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이크병이 뭐임?
14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에 이르는 약 250년간, 장창병(pikeman)은 유럽 보병 전술의 중추였습니다. 4-6미터에 달하는 장창(pike)을 밀집 대형(close order formation)으로 운용하는 파이크 방진(pike square)은 기병 돌격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보병 방어 수단으로, 스위스 연방의 부상과 30년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장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파이크 대형은 결코 장창이라는 단일 무기만으로 구성된 동질적 병과가 아니었습니다. 파이크 대형의 내부에는 할버드(halberd), 양손검(two-handed sword, Zweihänder/montante), 검과 버클러(sword and buckler), 그리고 점차 비중이 증가하는 아르퀘부스(arquebus) 및 머스킷(musket)을 휴대한 다양한 보조 병과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들의 협동이 파이크 대형의 전투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2. 스위스의 보병 혁신
스위스 보병의 부상은 중세 후기 군사사의 전환점입니다.
1315년 모르가르텐(Morgarten), 1339년 라우펜(Laupen), 1386년 젬파흐(Sempach)로 이어지는 연승은 산악 보병이 중장기병을 격파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으며, 15세기 후반 부르고뉴 전쟁(1474-1477)에서의 결정적 승리는 스위스 방진의 명성을 유럽 전역에 확산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들을 단순히 '장창의 승리'로 환원하는 것은 실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초기 스위스 보병의 무장은 실제로 상당히 이질적이었습니다.
14세기의 스위스 전사들은 할버드, 모닝스타(Morgenstern), 전투용 도끼, 크로스보우 등 다양한 무기를 혼용하였으며, 장창이 주력 무기로 확립된 것은 15세기 중반 이후의 일입니다. 1422년 아르베도(Arbedo) 전투에서 스위스군이 밀라노 중장기병에 고전한 경험이 장창 채택을 가속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위스 방진에서 할버드는 장창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무기였습니다. 할버드는 약 1.5-2미터 길이의 자루에 도끼날, 찌르기용 첨두, 그리고 뒤쪽의 갈고리(hook)가 결합된 다용도 무기로, 장창과는 상이한 전술적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장창이 밀집 대형의 정면 방어와 충격력에 특화되어 있었다면, 할버드는 근접 전투(Nahkampf, close combat) 단계에서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스위스 방진이 적 대형과 직접 충돌하여 장창의 사정거리 이내로 진입하면, 전열의 장창병 뒤편에 배치된 할버드병이 전면으로 나와 적의 갑주를 타격하고, 기마 병사를 갈고리로 끌어내리며, 밀집 상태에서 장창이 사용 불가능해진 공간에서의 전투를 수행했습니다.
1476년 그랑송(Grandson) 전투와 무르텐(Murten) 전투에서 스위스 방진이 부르고뉴군을 격파한 과정에서, 초기 장창 충돌 이후의 근접전 단계에서 할버드병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다수의 연대기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스 델브뤼크(Hans Delbrück)는 스위스 방진의 전투력이 장창의 수비적 기능과 할버드의 공격적 기능의 결합에 기인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전술적 배치의 측면에서, 할버드병은 통상 파이크 방진의 전열 후방 3-5열과 방진 중앙부에 집중 배치되었습니다. 방진 중앙에 할버드병이 위치한 것은 지휘관과 군기(banner)를 호위하는 기능을 겸했습니다.
스위스 각 칸톤(canton)의 군기는 부대의 결속과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절대적 중요성을 가졌으며, 군기의 상실은 곧 부대의 와해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군기 주변에 최정예 전사를 할버드로 무장시켜 배치하는 것은 전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핵심적인 조치였습니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스위스 방진과 란츠크네히트 대형 모두에서 양손검을 사용하는 특수 병종이 등장했습니다.
이 양손검은 전체 길이가 150-18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형 검으로, 통상적인 한손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양손검병은 대형의 최전열 앞에 산개하여, 적 파이크의 창대를 절단하거나 밀어젖히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적의 파이크 숲에 간극을 만들고, 아군 파이크 대형의 돌입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파이크 대형 내부에는 할버드병과 양손검병 외에도 다양한 보조 무기를 사용하는 병종이 혼재했습니다.
