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을 못읽거나 급한 사람은 4번으로.
1.마오해병과 스탈린
마오쥬시와 소련의 관계는 무려 국공내전 이전부터 파탄 직전이었다.
소련군이 관동군을 완전히 궤멸시키고 일본이 항복하자
스탈린은 마오쩌둥에게 직접 중화민국 정부의 장제스에게 협력할 것을 지시하고, 중화민국을 공식적인 중원의 정부로 인정하였다.
소련군은 중공의 본거지인 동북3성과 만주로 진격하는 국민당군을 막지않았다. 오히려 만주의 중공업 설비를 뜯어가고 만주괴뢰국의 화폐를 압수했으며 중국의 사상적 영토로 여겨진 내몽골 지역을 점령하는 등 마오쩌둥의 심기를 건드는 행위들을 상남자 스탈린은 거리낌없이 자행했다.
국공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마오쩌둥에게도 스탈린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스탈린은 그를 공산주의의 사이비 정도로 취급하였고 마오쩌둥의 소련방문을 거절했다.
국공 내전에서 승리해 중국 대륙의 지배자가 된 마오가 1949년 12월 21일 스탈린의 70회 생일에 맞춰 방문하겠다고 했을때는 소련에게 더 이상 막을 명분이 없어 초청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스탈린에게 마오는 귀찮은 존재였다. 경제협력, 불평등조약의 시정 등 와서 할 얘기가 소련에게 이득이 될 얘기는 아니었는데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만주 지역을 접수한 소련군은 다롄항과 남만주철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군대를 이동하는데 이 철도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는데, 이를 다시 중국에 넘겨줄 경우 소련은 유사시 아시아로의 병력 동원에 큰 장애물이 생기는 셈이었다.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1934년 소련은 신장성 지역에 2개 여단을 투입해 이 지역을 점령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던 몽골에 대해서도, 소련은 1924년 군대를 보내 독립시켜 위성국으로 삼기까지 했던 것이다. 신장성과 몽골, 그리고 만주 지역 등 소련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지역에는 약 3억 명의 중국인이 살고 있었다.
대만을 통일하기 위한 해군의 건설과 관련해서도 스탈린은 ‘우리가 해군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대만을 공격한다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고 거절했다.
스탈린은 마오에게 ‘중국에 외국기업이 있느냐?’ ‘그 외국기업이 거래하는 은행도 있느냐?’ ‘일본인들이 만든 기업은 현재 누가 관리하고 있나?’ 등 시종일관 중국을 무시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마오는 이때 스탈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개인적인 의문을 품은 듯 해보였다.
며칠 후 스탈린의 생일파티에 참석한 후 단단히 삐져있던 마오는 소련 측이 제공한 숙소에 틀어박혀 나오지않았다.
12월 26일 그의 생일에 맞춰 소련 측 인사가 방문해도 만나 주지 않고 기어코 돌려보냈다. 소련은 동구권에게 스탈린이 마오쩌둥을 휘어잡았다는 메세지를 주고싶었으나 마오의 갑작스런 히키코모리 기습시위에 적잖이 당황했고 스탈린은 그대로 극동의 한 작은 신생국가를 이끄는 젊은 지도자의 전쟁준비 스토리를 들으려 떠났다.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스탈린 서기장은 얼마살지 못하고 시대는 흐루쇼프 서기장으로 흐른다.
2. 마오해병과 흐루쇼프
1956년 마오는 차마 스탈린에게 하지못했던 생리질을 흐루쇼프에게 하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그 시작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난하며 공산주의 내에서 개인숭배와 철의 독재 금지를 주창하면서였다.
마오쩌둥은 굉장한 나르시스트였으며 중국 인민 전체에게 개인숭배를 강요하였다.
