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이미 스핑크스 같은 난해함과 촌로처럼 과시적으로 피워 대는 파이프 담배로 대변되는 침착한 겸손함으로 유명했다. 트로츠키가 경멸했던 무색무취한 평범한 관료이기는커녕, 진짜 스탈린은 모든 면에서 비범하며 활기 넘치고 허영심 강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었다.


이 헤아릴 수 없는 물밑의 기묘한 평온함 아래에는 야망, 분노, 불행의 치명적인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통제된 점진주의로 움직이다가도 무모한 도박을 감행할 수 있었고, 차가운 강철 갑옷 안에 갇혀 있는 듯 보였지만 그의 촉각은 지독히 예민했다. 또한 불 같은 조지아인의 성격은 너무도 통제가 안 되어 레닌의 아내에게 화를 쏟아냈다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거의 망칠 뻔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드라마를 즐기는 예민한 배우처럼 긴장되고 들끓는 기질을 가진 변덕스러운 신경증 환자였다.


하지만 문서 보관소가 개방되고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공개되면서 그에 대한 조명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졌다. 이제 그를 단순히 "수수께끼"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이제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종종 속을 드러낼 정도로 솔직했다), 메모와 편지는 어떻게 썼는지, 무엇을 먹고 부르고 읽었는지 알게 되었다.


분열하기 쉬운 볼셰비키 지도부라는 독특한 환경 속에 놓아 보면 그는 진짜 인간으로 다가온다. 그 내면의 남자는 자신의 역사적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지능적이고 재능 있는 정치인이자, 역사와 문학을 광적으로 읽어 댄 신경질적인 지식인이었으며, 만성 편도선염, 건선, 기형인 팔의 류머티즘 통증, 시베리아 유배 시절의 냉기로 고통받는 안절부절못하는 건강염려증 환자였다. 수다스럽고 사교적이며 노래를 잘 불렀던 이 외롭고 불행한 남자는 행복을 정치적 필요와 동지를 잡아먹는 편집증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생의 모든 사랑과 우정을 망가뜨렸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비정상적으로 차가운 기질을 가진 그는 사랑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으나 모든 감정의 우물에 독을 풀었다. 장미와 미모사를 사랑했던 이 감상적인 애호가는 모든 인간 문제의 해결책은 죽음이라고 믿었으며 처형에 집착했다. 이 무신론자는 사제들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었고 세상을 죄와 회개라는 관점에서 보았지만, "젊은 시절부터 확신에 찬 마르크스주의 광신도"였다. 그의 광신은 "준(準)이슬람적"이었고, 메시아적 자기애는 끝이 없었다. 그는 러시아인의 제국적 사명을 떠맡았으면서도 여전히 조지아인으로 남아, 조상들의 피의 복수를 북쪽 모스크바까지 끌고 왔다.


대부분의 공인들은 세계 무대 위 자신의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기 위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카이사르적인 습관을 공유하지만, 스탈린의 객관화는 그 정도가 한층 더 심했다. 그의 양자 아르툠 세르게예프는 스탈린이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해 먹는 아들 바실리에게 소리치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저도 스탈린이잖아요." 바실리가 말했다.


"아니, 넌 아니야." 스탈린이 대답했다. "너는 스탈린이 아니고 나도 스탈린이 아니다. 스탈린은 소비에트 권력이다. 스탈린은 신문과 초상화 속에 있는 그 사람이지, 너도 아니고 심지어 나도 아니야!"


