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본에서 2008년에 발간한 방어작전 간 방어부대의 지휘관이 고려해야 할 준칙에는 조기 적 기도 파악, 방어의 이점 최대 이용, 전투력 집중, 종심깊은 전투력 운용, 방어수단의 통합 및 협조, 적극적인 공세행동, 융통성 이렇게 7가지가 있음
각각에 대한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1. 조기 적 기도 파악 (정보우위 확보)
감시·정찰 자산을 최대 활용해 적의 공격방향과 의도를 조기에 식별
전장의 불확실성 감소 → 방어측의 정보 비대칭 극복
2. 방어 이점 극대화 (지형·시간 활용)
지형, 시간, 생존성 측면의 유리함을 적극 활용
적의 실수·약점을 유도하고 이를 공격으로 연결
3. 전투력 집중 (결정적 순간/지점)
결정적 시간과 장소에서 국지적 우세 확보
제한된 전력 → 선택과 집중이 핵심
4. 종심 깊은 전투력 운용 (지속적 소모 유도)
전장을 깊게 활용해 단계적으로 적 전투력 감소
조기 탐지부터 종심 전반에서 지속 타격
5. 방어수단 통합 및 협조 (시너지 창출)
병력, 화력, 장애물 등 모든 수단을 통합 운용
전투수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협조가 필수
6. 적극적 공세 전환 (주도권 회복)
방어 중에도 적의 약점 발견 시 즉각 공세
적의 공격 흐름을 차단하고 주도권 탈환
7. 융통성 (상황 대응력)
예비대 확보 + 다양한 우발계획 준비
실시간 상황판단 → 신속한 결심과 대응
한 줄로 요약하면
정보우위를 기반으로, 지형과 전력을 선택적으로 집중·통합하여 종심에서 적을 소모시키고, 기회 시 공세로 전환하며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방어작전 원칙이라고 볼수있음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신립이 왜 탄금대전투에서 패배했는지 분석해봤음
1) 조기 적 기도 파악 부족
선조 수정 신록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
지휘관이라면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변화되는 적의 작전기도를 식별하는 데 주안을 두어야 하고, 작전 실시간으로 경계부대의 보고에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립장군은 오히려 경계부대로부터 들어온 첩보를 믿지 않고 보고한 자의 목을 베어버리고, 두 명의 척후가 차단당하자 적에 대한 정보가 그 이후로는 단절된 것을 보면 탄금대 전투에서 조기 적 기도 파악은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론)
신립장군이 조령을 포기한 것은 조령만이 꼭 서울로 진격하는 데 거쳐야 하는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문경에서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는 조령만 있는 것이 아니며, 문경에서 이화령을 넘으면 연풍-괴산으로 이어지고 계립령 또한 전통적으로 남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기 때문에 조령을 방어하기 보다는 확실하게 적을 마주할 수 있는 탄금대 지역에서 방어를 했다는 것이다(이희진, 2015)
실제로 지도를 보면
문경에서 서울 올라가는 길은 총 3가지로 이를 근거로 조령에 진을 치는것은 부적절하다고 신립을 옹호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실제 위성 사진을 확인해보면 관측 지점(노란색 점)에 척후병을 배치하면 일본군이 진행할 수 있는 세 갈래 길에 대한 시야를 모두 확보할수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기병과 보병을 조령 중턱에 적절히 나누어 배치하였다가 일본군의 진행 방향이 명확해 지면 나눠졌던 병사들을 적의 주 공격 방향에 다시 재배치한다면 일본군의 북진을 조령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방어의 이점 최대 이용
신립 역시 조령의 중요성을 모르던게 아니었는데
선조 수정신록에 따르면 신립이 처음 군사를 배치한것 탄금대가 아라 단월역으로 여기서 군사를 어디에 배치할 지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방자는 공자에 비해서 지형, 시간, 생존성 및 전투력의 발휘 측면에서 상대적인 이점을 지닌다
따라서,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작전의 주도권을 공자에게서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방어를 할 때에는 지형을 분석하여 유리한 지역을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종사관(從事官) 김여물(金汝岉)은 이와 같은 방자의 이점인 조령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역습을 하자고 건의한다.
