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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마치고 안동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신영식은 사창가의 창녀 박모와 눈이 맞아, 병역 해결 겸 생계를 위해 하사관 모집에 응모해 1966년 6월 6사단 19연대 소속 분대장 하사가 되었다

신영식은 박모에게 진급하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하고 4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나 연락이 끊기자 변심으로 오해하고, 틈만 나면 휴가를 신청해 부산 대구 등으로 돌아다녔으나 만나지 못하자 사회가 애인을 변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사회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1968년 5월 14일 물고기를 잡겠다고 미제 M26수류탄 3발을 불출받은 신영식은 이를 숨겨둔 채로 다시 휴가를 신청해 16일 낮 12시 30분쯤 서울을 거쳐 안동에 열차로 도착했고, 구두닦이를 하던 친구들과 술을 퍼마신 후 만취상태에서 다방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거 2개만 터뜨리면 50여명은 죽일수있다"고 주정을 부렸다

그러나 주민들의 신고에도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신영식은 인근 문화 극장에서 심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을 향해 두발을 까 던져 6명이 숨지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건 후 신영식은 애인이 지냈다는 여인숙에 쳐들어가 마저 자폭하겠다며 인질극을 벌이다 술에 취해 잠이 들며 출동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고 68년 12월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69년 7월 31일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사단장은 징계 해임, 국방장관도 도의상 책임을 지고 옷벗음


이 이미지들은 당시 실제 작성되었던 수사기록이다

실제 인화한 사진을 호치키스로 박아놓은 모습이 보인다

맨 상단의 사진이 바로 피의자의 머그샷인데, 실실 쪼개서 몇대 쳐맞은 흔적이 보인다

실제로 그는 "냉정한 사회에 분풀이를 하고자 저지른 일이며 후회 하지 않는다. 할 일을 다 끝내 후련하다" 라고 대답해 기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지만 실제 애인은 자기집에서 왜 연락이 안오는지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