에서 문제적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지휘 계통과 문민 감독 원칙의 심각한 붕괴를 시사한다. 이 지역 사령관 또는 다른 지역 사령관들이 지역 파트너와의 민감한 관계를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정도, 그리고 중요한 정보가 위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걸러지거나 지연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의도적 태만이 아니더라도, 지역 사령관이 자국 국가 지도부보다 외국 동맹국의 동향과 더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인식은 미국 국가 안보에서의 책임성과 통합적 의사결정이라는 근본적 규범을 훼손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부사령부는 단순한 전투사령부가 아니라 더 광범위한 병리(病理)의 증상이다. 즉, 미국 외교 정책에서의 전략적 기율 침식과 국가 안보의 과도한 군사화다. 군민관계는 장성들이 명령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중부사령부 같은 제도들이 너무 깊이 내면화되어 민간 지도자들이 무엇이 가능하고 필요하며 신중한지에 대한 인식 자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왜곡된다. 앞으로의 과제는 중부사령부의 작전적 발자국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방식으로 민간의 전략적 통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즉, 정책 역량을 재건하고, 기관 간 프로세스의 균형을 되찾으며, 습관적 개입이 아니라 장기적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국방 태세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 없이는 중부사령부의 중력이 계속해서 미국의 전략을 왜곡하고, 역대 행정부가 약속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인도·태평양 중심축 전환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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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사령부의 제도적 중력이 군사 지휘 구조 내부의 실질적인 기능 장애를 반영한다 해도, 책임을 군(軍)이나 지역 사령관에게만 돌리는 것은 오류다. 양당을 막론한 여러 행정부의 민간 정책입안자들은 전략적 표류, 정치적 위험 회피, 관료적 근시안의 복합적 작용을 통해 중부사령부의 우위를 반복적으로 허용하고 강화해왔다. 중동에서의 미국 개입의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군사 배치에 대한 기율 있는 통제를 행사하는 대신, 민간 지도자들은 일관된 지역 전략의 대체물로 중부사령부의 작전 템포를 기본값으로 삼아왔다. 이런 점에서 군민 불균형은 단순히 제복 입은 자들의 월권 문제가 아니라, 민간 주도력의 실패이기도 하다.
대통령들, NSC 참모들, 그리고 주요 의회 지도자들 모두 정치적 해결이 없거나 너무 어렵다고 판단된 지역들에서 군의 중심성을 유지하는 데 역할을 해왔다. 끝 없는 무력사용승인의 빈번한 활용, 장기 배치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거나 종료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국무부 같은 민간 기관을 지속적으로 주변화하는 것은 중부사령부가 최소 저항의 경로가 되는 조건을 만들어왔다. 전략적 재균형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민간 관리들조차—인도·태평양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반복된 요구가 그 증거다—중부사령부의 발자국을 줄이는 데 필요한 관료적 기율을 부과하는 데 자주 실패한다.¹⁹ 이탈의 정치적 비용, 즉 파트너를 저버리는 것으로 보이는 인식은, 특히 단기적 여론이 장기 계획을 지배하는 국내 정치 환경에서, 고착화의 장기적 비용보다 과중하게 여겨진다.
나아가 정치적 피임명자, 싱크탱크, 방위산업체 사이의 회전문 인사는 중부사령부의 제도적 관성을 강화해왔다. 펜타곤, 의회, 더 넓은 국가 안보 기관을 막론하고 9·11 이후 시대의 민간 설계자들 다수는 중부사령부 중심의 분쟁, 파트너십, 프로그램 위에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다. 그 결과 전략적 현상 유지는 종종 명시적 결정이 아닌, 커리어와 인간관계, 그리고 깊이 각인된 정책 전제에 뿌리를 둔 관료적 타성을 통해 강화된다. 민간 지도자들은 변화를 강제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너무 자주 중부사령부의 세계관을 내면화하거나, 그것을 무시할 정치적 자본이 부족하다.