검과 버클러를 사용하는 경장 보병은 밀집 대형이 붕괴된 후의 난전(mêlée)에서 기동성을 활용한 전투를 수행했습니다.
또한 스위스 군에서 크로스보우(crossbow)병은 14세기까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대형의 전면이나 측면에서 사전 사격을 실시한 후 파이크 대형 안으로 철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습니다.
3. 란츠크네히트 군제와 파이크 대형의 내부 구조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재위 1493-1519)의 후원 아래 조직된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는 스위스 보병의 전술 체계를 모방하면서도 독자적 병과 구조를 발전시켰습니다.
란츠크네히트의 기본 전술 단위인 패늘라인(Fähnlein, 약 400-500명)은 통상적으로 파이크병, 할버드병, 양손검병, 그리고 점차 비중이 증가하는 사격병(Schütze)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파이크 대형의 내부 배치는 고도로 체계화되어 있었습니다. 대형의 전면 1-3열은 선봉대(böser Haufen, forlorn hope)로 불리는 최정예 전사들이 담당하였으며, 이들은 양손검, 할버드, 또는 전투용 도끼로 무장했습니다.
이들 뒤로 파이크병의 밀집 열이 배치되었고, 대형의 중앙에는 군기와 지휘관을 호위하는 할버드 호위병이 위치했습니다. 대형의 후면에도 경험 많은 전사들이 배치되어 후위를 담당했습니다.
란츠크네히트의 병과 구조에서 가장 주목할 요소는 도펠죌트너(Doppelsöldner, '이중 급료를 받는 자')제도입니다.
도펠죌트너는 통상 파이크병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급료를 받는 대가로, 대형 내에서 가장 위험한 위치인 최전열, 측면, 또는 돌격 선봉에 배치되는 정예 전사를 지칭했습니다. 이들은 양손검(Zweihänder), 할버드, 또는 후기에는 아르케부스로 무장했습니다.
란츠크네히트 대형에서 아르케부스병과 이후 머스킷병의 비중은 16세기를 통해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초기에는 사격병이 파이크 대형의 외곽에 산개하여 사전 교란 사격을 실시한 후 대형 안으로 철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으나, 점차 파이크 대형과 사격병 집단의 유기적 협동이 체계화되었습니다.
4. 스페인의 뭐든지 튕겨내는 전술
스페인 테르시오(tercio)는 16세기 유럽에서 파이크와 사격병의 유기적 결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도화한 군사 조직이었습니다.
1534년 카를 5세(Carlos V)의 군제 개혁으로 공식화된 테르시오는 통상 약 3,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으며, 파이크병과 아르케부스병, 그리고 이후 머스킷병이 단일 전술 단위 내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테르시오의 전투 대형에서 파이크병은 방진의 중심을 구성하여 기병 돌격에 대한 방어벽 역할을 수행하였고, 사격병은 방진의 모서리나 측면에 돌출된 소대형으로 배치되어 화력을 투사했습니다.
이 구조에서 파이크병은 사격병에게 기병의 근접 돌격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였고, 사격병은 파이크 대형에 접근하는 적에게 사격으로 소모를 강요했습니다. 양 병과는 상호 의존적이며 어느 쪽도 단독으로는 완전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5. 네덜란드의 테르시오 개량
네덜란드 반란(Eighty Years' War, 1568-1648) 중 나사우의 마우리츠(Maurits van Nassau, 1567-1625)가 추진한 군제 개혁은, 파이크 대형 내부의 혼합 병과 운용을 새로운 차원으로 체계화했습니다.
마우리츠 개혁의 핵심은 기본 전술 단위의 축소와 사격병 비율의 증대였습니다.
테르시오의 3,000명 규모를 약 550명의 중대(compagnie) 단위로 분할하고, 각 중대에 파이크병과 사격병을 약 2:3의 비율로 배치했습니다. 대형의 깊이는 테르시오의 50열에서 10열로 대폭 축소되었으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격병이 동시에 화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우리츠 개혁에서 도입된 카운터마치(countermarch, 교대 사격) 전술은 사격병과 파이크병의 협동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사격 후 전열의 사격병이 후방으로 이동하여 재장전하고, 후열의 사격병이 전면으로 나와 사격하는 순환 체계는 지속적 화력 투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파이크병은 사격병의 후방에 밀집 대형으로 대기하다가, 적이 근접 거리로 접근하면 전면에 나서서 충격 전투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파이크병과 사격병 사이의 정밀한 협동 훈련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마우리츠는 당대 유럽 군대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반복 훈련을 도입하였으며, 야코프 데 헤인 2세(Jacob de Gheyn II)의 1607년 저작 'Wapenhandelinghe'은 이 훈련 체계를 42점의 동판화로 시각화했습니다.
