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선요약

탄금대로 병력 배치는 가능한 선택일수 있지만 종심 교리상 조령 등등에서 미리 상대 병력을 소모시키고 피로도를 누적 시킨 상황에서 탄금대에서 회전을 치뤘어야함

거기에 더해서 기병은 탄금대로 넣더라도 충주성의 일부 보병 제대를 배치해서 포위를 위해 다가오는 우?익 견제 및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유연한 군사 배치를 했어야함

탄금대 자체가 같은 평지내에서도 기울어진 동네라 일본군 쪽 시야가 조선군 시야보다 훨씬 넓어서 이미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

그상황에서는 더더욱 유연한 제대 운용과 정보수집이 필요했으나 아예 관심이 없었음


4) 종심 깊은 전투력 운용
종심 깊은 전투력 운용의 핵심은 결정적 전투를 하는 지점에서만 전투력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지종심부터 시작해서 적의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노력을하는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하여 탄금대에서의 신립군의 전투력 배치와 일본군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았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신립군의 전투력 배치는 종심 깊은 전투력 배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 결과, 일본군은 비록 장거리의 행군을 통하여 조선군에 비하여 체력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저하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인 병력 수는 조령이라는 험난한 지형을 극복하면서 신립군으로부터의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유지하여 충주에 도달하였고,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은밀하게 포위작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신립군이 조령에서부터 군사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것은 선조수정실록의 다음 구절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적이 처음 조령의 입구에 이르러 험준한 산세(山世)를 보고 복병(伏兵)이 있을까 의심하여 재삼 정찰하였는데 군사 하나 없이 조용하므로 과감히 군대를 진출시켰다

신립 장군은 달천평야에서의 배수의 진을 친 총력전, 즉 결정적 전투에만 몰입한 나머지 적이 오는 길목에서의 전투력 저하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5. 방어수단의 통합 및 협조

방어를 하는 지휘관은 가용한 병력, 화력, 장애물 등의 모든 방어수단에 대해서 이를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협조시켜 방어력을 극대화 하여야 한다.

여기서 통합이란, 제반 수단들을 효과적으로 조직 및 결합하여 전투력의 상승효과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협조란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하여 모든 방어 요소들을 운용될 시간과 장소를 조정하는 것이다.

통합의 측면에서 탄금대전투를 살펴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통합은 잘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병농일치제에 의거한 부병제 운영과 제승방략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농사를 지으며 가끔 군사훈련을 받다가, 전시가 되면 군인으로 차출되어 끌려가게 되는데 이 때 본인이 먹어야 할 식량은 본인이 가지고 가야 했다 (김성우, 2013).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징발 대상자들은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징발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발된 이들은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울 의지가 있을 리가 만무했을 것이다. 이렇게 싸울 의지를 상실한 군관들을 데리고 아무리 조직을 재편하고 싸운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신립 장군은 생각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을 이끌고 배수의 진을 치고서라도 싸우고자 하였던 모습을 보면 신립 장군은 부하들을 극한의 상황에 내몰고서라도 내부의 결속력, 즉 통합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협조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당시의 제승방략 전법을 문제삼을 수 있다. 제승방략 전법은 지방의 관군을 통솔할 최고 지휘관들을 중앙에서 파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앙에서 파견한 중앙 군관들은 지방의 군관들에 비해 엘리트의식이 강하였고,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려다 보니 군령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특히, 중앙에서 파견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리는 거의 없었고 지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6. 적극적인 공세행동

방어작전은 항상 적의 공격을 방어만 하는 작전이 아니라, 공세행동 이전의 여건을 조성하는 작전이다.

즉, 소극적인 방어의 모습만을 구상하는 것이 아닌 적의 과오가 발견되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적의 약점과 과오는 부대밀집 및 제대 간 간격 발생, 견제 지역에서의 전투력 부족, 공격대형의 신장에 따른 지휘통제 및 상호지원의 곤란, 작전 한계점 조기 도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군이 이용하려고 하였던 적의 과오는 제대 간 간격 발생이었을 것이다.