그는 스스로 만들어 낸 존재였다. 역사를 바꾸고 지도자 역할을 하기 위해 이름, 생일, 국적, 학력, 그리고 과거 전체를 날조한 사람은 의지, 운, 기술을 통해 사물의 자연적 질서를 뒤집을 수 있는 운동과 순간을 포착하지 않는 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스탈린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운동은 볼셰비키 당이었고, 그의 순간은 러시아 제정의 붕괴였다. 스탈린 사후에 그를 운 좋은 벼락출세자이자 혁명의 배반자로 간주하는 것이 유행이었으나, 이는 스탈린 본인이 했던 것만큼이나 조잡하게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스탈린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그 누구도 레닌의 당이 가진 음모적 계략, 난해한 이론, 살인적인 독단주의, 비인간적인 엄격함에 더 적합하지 않았다. 스탈린과 볼셰비즘의 이상적인 결합보다 한 인간과 운동 사이의 더 나은 통합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당의 미덕과 결점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간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편지는 그들이 호화로운 기차 안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목격했는지 보여준다. 부됸니는 휴가차 머물던 소치에서 스탈린에게 이렇게 전했다. "기차 창밖으로 사람들을 보니 낡고 해진 옷을 입은 너무나 지친 사람들이 보입니다. 우리 말들은 피골이 상접했고..." 스탈린의 무해한 '촌로' 칼리닌 의장은 "'굶주리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부"를 요청하는 "정치적 사기꾼들"을 비웃으며, "오직 타락하고 해체되는 계급만이 그런 냉소적인 분자들을 배출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1932년 6월 18일, 스탈린은 카가노비치에게 우크라이나 "기근"의 "엄연한 부조리"를 인정했다.


선철 제련소와 트랙터를 만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생했을 뿐인 이 "부조리한" 기근의 사망자 수는 4백만에서 5백만, 많게는 1천만 명에 달했다. 이는 나치와 마오주의자들의 학살을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농민은 언제나 볼셰비키의 적이었다. 레닌 본인도 "농민은 좀 굶주려 봐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코펠레프는 "우리 세대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보았다"라고 인정했다. 시인 오시프 만델슈탐의 아내 나데즈다 만델슈탐은 자신의 고전적인 회고록 <희망을 버려라>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은 나중에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부인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낡은 가치관을 파괴하고 전례 없는 실험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식을 발명한 것은 결국 20년대의 이 사람들이었다. 달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 모든 새로운 살인은 우리가 놀라운 '신세계'를 건설하고 있다는 이유로 용서받았다." 학살과 기근은 당을 긴장시켰지만, 당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규모의 죽음을 용인했을까?


"총살형 없는 혁명은 무의미하다." 레닌이 했다는 말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를 칭송하며 경력을 보냈다. 왜냐하면 그의 볼셰비즘은 "유혈에 기초한 사회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신조였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들은 무신론자였지만, 통상적인 의미의 세속적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가장 높은 도덕적 고지라는 우월감에 빠져 살인을 저질렀다. 볼셰비즘이 종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에 아주 가까웠다. 스탈린은 베리야에게 볼셰비키가 "일종의 군사-종교적 기사 수도회"라고 말했다. 체카의 창설자 제르진스키가 죽었을 때, 스탈린은 그를 "프롤레타리아의 독실한 기사"라고 불렀다. 스탈린의 "검을 든 기사단"은 전통적인 세속 운동보다는 성전기사단이나 심지어 이란 아야톨라들의 신정 통치와 더 닮았다. 그들은 인류의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믿음을 위해 기꺼이 죽고 죽였으며, 중세 시대나 중동의 종교적 학살과 순교에서나 볼 법한 열정으로 자신의 가족마저 희생시켰다.


그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고귀한 혈통"을 가진 사람들로 여겼다. 스탈린이 주코프 장군에게 1941년에 수도가 함락될 것 같은지 물었을 때, 그는 마치 18세기 영국인이 "신사로서 말해 보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볼셰비키로서 말해 보게, 우리가 모스크바를 지킬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검을 든 기사단"은 올바른 무자비함으로 행동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메시아적인 신념을 가져야만 했다. 스탈린의 "준(準)이슬람적" 광신은 볼셰비키 간부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미코얀의 아들은 아버지를 "볼셰비키 광신도"라고 불렀다. 대부분은 독실한 종교적 배경 출신이었다. 그들은 유대-기독교를 증오했지만, 부모들의 정통 신앙은 훨씬 더 경직된 무언가, 즉 체계적인 비도덕성으로 대체되었다. 나데즈다 만델슈탐은 이렇게 썼다. "신봉자들은 겸손하게 과학이라고 불렀지만, 이 종교는 인간에게 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다... 20년대에 꽤 많은 사람이 이를 기독교의 승리와 견주었고, 이 새로운 종교가 천 년은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내세의 보상 대신 지상 낙원을 약속하는 이 새로운 신조의 우월성에 동의했다."