6. 스웨덴의 군제 개혁
스웨덴 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us Adolphus, 재위 1611-1632)의 군제 개혁은 파이크 대형 내부의 혼합 병과 개념을 전장 수준의 제병협동으로 확장시킨 결정적 전환점입니다.
구스타브는 마우리츠의 개혁을 계승하면서도, 보병·기병·포병의 3병과를 전장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전투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스웨덴 보병의 기본 전술 단위인 대대(squadron)는 약 400-500명으로, 파이크병과 머스킷병이 약 1:2의 비율로 구성되었습니다. 대형의 깊이는 6열로 더욱 축소되어, 화력의 동시 투사 능력이 극대화되었습니다.
파이크병은 대형의 중앙에 밀집 배치되고, 머스킷병은 양 측면에 배치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테르시오의 정방형 배치를 선형으로 전환한 것으로, 정면 화력의 밀도를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습니다.
구스타브의 가장 혁신적인 전술적 기여는 살보(salvo, 일제 사격)와 파이크 돌격의 결합이었습니다.
종래의 카운터마치가 지속적이지만 산발적인 화력을 제공한 반면, 구스타브는 전 열의 머스킷병이 동시에 일제 사격을 가한 후, 파이크병이 즉각 전면으로 돌출하여 충격 돌격을 감행하는 전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전술에서 살보 사격은 적 대형을 동요시키고 물리적·심리적 충격을 가하는 '준비 단계'이며, 파이크 돌격이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 '결정 단계'였습니다.
1631년 브라이텐펠트(Breitenfeld)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이 전술을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가톨릭 동맹군의 테르시오를 격파했습니다.
구스타브의 혁신은 보병 대형 내부의 병과 결합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량 포를 보병 연대에 직접 배속시켜, 보병·기병·포병의 3병과가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협동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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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크맞짱이 잘나갈땐 존나 잘나갔는데 인지도가 뭔가 아쉽더라
토탈워해서 해보고 싶지만 항상 실패하는 테르시오
테르시오 할거면 미디블2가 제일 구현이 쉽더라. 아틸라는 엔진문제인지 장창방진이 적의 접근을 좀 저지하나 싶다가 난전이 되어버림
@코드는시른데스우 내가하면 항상 돌파당함
@ㅇㅇ(59.6) 님 혹시 D키 눌러서 방진해체한거 아님 - dc App
@ㅇㅇ 지그재그 배치해놓으니깐 틈으로 들어오던데
@ㅇㅇ(59.6) 미친놈아 당연하잖아 - dc App
아틸라 하면 훈다리들이랑 백훈족 건담들 와서 내가 왜 니 정면에 꼴아박아주거라 생각하니 하면서 짤짤이만 맞다가 게임 터짐 ㅋㅋㅋㅋㅋㅋ
@ㅇㅇ 꼬우면 동보팔 서보팔 뽑아야지
@미카젓보똥 보팔특) 악마궁병 보빨만하다가 다뒤짐
개추!
개추 잘봤습니다 땡 파이크병을 코삭이나 마앤블 같은 여타 전쟁 게임에서 볼 때 마다 이 병신들을왜 역사에서는 이렇게 주구장창 썼을까 했는데 파이크병 단독이 아니라 도끼창, 쇠뇌 섞은 편제였다는거네요 사실 전쟁겜에서도 파이크병 있으면 플레이어도 뇌가 없는게 아니라서 항상 다른 병종을 섞어쓰던게 진짜 고증이었단..
