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에 정훈병과 또는 정치위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훈은 원래 정치훈련의 준말임. 군대는 정훈교육 또는 정치교육을 통해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실시함. 이 정신교육은 구체적으로 ‘왜 지켜야 하고, 왜 싸워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됨.
이 역할을 이전 시대에 종교가 했음. 사실 지금도 하고 있음. 군종장교가 존재하는 이유임.
그렇다면 왜 종교가 그 역할을 했을까?
현대에는 각 국가의 정체성 내지는 이념을 민족집단의 구성이라든지 추구하는 이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규정함. 그 역할을 근대 이전에는 종교가 했음. 종교가 곧 정치였고 이념이었고 문화였음. 종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를 규정하고, 지배 구조를 정당화했음. 사람들은 종교를 바탕으로 세계를 규정하고 사고했음.
그랬기 때문에 전쟁의 성격, 수행하는 목적, 명분을 규정하는 데
있어 종교가 작동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음.
우리는 그 예시를 이미 잘 알고 있음. 바로 십자군 전쟁임.
양측의 종교 조직은 종교 교리를 이용하여 성전이란 이름으로 전쟁 명분을 규정하면서 전쟁 수행을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일조함. 여기에 더해서 맞서 싸우는 상대를 우리 종교를 없애려고 하는 적으로 규정하며 장병들의 전투 의지를 고양하였음.
뿐만 아니라 전투 현장에 종군하며 전투 인원들을 위문하거나 종교 행사를 집전하며 의지를 고양시켰음.
이 구도는 계몽주의가 등장하며 시대가 바뀐 이후에도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냄.
근대 이후에 종교가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남북전쟁/미국 내전임.
미국 내전 이전에 미국 내부에서 이어진 정치 투쟁의 밑바닥에는 연방주의 대 비연방주의, 미국 헌법 정신의 해석 문제와 더불어 기독교 윤리 문제까지 얽혀 있었음.
노예 해방론자들은 반대론자들을, 하느님 아래 같은 형제 자매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착취하는 적그리스도로 규정했음. 반대로 노예 존치론자들은 노예의 존재와 착취 구조를 성경을 바탕으로 긍정하고 이를 해체하려는 세력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했음. 이 갈등이 폭력적으로 폭발하는 기폭제가 있었음.
급진 노예 해방론자였던 존 브라운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노예 해방을 주장하고 더 나아가 적그리스도인 노예 존치론자를 힘으로라도 생각을 바꾸도록 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음. 그래서 노예 존치론자들을 린치하기도 했고 착취를 당하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봉기를 선동하기 위해 연방군 무기고를 습격했음.
하지만 그의 급진적인 방법론은 한편으로는 남부 지역의 강한 밴발을 불러왔지만 또 한편으로는 북부인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연방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노예제 폐지 운동을 격화시킴. 그 영향은 지금도 우리 머리 속에 남아 있음.
처음에 John Brown’s Body라 구전되던 노래는 군가가 되면서 가사가 개사되어 우리가 아는 그 노래가 됨.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로도 불리는 그 노래임.
점점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그 자리를 이념, 사회종교가 대체하면서 예전만큼 전쟁의 수행에서 종교가 역할을 하는 것은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종교적 영향력이 강했던 사회에서는 군종장교가, 사회주의 전통이 남아 있는 사회에서는 정치위원 제도가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대체로 20세기식 설명인 거 같은데, 요즘 역사학계에서는 전근대 민족 의식과 국가 주권 개념도 강력했다고 보고, 근대와 계몽주의도 중세와의 단절이 아니라 신을 역사의 진보로 대체했을 뿐인 기독교의 사생아쯤 되는 사상이라 함
십자군 전쟁도 기독교 대 이슬람교의 투쟁인 만큼 초원 투르크 유목민족에 맞서는 정주민족 연합의 투쟁이었고 투르크족 전사들이 정착하고 정주민화되면서 끝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