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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근세 전환기 군사사 연구의 트렌드는 마이클 로버츠의 군사혁명론 걷어낸 것조차도 꽤 된 일이고, 개별 연구자들이 각자의 군사혁명론을 주장하고 있음. 그리고 그 핵심은 군사사를 거대한 문화사, 사회경제사, 정치사의 흐름 안에서 바라보는 것임.

이러고 있는 현대 사학계의 연구는 테르시오가 진형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음. 테르시오는 원 의미대로 그저 '연대'라는 병력 편제의 단위라는 것임.

소위 '테르시오 진형' 하면 떠오르는 진형 자체도 시기로 보면 16세기 중후반에 사용된 것이지 17세기로 들어서면 이른바 신교군의 '선형진'이랑 별로 차이가 없어진다고 보고 있음.

오히려 사학자들은 테르시오가 연대 휘하에 다수의 중대들이 편제되는 구조이고, 그 중대들이 상황에 맞춰 숙련된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될 수 있으며 그래서 전술적 유연성을 더 크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고, 이게 '무적 테르시오'의 기반이 되었다고 보고 있음.

근데 사실 다른데서 그걸 안한게 또 않이거든. 그 전에 이미 15세기 말에는 보병과 총병의 혼합 편제가 태동됐고, 1520-30년대에 등장한 테르시오는 그 트렌드를 충실히 따랐음. 거기에 장교단과 부사관단들의 도움을 받아서 진형을 가변형으로 구성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타국군이 다 할 수 있는 것이었음. 다만 숙련된 장교단과 부사관단이 스페인군만큼 빵빵하지 않았던 게 문제지.
오히려 테르시오를 그저 퍼졌다 뭉쳤다만 할 수 있는 경직된 진형으로 보는 건 예전 시각임.

사실 스페인군 테르시오가 16C에 갇혀 있었다면 노르틀링겐에서 스웨덴군이 격파당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고, 뤼첸에서 스웨덴군을 크게 밀어붙이지도 못 했을 거고, 그 외 많은 30년 전쟁의 전투들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 했을 거임. 스페인군이 로크루아 전투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그것도 보병이 몬한게 아니라 기병과 포병이 털려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 못한 거고, 무려 8시간동안 야전축성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프랑스군 기보포 합동공격을 버텨낸 걸 생각하면 모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