이런 의미에서 중부사령부는 관동군처럼 일탈한 사령부가 아니다. 오히려 정책과 목적을 재정렬하는 데 실패한 군민관계 체계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군은 작전을 수행하지만, 목적을 정의하고 수단을 승인하는 것은 선출된 자와 임명된 자—즉 민간인들이다. 중부사령부가 전략적 소용돌이가 되었다면, 그것은 민간 정책입안자들이 그렇게 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권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부사령부의 과잉팽창은 단순히 군사력이 통제를 벗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전략적 상상력이 고갈된 이야기다. 관동군과의 비교는 인물이나 체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역 사령부들이 국가 전략의 중력 중심이 되도록 허용하는 위험에 관한 것이다. 일본은 군사적 변방이 제국의 중심을 좌우하도록 허용한 대가를 치렀다. 미국이 같은 규모의 청산에 직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재정렬이 지체될수록 인도·태평양 중심축 전환은 더욱 공허해지고, 전략적 취약성은 더욱 깊이 고착된다.
1
See James It's INDOPACOVER
2
There is a wealth of commentary and scholarship on this topic, but for some examples, see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Pivot to the Pacific? The Obama Administration’s “Rebalancing” Toward Asia (Washington, DC: Library of Congress, 2012), Zack Cooper and Adam P. Liff. “America Still Needs to Rebalance to Asia: After Ten Years of Talk, Washington Must Act.” Foreign Affairs, August 11, 2021, and Robert G. Sutter, Michael E. Brown, and Timothy J. A. Adamson, with Mike M. Mochizuki and Deepa Ollapally, Balancing Acts: The U.S. Rebalance and Asia-Pacific Stability (Washington, DC: 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Elliott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2013).
3
Natasha Bertrand, “Cost of US military offensive against Houthis nears $1 billion with limited impact,” CNN, April 4, 2025.
4
Natasha Bertrand, Katie Bo Lillis and Zachary Cohen, “Exclusive: Early US intel assessment suggests strikes on Iran did not destroy nuclear sites, sources say,” CNN, June 25, 2025.
5
If you want to learn more about the act and its effects, seee Jeremy Feiler, “PENTAGON LEADERS MULL SWEEPING CHANGES TO GOLDWATER-NICHOLS ACT.” Inside the Pentagon 20, no. 24 (2004): 1–18 and James R. Locher, “HAS IT WORKED?: The Goldwater-Nichols Reorganization Act.” Naval War College Review 54, no. 4 (2001): 95–115.
6
David Crist, The Twilight War: The Secret History of America’s Thirty-Year Conflict with Iran (New York: Penguin Press, 2012), 41
7
See Rick Atkinson, Crusade: The Untold Story of the Persian Gulf War (Boston: Houghton Mifflin, 1993) and Michael R. Gordon and Bernard E. Trainor, The Generals’ War: The Inside Story of the Conflict in the Gulf (Boston: Little, Brown, 1995).
8
Robert H. Ferrell, “The Mukden Incident: September 18-19, 1931.” The Journal of Modern History 27, no. 1 (1955): 66–72.
9
John Toland, The Rising Su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Japanese Empire, 1936–1945 (New York: Random House, 1970).
10
James B. Crowley, “Japanese Army Factionalism in the Early 1930’s.”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21, no. 3 (1962): 309–26.
11
Andrew Bacevich, America’s War for the Greater Middle East: A Military History (New York: Random House, 2016)
12
Tony Stark “Give INDOPACOM its Money”
13
Tom Porter, “Iran has been hurt but is still a 'considerable' threat to US forces in the Middle East, says US admiral,” Business Insider, June 25, 2025.
14
Ibid,.
15
For the history of U.S.-Iranian relations, see Crist and John Ghazvinian, America and Iran: A History, 1720 to the Present (New York: Alfred A. Knopf, 2021).
16
Akbar Shahid Ahmed, “The Pro-Israel U.S. General Quietly Influencing Trump On Iran,” The Huffington Post, June 17, 2025 and Jack Detsch and Paul McLearly, “Hegseth defers to general on Pentagon’s plans for Iran,” Politico, June 18, 2025.
17
Ahmed, “The Pro-Israel U.S. General Quietly Influencing Trump On Iran.”
18
Detsch and McLearly, “Hegseth defers to general on Pentagon’s plans for Iran.”
19
See “Give INDOPACOM its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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