실제로 GIS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조령과 탄금대 지역의 지형을 분석해 본 결과 조령의 평균 경사도는 23도이고 최대 경사는 79.6도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었지만 탄금대 지역의 평균경사도는 불과 4.86도이고
이것 역시 탄금대 지역의 직접적인 산악지형이 아닌 달천 너머의 산악지역의 산악지형으로 인한 효과로 분석되면서 조령 지역이 적의 기병과 조총병이 공격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제한사항을 가졌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조령 방향으로 일본군이 진입했을 경우를 가정하여 일본군의 기병이나 보병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조령 지역의 소로길을 표시해 보았고, 이를 피하여 진입로의 좌·우측으로 아군의 병사들을 매복시켰을 경우 조선군의 병사들이 볼 수 있는 가시선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소로길을 피하여 좌·우로 병사들, 특히 궁병들을 배치하였을 경우 일본군에게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또한 신립이 그토록 믿었던 기병을 적이 매복으로 우왕좌왕할때 기습 및 추격용으로 사용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신립 장군은 조선군의 주력이었던 기마병을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사를 돌려 충주성으로 들어갔고, 이후에는 탄금대로 나아가 배수의 진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 신립 장군이 충주성에서 수성전술로 방어를 하였어도 탄금대에서처럼 무기력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전투력 집중
신립 장군은 가용한 모든 전투력을 동원하여 탄금대 지역에서 진을 쳤으며, 이 때 진의 배후에는 달천이 흐르고 있어 퇴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배수의 진이다. 전투력 집중이라는 단어의 의미만 놓고 본다면 신립 장군이 구사한 배수의 진은 모든 전투력을 이용하였고 또한 퇴각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는 전투의지를 심어준 것이기 때문에 잘 이루어졌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하지만 방어작전의 준칙에서 전투력 집중이 의미하고 있는 바를 생각해 볼 때 이는 다시 한 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전투력 집중은 통상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적보다 상대적인 전투력 우세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휘관은 어디에서 전투력을 절약하고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즉, 지속적인 감시를 통하여 적의 주공방향이 아닌 조공방향이나 자연장애물이 잘 형성되어 있는 곳에서는 전투력을 절약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전투력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탄금대 전투에서 전투력 집중은 잘 이루어 졌을까? 루이스 프로이스가 기록한 먼저 전투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전투 모습을 살펴보면 신립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다수의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점을 이용하여 기동력을 앞세워 원거리에서부터 일본군을 포위하려 하였다 (노영구, 2001).
즉, 개전 초반에는 일본군에 대해서 전투력의 우위를 달성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포위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일본군의 함정이었고 좌·우측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집중적인 조총사격에 기병들이 무기력하게 당하고 혼란에 빠져서 결국 패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적에 대한 전투력 우위를 판단할 때에는 적의 기만전술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주력을 투입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후편은 곧~
출처는 육본산하 화랑대연구소
- dc official App
오 이런 정보글죠으디
그냥 말아먹고 전멸했다는거네 - dc App
총체적난국
ㄹㅇ - dc App
일단 병력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장부상 군인이랑 말도 없어서 각출해서 쥐어준 군대에 내려가면서 모병하고 충청도 지방군 8천인데 멀하겠음
근데 저런 병력이 여진이랑 붙으면 이겼고 일본은 졌고 임진왜란 후기 조선군도 졌다는게 신기함. - dc App
@함안함 여진은 기껏해야 몇백명 단위라서
수준이 떨어졌다는 근거는 뭐임 - dc App
@ㅇㅇ 활쏠줄 아는 놈들 싹싹 긁어갔다고 나오는데 걔들이 정예병은 아니지
@함안함 임진왜란 초기에 수군은 경상좌우수영, 육군은 평안도 함경도에 주전력이 있었음. 왜구가 침입하면 제승방략으로 지방군 모아서 대응할 계획이었고 신립이 끌고온 기병 100기 제외하면 탄금대전투 조선군이랑 여진족 때려잡는 조선군은 서로 다른 군대였음
기병 위주라는데 우회해서 옆치기할 곳이 없는 곳에 진을 쳤네
길이 한개만 있는게 아니라 뭔짓을 하든 어차피 포위당해 전멸하는건 기정사실이었음. 조령에 진 쳤으면 물 부족한 산에 고립돼서 죽었을거고.
충주성 방어 못함. 성자체가 읍성이라 성벽 높이가 3미터정도로 낮음 방벽으로서의 역활하려면 5m이상은 되어야함 그리고 성안에 식량이 없었음. - dc App
신립 휘하 정예병이 수백도 안되었고. 제승방략에 따라서 지방에서 징집한 오합지졸 아 주력임 사실 이전 상주전투에도 이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순변사 이일이 이끄는 2천도 안되는 군대가 손발이 너무 안맞아서 훈련 한답시고 밖에서 야영하다 일본군이 코앞까지 왔음에도 인지를 못해서 완벽하게 포위섬멸 당했음. 이일과 몇몇 기병들이 말타고 도망쳤는데. 말을 타지 않은 병력은 모두 죽었다고 기록됨 - dc App
요새화도 안 된 조령에서 훈련도 안 된 잡병들 데리고 버텼으면 지리멸렬하게 전멸 당했겠지만 탄금대 참패가 너무 비참해서 차라리 조령에서 병력 궤멸당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더라
애초에 신립에 하달된 목표가 북진하는 일본 1, 2, 3군이 한양에 닿기 전에 요격하는거라 조령에서 버텨봐야 의미 없고, 야전에서 차례로 일본군 섬멸하는 수밖에 없었음. 결과적으론 3개 군 중 하나도 못잡고 전멸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