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라고 해야 할 청나라의 정확한 참전 병력 숫자조차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조선과 명나라의 기록에 따라 그저 “수십만”에서 “30만”까지 편차가 크다. 30만은 그래도 믿을 만한 기록인 [인조실록]의 숫자라고 한다. 하지만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통설은 12만8000명이다. 병력을 동원한 청나라 사료에도 정확한 숫자가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구 교수는 1644년 청나라가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해관(山海關)을 돌파해 중원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그보다 8년 전인 1636년 병자호란 때의 청나라는 12만8000명이라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큰 나라가 아니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국내 연구자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청태종실록] 등 중국 측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다. 정규 병력 3만4000명, 만주어로 ‘쿠투러(kutule)’라고 불렀던 허드렛일하는 하인 1만1000명을 합쳐도 4만5000명, 있을 수 있는 누락이나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5만 명을 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12만8000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왔을까.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책임편찬위원을 지낸 유재성씨가 1986년에 펴낸 [병자호란사]에서 제시한 숫자다. 그런데 훗날 유재성씨는 이 숫자가 아무런 사료 근거 없이 자신이 임의로 집어넣은 것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도 12만8000명이 여전히 통설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게 현실이라...
기록에 진심이었던 우리 조상들이 왜 유독 군사사 머릿수에선 그런 치밀함이 안보이는건지 신기함
기록 대부분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쓰여진 거라서 당장 조선도 생활사 같은 미시사 자료들은 서간 같은 거에 의존함.
기록에 별로 진심 아닌거같음 적어도 군사사에 대해서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의별게 다 나오는데 - dc App
기록에 진심? 조선왕조실록 말떨어진거 같은거 몇개 가져다가 만든 짤방 믿고 그런 소리하면 숫자 맘대로 집어넣은 사람이랑 똑같은 짓 하는거임
군사 머릿수 과장하는 건 서양도 똑같음. 걔들도 1차 사료보면 숫자 판타지임. 단지 서양학계가 우리보다 그 부분 연구가 빨라서 우리가 접하는 게 학자들이 쳐낸 숫자라 서양은 과장 안 한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거
상대방 머릿수 파악하는거 ㅈㄴ 힘듬 그래서 얼추 어림잡아다 하는거라 그래 - dc App
다 떠나서, 지금도 상대방 전력 정확히 예측이 어려운데 저 시절은 더더욱 어려운거 아님?
우리편 군대면 국방부에서 머리수 세서 주겠지만 쳐들어온 놈들이 얼만지 어떻게 알겠어... 오랑캐들이 우리 몇명입니다 입국신고 하는것도 아니고
군사 머릿수는 동서양 다 똑같아. 애초에 당대에 교차검증도 힘들고 추측에 추측, 플러스 공포와 정치적 의도가 들어가니까. 기본이 호왈백만인거지. 다만 서양이 금속활자와 인쇄물의 대중화, 유럽내 활발한 국가간 교류의 전통으로 몇 백년 일찍 기록자와 기록 동기의 확장, 교차검증의 강화를 겪은 덕분에 중세 후기로 가면서 군사기록의 세밀함이 강화되는거고.
쉽게 말해 용비어천가 쓰는 사관에서 국제정치군사를 망라하는 언론, 오스프리 같은 군사잡지 같은 느낌의 민간 출판물로 기록 주체가 확산되는거
사료가 부정확한건 그렇다 쳐도 숫자를 임의로 집어넣은건 뭐임ㅋㅋㅋㅋ
사실 이건 동아시아 특이라 쩔수없는거같긴해. 호왈이 기본이니ㅋㅋ
임의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좀 부끄러운 현실이네 ㅠ
허장성세 기록 ㄷㄷ
임의라니 왜...
아니 임의지정이었던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