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컷과 군축 속에서 다가온 원자력 시대는 미해병대의 존속 그 자체를 위협했다. 해병대는 45년에서 50년까지 전력 85%를 잃었는데, 1946년 47만 대군은 다음해 15만이 되었다가 1950년엔 7만 4279명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1947년 국방법 개정으로 (열심히 언플해서) 존폐여부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새로운 시대에 어필하려면 핵!!! 이 필요했다.
특히 주목된 건 로켓포병인데, 빠른 기동력으로 전개하는 슛 앤 스쿳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LCU나 LST에서 재빠르게 하역해 조립하고 발사위치에 전개해 상륙군 지원하는 핵펀치 한방 딱!
차량은 M139C 5톤 트럭 기반이었고, 53년에 M289 수송차량/발사대의 제식명을 받았다. 한편 로켓은 51년에 개발된 XM31 시제로켓, 일명 '어니스트 존'을 사용하게 되었다. 로켓에는 핵탄두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고폭탄두, 그리고 생화학탄두도 기획되었다.
1953년 2월 20일 미해병대 상륙군이 발표한 '전술핵 운용을 위한 과도기 교리'에서 해병대는 처음으로 핵 운용포부를 교리적으로 밀었고, 55년 개정안에서 운용교리를 구체화했다. 한편 55년엔 M289 발사차량 6대가 해병대에 배치되며 캠프 레준에서 제1중포병로켓포대(HARB)로 조직되었다. HARB는 2개 발사대씩으로 구성된 2개 소대로 구성되었으며 (2대는 예비) LCU, LST에 탑재도 표준안을 만들어가며 훈련했다.
LCU 탑재실험을 마친 HARB는 정식 전력화해 트웬티나인팜즈의 해병대 야전포병단에 배속된 후, 58년 2월 야포단 전술훈련에서 XM4 연막로켓으로 훈련을 거쳤다.
이후 60년에는 오키나와에 전개해 이미 거기 있는 육군 어니스트 존 포대들과 합류했다가, 65년 육군 어니스트 존들이 개선된 M50 로켓으로 업데이트할때 '근데 걍 니들은 상륙돌격 이전에 해군이 해안 닦아줄때 어련히 핵쓰지않냐?' 의견제기로 해산했다.
끗
어캐든 핵투발수단 확보해야 하던시절 ㅋㅋㅋㅋㅋ
아까 상륙지에서 방사능 스멜 맡고 싶다던 군붕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 글 보면 좋아하겠노
핵으로 교두보 확보하고 상륙 이거 좋은 문명
2대전때 해병대가 50만이었던 이유는 대략 태평양 섬에서는 해병대가 육군대신 싸운다 이런 것 때문이었나
육군도 중요전력이였음 그냥 전쟁이 워낙커서 그런거 - dc App
도착해서 핵조립 발사하는 존나 기합이네
해병 멸종사건 ㄷㄷㄷㄷㄷ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