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는 자유진영을 수호하고 공산주의 남하를 한반도에서 틀어 막겠다 이런 대의명분인데
진짜 이거땜에 자국민 청년180만을 이름 모를 타지에 파병한거임? 심지어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서
전후복구도 한참이던 시기에?
그러면 미국이 유일(?)하게 국익 계산 안 하고 타국을 도운 사례 아닌가 그 당시 한반도가 뭐 볼게 있다고
교과서에서는 자유진영을 수호하고 공산주의 남하를 한반도에서 틀어 막겠다 이런 대의명분인데
진짜 이거땜에 자국민 청년180만을 이름 모를 타지에 파병한거임? 심지어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서
전후복구도 한참이던 시기에?
그러면 미국이 유일(?)하게 국익 계산 안 하고 타국을 도운 사례 아닌가 그 당시 한반도가 뭐 볼게 있다고
굳이 따지면 남한은 일본을 공산권에서 지키기 위한 방파제 역할은 있긴 함
소련과의 체제경쟁?
미국 패권이라는 정치외교적 목적 당연히 있었지 그리고 한국은 그 덕분에 발전했으니 윈윈
2차대전 직후라서 세계평화에 대한 낭만이 넘치던 시대인 영향이 있음
그리고 압도적인 명분
명분이 압도적이면 국익을 져 버려서라도 타국을 도운 사례가 저게 유일하지 않나요? 들어본 적이 없음 심지어 지상군 180만 파병은 진짜 말이 안 되는 숫자인데
@banana_01 그땐 전세계적으로 인구는 지금보다 적었지만 군인수는 훨씬 많았을때고 2차대전 끝난지 얼마 안되서 그 군인 수를 어떻게든 굴려야하는 상황이었음. 명분은 둘째치고 지금 180만 파병하는 거랑 무게부터가 다르긴 함.
@1기통출산엔진 그리고 공산권 저지가 당시엔 진짜 생존의 문제였거든. 미국은 2차 대전 시작하기 전부터도 다음 전쟁은 소련이 대상일거라고 봤음. 히틀러가 독소불가침 체결하면서 추축국에 소련이 합류할 가능성까지 걱정했고. 물론 히틀러가 시원하게 뒤통수까면서 둘이 원수가 됬지만.
@1기통출산엔진 그리고 한반도가 넘어가면 자유진영은 아시아에 전진기지가 없어 전쟁나면 무조건 상륙작전으로 비집고 들어가야했는데 당시 미군은 노르망디의 충격에 PTSD가 생긴 상태였음. 그리고 한반도가 넘어가면 공산권 위협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공산화되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도 막아야했고.
와 정성답변 진짜 고맙 ㅜㅜ 써준 댓글 3번 볼께요
@1기통출산엔진 냉전은 사실상 2차대전(태평양전쟁 포함) 이후가 아니라 독일이 항복하기 전부터 시작됬다고 보는게 맞음. 태평양전쟁 도중에도 미국은 소련이 개수작 부릴까봐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거든. 동독 서독 쪼개지고 베를린도 찢어 가져가면서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보다 다음 전쟁은 우리끼리고 바로 시작할거다라는 위기감이 더 심했어.
그땐 진짜 트황상이었음 ㅇㅇ - dc App
대미합중국 트루먼대통령황상각하 ㅠㅠ
1.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남하저지 2. 세계대전 끝난지.얼마안되어서 도우러온 영웅들의 개씹낭만 3. UN의 첫 공식적 해외파병
근데 궁금한 게 당시 미국이 2차대전으로 국가부채도 상당했을거고 자국민 청년 180만을 이를 모를 타지에 보내는 건 암만 명분이 커도 반전여론이 상당했을 게 자명한데 그럼에도 지휘부가 파병을 결정할 리스크를 질 만큼의 가치였나요? 한반도가?
@banana_01 ㅇㅇ 만약 먹히면 동아시아권에 반공세력은 일본과 불완전한 대만밖에없음
49년 소련 핵실험 성공, 그리스 위기, 중국 적화 등이 겹치면서 자유진영이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인데 여기에 625 터지니까 자칫 뮌헨 2탄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적극 대응으로 결론을 내림
당시 공산주의 진영의 확산을 막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었음 - dc App
한반도가 공산화되면 일본이 위험해지고 일본도 공산화되면 태평양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는다는 계산이거지?
너는 체감이 안 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체제경재에 절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