또한 마오쩌둥은 6.25전쟁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중공이 미국을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당장 대만에 쳐들어가길 원했으며 7함대를 전진시켜 방어중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중소가 연합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진먼,푸쭈섬에 포격을 하며 대만 침공을 시작하려한 마오를 흐루쇼프가 극구 말리며 이 계획은 틀어졌다. 마오쩌둥은 매우 분노했고 소련을 미국에게
겁이나 먹는 좆밥새끼 쯤으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3. 해병 마오와 핵무기
마오쩌둥은 핵전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실체없는 군들갑이며 핵으로 중국본토가 샤워를 해도 중국인은 살아남아 나라를 재건할 것이며 미국만 멸망할것이라며 떠들었고
이에 기겁한 흐루쇼프는 중국과 협력 중이던 소련의 핵과학자들을 철수시켰다.
마오해병님은 더욱 분노하여 중국은 독자핵무장 노선의 길을 걷게된다.
마오는 즉시 핵무장을 완성시켜 미국에 핵을 발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을 보자면 역사는 전쟁에 의해 발전되어 왔으며 1차 대전 중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2차 대전후에 중국에 공산정권이 탄생했으니 3차 대전이 일어나면 자본주의 세계를 완전히 매장시킬수 있다는 것이었다.
1959년 이러다 세계가 정말 멸망하겠다고 생각한 흐루쇼프는 펑더화이를 시켜 핵무장과 미국과의 핵전쟁을 반대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펑더화이 또한 마오해병님이 히틀러총통이 평생 이루지못한 전 2차세계대전 사상자를 뛰어넘는 기아를 유발한 기합짜세 대찐빠운동을 실!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컸고 전당대회에서 종합적으로 그를 비난한다.
팽덕회 선생은 곧바로 경질되었다. 그는 반장전, 항일전 국공내전 6.25전쟁의 주인공으로써 평생 마오해병을 보좌한 그야말로 기열 중의 기열 참해병성골아쎄이였으나 황룡 홍위병들에게 구타당해 병들어 죽는 최후를 맞이한다.
1962년 흐루쇼프는 쿠바위기에서 존 F 케네디와 극적인 타협을 맺었고 마오해병은 이 사실에 대해 길길이 날뛰었다. 공산세계의 주축인 소련이 미국에게 굽히고 들어갔다며 마오는 더 이상 소련을 공산세계의 맹주로 보지않았다.
4. 기열! 마오해병과 흐루쇼프의 기합넘치는 해병수영장 파티
사실 이 글의 핵심이 될 기합이 흘러넘치는 얘기는 지금부터다.
1958년 흐루쇼프가 베이징을 방문했다.
마오는 흐루쇼프 아쎄이를 베이징 서쪽 향산(香山)의 수영장이 딸린 해병! 호텔에 묵게 했다. 그곳은 냉방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흐루쇼프는 마오를 소련에서 가장 성대하게 맞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빈대접을 했었으나 그가 베이징에 있을땐 너무 더워서 밤에 테라스에 나가 있다가 모기에 엄청나게 물리는 곳에서 잠을 설쳤다.
다음날 흐루쇼프는 매우 화가나고 피곤한 표정으로 “내가 중국에 오니 중국 모기들조차 당신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흐루쇼프는 자서전에 해병마오가 자신에게 엿을 먹인것이 분명하다고 서술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회담에서 마오는 흐루쇼프를 해병각개빤스! 만을 입은채로 만났다.
반나체 상태의 마근출 해병님은 흐루쇼프에게 참된 해병이라면 수영을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구태여 강조하지만 이 모든 것은 중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대국가의 "정상회담" 중에 일어난 일이다.
마오 해병은 해병답게 장강에서 수영을 평소 즐기던 물개라고 읽고 오도해병이라 쓰는 수영광이었으나 기열 흐루쇼프 아쎄이는 물공포증이 있었고 맥주병이었다.
흐루쇼프는 수영복으로 환복 후 물밖에 서있었으나 호랑이처럼 달려오신 마오해병님이 무려 소련의 국가지도자를 수영장으로 밀어 빠뜨리셨다.
흐루쇼프 겁쟁이 아쎄이는 기겁을 하며 물밖으로 도망쳤고 중국통역관이라 쓰고 오도봉고라 읽는 이들이 안전조끼를 입혀 그를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게했다.
국가지도자 정상회담이라곤 믿기지않는 해병간의 뜨거운 전우애를 흐루쇼프는 감당해야만 했다.