당은 신앙의 순수성을 통해 '독재'를 정당화했다. 그들의 경전은 "과학적" 진리로 간주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르침이었다. 이데올로기가 워낙 중요했기 때문에, 모든 지도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전문가여야만 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이 무법자들은 난해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지친 밤을 보내며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따분한 논문들을 공부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몰로토프와 폴리나는 연애편지에서조차 마르크스주의를 논할 정도였다. "내 사랑 폴리치카... 마르크스주의 고전을 읽는 건 정말 필요한 일이야... 곧 나올 레닌의 저작들을 좀 더 읽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스탈린의 저작들도 여럿 읽어야 해... 당신이 정말 보고 싶어."


코펠레프의 설명에 따르면, "당성"은 "거의 신비주의적인 개념"이었다. "필수 전제 조건은 철저한 규율과 당 생활의 모든 의식을 충실히 준수하는 것이었다." 한 노련한 공산주의자가 표현했듯이, 볼셰비키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 당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독단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의 도덕과 양심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스탈린이 "우리 볼셰비키는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라고 자랑했을 때, 그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 Simon Sebag Montefiore, '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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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내부와 외부의 '적'을 연결하는 조작된 음모라는 유서 깊은 권위주의적 장치의 서사시적 버전을 선동했지만, 소련의 사례는 규모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테러에 관한 또 다른 기념비적인 저서의 저자인 로이 메드베데프는 스탈린을 신성한 레닌과 분리시키고 그를 전통적인 폭군으로 묘사하려 노력했지만, 그 역시 스탈린이 "권력에 대한 욕망, 끝없는 야망"에 의해 동기 부여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치 모든 폭군들이 그러한 규모로 자신의 엘리트들을 살해할 뿐만 아니라, 저지르지도 않은 환상적인 범죄에 대한 강제 자백을 받아냈다는 듯이 말이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동기를 질투와 비열함으로 상상했고, 전기 작가 로버트 C. 터커는 명성과 영광의 추구로 보았다. 모셰 레빈은 "편집증적인 스탈린이 실제로 시스템 자체가 되었고 그의 인격이 따라서 ‘시스템적' 차원을 획득했다"고 추측했는데, 이는 적절한 묘사이지만 분석은 아니다.


히로아키 쿠로미야는 반대자와 적에 대한 스탈린의 냉혈한 논리를 날카롭게 해부했고, 에릭 반 리는 스탈린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진정한 신봉자로, 아르폰 리스는 그를 혁명가와 마키아벨리주의자의 결합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통찰력들은 1937년에서 1938년의 살인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합당한 것은 아니었다. 아담 울람은 검토 끝에 "스탈린의 숙청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순전히 터무니없는 요소가 있다"고 인정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의도가 아니라 정치 시스템의 만성적인 기능 장애를 강조했는데, 마치 모든 권위주의 정권(모두가 크게 기능 장애를 겪고 있는)이 스탈린이 한 일을 한다는 듯이 말이다.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인구의 1% 미만),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겨냥했지만, 소련에서 스탈린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엘리트들을 전반적으로 파괴했다. 물론 희생자의 대다수는 평범한 소련 주민들이었지만, 어떤 정권이 엄청난 수의 충성스러운 관리들을 숙청하는가? 히틀러가 (만약 그가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나치 공장 및 농장 책임자들의 거대한 부분을, 그리고 거의 모든 나치 지방 관구장들과 그들의 참모들을 여러 번에 걸쳐 투옥하거나 처형하도록 강요할 수 있었을까? 그는 나치 중앙 부처의 인력, 수천 명의 국방군 장교들(거의 모든 최고 사령부를 포함하여)뿐만 아니라 제국의 외교단과 첩보원, 유명한 문화계 인사들, 그리고 전 세계 나치당의 지도부(만약 그러한 당들이 존재했다면)를 처형할 수 있었을까? 히틀러는 대규모 유혈 사태를 벌이는 와중에도 게슈타포를 궤멸시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독일 국민에게 자신과 함께 권력을 잡은 거의 모든 사람이 외국 스파이이자 사보타주 요원임이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독일 국민이 그것을 믿을 수 있었을까? 이념적 독재 정권 중에서도 공산주의는 단연 돋보인다.


