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1차대전과 민족주의를 이야기할 때 1차대전 발발 과정 또는 갈등의 애스컬레이션에 주목함.
나는 여기에 더해서 전술적 차원에서도 민족주의가 작동했고 그로 인한 오판이 문제를 키웠다고 생각함.
1차대전의 전장에서 일어난 비극들은 그 배경에 산업혁명이 있었음. 산업혁명은 각종 무기들의 생산 과정과 규격 표준화, 재료의 균질화, 성능의 고도화를 촉진했음. 수석식 머스켓은 뇌관식 라이플에 이어 탄피를 이용한 후장식 소총으로 진화했고 뒤이어 연발 소총과 기관총을 만들었음. 야포는 이전보다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쏠 수 있게 되었고 포탄의 종류는 기존의 솔리드샷을 대체할 고폭탄, 슈라프넬, 연막탄 등등이 등장했음.
그리고 그 무기들이 실제로 전장에 나왔을 때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를 수많은 예시들이 등장했음. 미국 내전이 그랬고 식민지 전쟁이 그랬고 보오전쟁이 그랬고 보불전쟁이 그랬고 청일-러일전쟁이 그랬고 발칸반도 전쟁이 그랬음.
국민국가가 동원하는 징집병에 기반한 대규모 병력이 고도화된 무기로 무장하고 부딪혔을 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봤음. 아니, 보기만 했음.
그들은 관전만 했을 뿐 아무런 검토도 반성도 없었음. 사실 검토를 하긴 했지만 그 결과물이라는 게 이전 시대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동원 체계와 무기 확보 정도였지 전쟁과 전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하지 않았음.
여기에 더해서 그들의 오판을 키운 건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였음. 그들이 관전한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미개한 토인, 미개한 아시아인, 미개한 슬라브인들이었음.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생각 속에 그들과 우리는 달랐음. 우리 같은 우수한 민족의 상무정신, 우리와 같은 우수한 민족의 전통 속에서 빛나온 신묘한 전술은 그것을 극복하고 적을 분쇄하여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음.
이것이 오판한 대가임.
전쟁의 여신: 내가 그동안 유럽인에게 얕보였구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