마오는 제자리에서 손을 저으며 울상을 짓고있는 기열찐빠 흐루쇼프의 팔을 잡고 돌고래 처럼 수영장 안에서 그를 질질 끌고다녔다.
중국과 소련 통역관들은 마오가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손발을 파닥거리고 있는 흐루쇼프의 단말마와 거친호흡과 심한 후난성 사투리를 쓰고있는 마오해병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수영장에 같이 뛰어들거나 물가를 뛰어다녀야 했다.
특히 심술궂은 마오해병은 불쌍한 흐루쇼프 아쎄이의 대답타이밍에 그를 거칠게 잡아당겼고 흐루쇼프의 모가지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물속에 처박혀 거품을 뿜어대었다.
소련 K.G.B 요원들이 흐루쇼프가 물을 너무 많이 먹고있다고 항의했으나 중공 요원들은 흐루쇼프 근처에 튜브 등을 던져줄 뿐이었고 마오는 회담이라 쓰고 장난이라 읽는 행위를 계속하였다.
흐루쇼프는 그 치욕을 겪은 뒤 곧장 소련으로 돌아갔다. 그의 자세한 기분과 심리는 묘사되지도 않으나 유쾌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존 F 케네디 등과 세계 안보를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고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마오의 복수는 끝나지않았다. 흐루쇼프는 이 흘러빠진 회담이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길 바랬으나 마오해병의 특별지시로 전세계에 긴급 공개되었으며 흐루쇼프의 중국을 떠나는 순간을 라디오 방송에 내보냈다.
이상 기합넘치는 마오오도해병님의 외교썰이었습니다.
상상 그 이상이넼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순수하게 미개하네
의외로 정상회담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저런식으로 정상끼리 기싸움하는 경우도 한가득이더라. 분위기 안좋으면 진짜 죽일듯이 싸우기도 한다는데 - dc App
수뇌부들도 일단 사람이기도 하고 정글같은 국제정세 특성상 예의를 강제할만한 처벌이 딱히 없으니 되려 ㅈ간질 하기 딱 좋은 세상. 물론 그 여파는 순전히 자국과 국민, 전세계인들이 나눠 져야함
으레있는 일이라기에 흐루쇼프 자서전을 보면 예...
개웃기네 아 ㅋㅋㅋㅋㅋㅋㅋ
악!! 기열 참새가 너무 무서워!! 해병님!!!!
흥미로운 내용인데 출처가 어디임?
마오쩌둥의 주치의였던 리즈수이(이지수)가 자신의 회고록(The Private Life of Chairman Mao: The Memoirs of Mao's Personal Physician, 한국 번역본 제목 『모택동의 사생활』에 기록된 내용이 주고 흐루쇼프의 자서전에서도 밝혀진 유명한 냉전시기 일화임
마오쩌둥과 핵폭탄썰은 57년 전당대회의 마오 실제 발언들
그밖의 장융의 마오 : 알려지지않은 이야기들과 애드거 스노우의 붉은 별에서 읽은 스탈린과의 일화를 적당히 섞어 요약한 것임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흐루쇼프 수영장 회담 썰은 거진다 리즈수이의 회고록 복붙버전들임
@2세계퍼거 핵 관련 발언은 당대회가 아니라 57년 모스크바 세계 공산당 및 노동자당 대표 회의 같네
@ㅇㅇ(183.98) 아 그렇노ㅋㅋ 쏘리 헷갈렷나봐
@ㅇㅇ(183.98) 그 유명한 핵전쟁으로 중국인 6억 명 중 3억 명이 죽어도 어떻단 말입니까? 인류 절반이 죽어도 절반은 살아남아 제국주의는 파멸하고 세계는 사회주의가 될 것입니다. 라는 충격과 공포의 발언
@ㅇㅇ(183.98) 사실 케네디 흐루쇼프 WWE보다 멸망의 시계가 12시에 가까워졌던건 마오해병 손에 핵무기가 생겼을때 일지도 몰랐겠음
@2세계퍼거 근데 양탄일성하고도 막상 핵군비를 철저하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 거 보면 말만 미치광이고 철저히 실리만 찾은 듯
미치광이 전략(본인 전용)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