소련 시스템에 내재된 특별한 요소들이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대규모의 참여형 학살을 가능하게 했다. 조립 라인 방식으로 체포하고 선고할 수 있는 광범위한 경찰 기구의 존재는 필수적이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국가의 모든 기관에 세포 조직을 가지고 있어 이단 사냥을 가능하게 한 그림자 같은 공산당의 존재와, 당의 특별한 사명과 순수성을 재확인한다는 이유로 대량 학살에 쉽게 이바지하는 이데올로기, 계급 투쟁 관행, 그리고 음모적인 운영 방식이었다. 이 모든 것은 소련의 반자본주의적 산업화와 집단화의 적대적 성격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또한 정권의 검열(정보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특정 사고방식의 부지런한 장려), 사회주의 하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새로운 엘리트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 그리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위대한 십자군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이 있었다. 대중은 당 세포, 공장과 농장 회의, 특히 그들의 서면 고발, 정보 제공, 그리고 강제 자백의 결과로 공범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학살이 저절로 발생하거나 저절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소련 국가 권력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공식적인 행정 기구 내부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에 의해 행사되었지만, 한 개인에 의해 지휘되었다.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는 사회주의를 건설했는데, 이는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위업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권위는 너무나 확고해서,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1936년 8월에 그는 두 달 이상 수도를 떠나 소치(Sochi)로 휴가를 갈 수 있었다. 류틴의 신랄한 비난이 손에서 손으로 유포되는 일은 반복되지 않았다. 그의 측근 중 누구도 같은 수준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다.


만약 스탈린이 자신의 핵심 측근을 무너뜨리고, 더 넓은 엘리트층을 완전히 겁에 질리게 만들고, 스스로를 전제 군주로 만드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그는 군인들에 대한 비공개 재판과 처형, 그리고 야고다, 파우커 및 다른 NKVD 고위 간부들의 체포로 숙청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임무는 달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더 많은 고위급 재판을 계획하고 있었다. 1937년 여름, 스탈린은 체포와 처형을 비엘리트층으로 대폭 확대했다.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어떤 "역동성"도, "분파적" 싸움도, 고조된 해외 위협도 없었다. 대숙청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대규모 작전이라 불리는 계획적이고 무차별적인 학살을 통해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할당량에 따라 근절하는 것을 승인하기로 스스로 결정했을 뿐이다.

스탈린이 당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숙청 관행을 확대하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적은 조작이 필요했지만, 그의 대숙청은 그 나름대로 장관을 이루는 위업이었다. 그는 경찰-군사 독재 체제에서 소련 군부와 비밀경찰의 거의 모든 고위층뿐만 아니라 산업 관리 계층, 지역 당 조직, 문화계의 유명인사 대부분을 전멸시켰다. 그는 또한 소련의 군사 및 민간 정보 기관, 해외 무관 및 외교관, 그리고 어떤 독재 정권이라도 소중히 여길 주요 도구인 해외 공산당에도 파멸을 안겼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관료 사회의 회피적이고 사리사욕적인 행태는 모든 권위주의 국가에 만연해 있다. 이례적인(온건하게 표현하자면) 것은 그들 자신의 정권에 의한 대량 학살이었다. 스탈린에게는 그들을 살해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마음대로 어느 지역의 총독이든 해고하거나 전보할 수 있었다.*

대신 그는 소련 관리들을 대규모로 처형하거나 강제 노동 수용소로 추방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가 자원을 들여 그들을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냈고, 믿기 어렵겠지만 이 공산주의자들이 부패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외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암살하고 자본주의를 복원하려 했다고 자백하게 했다.


- Stephen Kotkin, Stalin 2: Waiting for Hitler, 192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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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평가로서 조지 오웰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한번도 권력의 중심에 접근하지 못한 외부인이자 상상력이 부족하고 성실한 모범생 같은 서구 지식인에 불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