일본군 종군 선교사인 프로이스의 탄금대 전투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군은 적이 소수인 것을 보고는 일본군의 중앙을 습격하고 한 병사도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하기 시작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세종 대의 야인 정벌을 통하여 연마한 평지 기마전술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군의 군대가 소수이면서 밀집되어 있는 것을 눈 앞에서 확인하자, 적의 이러한 과오를 확대하기 위하여 재빠르게 주력이었던 기병을 공세적으로 활용하여 적을 포위하려 하였다.

하지만 적을 보는 눈이었던 척후들을 잃은 신립 장군이 전투현장에서 확인한 일본군의 규모는 거짓이었다

즉, 수세적인 모습에서 탈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공세행동이 실패하였을 경우에는 전반적인 작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에 성공 여부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장감시를 통한 적의 기도 파악 및 적정 파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GIS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탄금대 지역에서 신립군이 진을 펼친 곳에서의 가시선 분석과 일본군의 진입 방향에서 점령할 수 있는 고지에서의 가시선 분석을 진행해 보았다

그 결과, 신립군이 진을 펼쳤던 탄금대 지형은 평지이긴 하지만 주변보다 그 고도가 약간 낮아서 적이 가시권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첩보가 없다면 적정을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이 진입하면서 선점할 수 있었던 고지에서 신립군이 진을 쳤던 달천평야를 바라본 결과, 신립군의 규모 및 진을 매우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가시선이 확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즉, 일본군이 새벽부터 대담하게 세 갈래로 나누어 신립군을 은밀하게 포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신립군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여 전투에서의 주도권이 모두 일본군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판단해볼 수 있다

7. 융통성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는 작전의 주도권이 공자에게 있기 때문에 공자가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 올 것인가에 대해서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기존에 수립하였던 방어계획으로 항상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특히 방자에게 융통성이 강조된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규모의 예비대를 편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다양한 우발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장군의 예비대 편성 및 우발계획 수립에 대한 준비의 유무는 『선조수정실록』에서 당시의 전투 진행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략)...신립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곧장 말을 채찍질하여 주성(州城)으로 향하여 나아가니 군사들은 대열을 이루지 못하고 점점 흩어지고 숨어버렸다.

성중의 적이 호각소리를 세 번 발하자 일시에 나와서 공격하니 신립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으며, 적이 벌써 사면으로 포위하므로 신립이 도로 진을 친 곳으로 달려갔는데 사람들이 다투어 물에 빠져 흘러가는 시체가 강을 덮을 정도였다.

신립 장군의 조기 적 기도 파악은 실패하였음을 위에서 논한 바 있다. 만약, 이와 같이 적을 볼 수 있는 눈이 매우 제한되는 상황이라면 지휘관은 보다 더 다양한 우발 계획을 수립하고 치밀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방어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고, 높은 방호력을 제공하는 충주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병 전술을 활용하기 위하여 탄금대 지역을 선택했다면, 기병을 모두 탄금대로 집결시켜 진을 치게 할 수는 있어도 최소한 어느 정도의 보병 병력은 충주성 주둔시켜 예비대로써 활용도 하고 퇴각을 할 때 바로 성문을 열어서 아군의 퇴각을 엄호 및 지원하게 조치했어야 하는 것이 융통성 확보의 측면에서 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전투력을 탄금대 지역에서 배수의진을 치게 함으로써 일본군으로 하여금 충주성으로 무혈입성(無血入城)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예비대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지원군을 부를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탄금대의 넓은 평지 지역에서 반월진을 형성함으로써 일본군으로 하여금 포위할 수 있게끔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따라서, 전투에 있어서 융통성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적을 보는 감시자산이 상당히 제한될 경우에는 적정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얼마나 우발계획을 더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인지를 탄금대 전투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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