파이크병하면 스위스 용병들 생각남
항상 궁금한게 고대 시대에 팔랑크스 같은 밀집 장창병 전술이 있었는데 이후로 뭐하다가 14세기쯤에 다시 파이크병이 주목 받았는지가 의문
고대 팔랑크스 병과는 근본적으로 수비적인 병과라 거점방어나 적군의 진격을 차단하는 것에 최적이나 공격이나 기동에는 비효율적이고 전술적인 유연성이 부족해 결국 전술적 융통성이 뛰어난 로마 레기온같은 중장보병에게 밀리게 됨..하지만 고대시대가 지나 중세로 들어가 전투의 핵심이 중장기병이 되면서 이 중기병을 막아내는것이 필요해지면서 대기병 저지효과가 우수한 장창병이 다시 나오게 됨.
@muralist 역시 전술은 돌고 도는거구나
@muralist 고대 팔랑크스가 근본적으로 수비적인 병과라는 건 완전히 오류임. 일단 전통적인 그리스식 팔랑크스는 애초에 장창방진이 아니며 딱히 수비적인 대형도 아니었고 딜탱이 목적이었음. 우리가 아는 최초의 장창방진은 마케도니아식 장창방진을 말함. 이쪽은 정반대로 근본적으로 공격적인 병과인 게 문제였음. 당시 사료에서도 꾸준히 언급되는 문제지만 팔랑크스 대형이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 가시벽이 전진하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음. 파이크는 너무 길고, 단지 팔을 내미는 것만으로는 힘을 싣기가 어려워서 몸을 앞으로 전진시키며 공격해야 했음. 때문에 장창방진끼리 맞붙으면 전진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려 충돌하게됨. 그래서 16세기까지도 장창방진끼리 서로 초근접상태로 얽히는 현상 발생했음.
@muralist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무너뜨리게된 결정적인 계기가된 피드나 전투에서도 마케도니아군 팔랑크스는 로마 레기온을 상대로 수비적으로 정지해있지 않았음. 레기온과 충돌 이후 계속 밀어붙이면서 전진하다가 뒤로 밀려나는 레기온을 따라 바위지대로 진입해서 대형이 흐트러진 거. 알렉산더의 원정만 봐도 팔랑크스가 수비적으로 싸운 사례가 드뭄. 중세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전쟁에서도 잉글랜드 기병들이 스코틀랜드 보병들을 압박할 때는 쉴트론 대형을 짜고 수비적으로 버텼지만, 양측의 주력이 보병전을 벌일 때는 항상 미늘창과 장창으로 무장한 스코틀랜드측 부대가 전진하면서 밀어붙이는 전술을 취했음. 그러다가 늪까지 밀어붙여서 역으로 패한 사례도 있고. 장창방진은 게임에서와 달리 상당히 공격적인 전술임
라이슬로이퍼!!
저런 긴 장대는 보통 어떤 수종으로 생산하는거임? 조선에서도 저런 무기를 구현할 수 있었을지 궁금함. - dc App
최고는 물푸레 나무. 대체품으로 소나무랑 전나무가 있는데, 가볍고 내구성이 약해서 쯔바이핸드에게 개박살났음 - dc App
@윌리엄마셜 역시 몽둥이옹 나무구만. 땡큐 - dc App
참고로 마케도니아식 사리사의 창대는 일체형이 아니라 조립식이었음. 행군할 때는 분리해서 이동했음.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보병 전술에 영향을 받아 장창과 조총을 혼합하는 파이크 앤 샷 전술이 주류로 자리잡음. 이건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는데 기술에 적응하면서 동북아시아도 유럽과 전술이 비슷해지는 일종의 수렴진화였음. 그러나 당시 사료에 의하면 의외로 장창병이 화약을 먹는 조총병보다 유지비가 훨씬 비쌌다고 함. 근접병과이기 때문에 갑옷이 필요했고, 훈련도 더 많이 시켜야 했으며, 특히 장창의 수명이 조총보다 훨씬 짧아서 자주 교체해주어야 했기 때문임. 재정난과 이괄의 난이 가져온 후유증으로 장창병과 기병이 거의 사라지다싶이 줄어듬. 이는 병자호란에서 조선군 대다수가 조총병으로만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남
결국 근대로 가면서 모든 개선이 화력으로 귀결된다교 이해하면 이상한가?
총검의 등장으로 사실상 자리를 내어줍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