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찰스 B. 맥베이 3세 해군 대령을 일반 군사재판에 회부하라는 법원의 권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맥베이 대령은 폭발 직후 조난 신호를 즉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지그재그 항로를 명령하지 않은 것은 판단 착오였지만,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 군사재판 대신 견책 서한을 맥베이 대령에게 발송할 것입니다.
- 1945년 9월 6일 체스터 니미츠가 작성해 조사위원회에 보낸 서한 내용 중
질문: 당신이 조준했을 당시 목표물은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었습니까?
A. (통역관 브롬리의 설명) 목표물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불분명한 흐릿한 형체였으며, 그것이 지그재그로 움직였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질문: 나중에 지그재그로 움직였나요?
A. (통역관 브롬리의 설명) 항로를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목격 시점과 공격 시점 사이에 항로가 약간 변경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질문: 만약 목표물이 이번 공격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였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질문이 반복되었다.]
A. (통역관 브롬리의 설명) 어뢰 발사 방식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기동 방식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https://www.history.navy.mil/research/histories/ship-histories/loss-of-uss-indianapolis-ca-35/investigation-and-court-martial/court-martial.html
- 1945년 12월 3일 워싱턴에서 열린 맥베이 함장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하시모토 모치츠라의 증언
전쟁 중 적의 공격으로 침몰한 수백 척의 함선 지휘관 중 누구도 군사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는데, 이는 해군이 경험 많은 함장을 잃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화가 찾아오자 맥베이는 갑자기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해군은 그에게 인디애나폴리스 호 침몰에 대한 책임을 묻고 군사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맥베이는 전국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은 군사재판이라는 굴욕을 겪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 그의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복무했던 워싱턴 해군 기지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1945년 12월 3일부터 재판은 그가 이미 징계를 받았던 두 가지 혐의에 대한 증거 심리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I-58 함장이었던 하시모토 모치츠라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대중이 맥베이의 유죄를 믿든 무죄를 믿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일본 장교가 미국 함장을 상대로 증언하도록 요구받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더욱이 하시모토는 자신이 맥베이보다 법정에서 더 존중받고 있다고 언급하며 치욕을 가중시켰다. 대중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하시모토는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지그재그 항해를 했든 안 했든 결국 침몰했을 것이라는 증언을 함으로써 사실상 맥베이 함장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끄는 듯 했다.
하지만 하시모토와 인디애나폴리스 승조원들의 호의적인 증언에도 불구하고 맥베이 함장은 과실에 대한 유죄 판결을 면하지 못했다.
https://www.usni.org/magazines/naval-history-magazine/2016/june/tragic-indys-enduring-fascination
맥베이의 무죄 판결은 2001년이 아니라 1945년에 충분히 내릴 수 있었음...
니미츠의 견책 권고도 하시모토 모치츠라의 재판 증언도 모두 씹고 맥베이 함장을 죄인으로 만들었을 뿐임
걍 군대 특유의 책임전가는 좇간 특징인가봐...
미 해군의 맥베이 함장 명예회복에 대한 좆간질은 1991년 재검토 요청도 거부했다는 것도 극혐임...
미해군의 좇간질이 느껴진 사건이라 참거시기한 사건
저런건 배우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