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남왜시절 게릴라성 왜구상대로나 하는 소규모 접전에나 유리할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근데 원앙진 특성상 구성원의 훈련도나 실전경험이 수반되지 않으면 난잡해질듯
오카네구다사이(verdian225)2018-09-26 14:03
논문준사람
솢홎(mtriobel12)2018-09-26 14:03
ㅇㅇ 남병 자체는 숙련도 높았제
솢홎(mtriobel12)2018-09-26 14:03
오로라 블로거 아니냐
익명(175.223)2018-09-26 14:05
ㅇㅇ
솢홎(mtriobel12)2018-09-26 14:06
시기가 약간 늦은거 같긴해. 총을 다수 쏴버린다라는 무식한 대안?이 가능한 시대라서리.
익명(61.253)2018-09-26 14:10
띵군도 기본적으로 화력우위 가진 상태에서 쓴 거임 ㅇㅇ
솢홎(mtriobel12)2018-09-26 14:12
시기가 늦은 시대는 아니지 서양도 다양한 근접병과 수반한 테르시오가 대세이던 시절이고 전열보병의 에고편인 선형전술이 테르시오 몰아낼려면 반백년은 더 있어야 하는 시절
오카네구다사이(verdian225)2018-09-26 14:14
그러니깐 조선도 너무 혁신적으로 가지말고 냉병기도 같이 쓰는게 더 좋았다라는 말이지? 흠...
익명(61.253)2018-09-26 14:33
그런데 조선은 활과 궁기병에서 바로 화승총 트리를 탄거 같아. 근접전 할 병사들을 못 구한게 아닐까? 정 변명하자라면야...
익명(61.253)2018-09-26 14:35
지속적으로 삼수병 체계에 의거해서 최소 총병의 1/3만이라도 살수 확충하려고 했는데 일부 사례 빼고는 잘 안된듯함. 그래서 야전축성에 크게 의거했는데
솢홎(mtriobel12)2018-09-26 14:36
이건 16C 서구와 유사함.
솢홎(mtriobel12)2018-09-26 14:36
의존*
솢홎(mtriobel12)2018-09-26 14:37
조선의 야전축성이라....그것도 어메이징한데. 차라리 총검이 더 답이 있을거 같다.
익명(61.253)2018-09-26 14:41
ㄴㄴ 실제로 잘 써먹은 전투도 여럿 있음
솢홎(mtriobel12)2018-09-26 14:42
화승총 부대의 공세적 운용 이야기니깐 결국 테르시오 나온거 아녀. 그 테르시오조차 야전은 힘들고.
익명(61.253)2018-09-26 14:43
소위 테르시오로 일컬어지는 방진이 16C에 창병과 총병을 어케 조합하면 전투력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거고, 얘네들도 창기병이 각잡고 털면 털린 예 많음. 그렇지만 야전에선
솢홎(mtriobel12)2018-09-26 14:50
창기병 공격도 여러 번 분쇄한 전과가 더 많다능
솢홎(mtriobel12)2018-09-26 14:50
그리고 조선군은 후기로 가면 야전축성+지리적 이점+선형진 조합을 중시했다능
솢홎(mtriobel12)2018-09-26 14:51
진법 탓에 병종 나누기는 서양보다는 동양쪽이 병종 구성이 확실히 정해져 있었음. 조선도 그랬는데 무예도보통지 보면 다른 무기의 각기 다른 병종들이 일정 인원수로 각각 짜여져 진을 이루게 함.
사이러스(kkssss2002)2018-09-26 15:33
특히 중국이 그게 심했는데, 병종 구분 뿐만 아니라 병종별 병사수, 대열 위치까지 정해서 군대를 편제하기도 함. 중국은 군사수가 많으니까 고대부터 그런게 필수였던 듯
사이러스(kkssss2002)2018-09-26 15:34
저렇게 감격먹고 절강병법 수입하고도 빠르게 삼수병체제로 넘어가고 그 삼수병도 제대로된 편제 못갖춘거 보면 조선이 단병접전은 진짜 유별나게 안되긴 했나 봄. 사르후때는 방포 한번하고 밀려버리는데 아무리 명군의 보조를 전제 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제대로된 근접병과가 아예 없을수가 있냐 ㅋㅋ 조총은 좋다고 도입한것 까지는 좋고 임진왜란때 까지만 해도 백병전 어떻게 잘해봐야 된다 수없이 말하더만 결국 그때 이르러서는 조총만 남게 됨. 뎃포 보좌하던 야리 아시가루들은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사르후에선 탄금대에서의 일본군 입장으로 싸웠는데 임진왜란과는 정반대로 보조 병과 부재로 밀려버렸고 김화전투나 광교산 전투 같은 승전은 사실상 지형과 목책이 근접병과의 역할을 대신한거나 마찬가지였지
ㅇㅇㅇ(180.67)2018-09-26 16:09
사실상 결국은 수성전이나 진지위주로 전술을 짤수밖에 없는듯. 진짜 조선군에게 야전은 군붕이에게의 여자나 마찬가지인듯. 가까이 하고 싶은데 할수가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 방안에 틀어박힌 찐따가 됨
ㅇㅇㅇ(180.67)2018-09-26 16:10
아 그만때려 뼈아파 진쟈 그래서 무예제보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 등등 나왔자늠; 또 18C 되서 군적 보면 의외로 창병 비중 괜찮게 나오는 예도 있으니가 넘모 때리진 말자 ㅠㅠ
솢홎(mtriobel12)2018-09-26 16:17
진쟈 조나아프네 그 최강 스웨덴군도 찐따들이랑 싸우고 많이 깨지고 하다 십년동안 개혁원기옥 모아서 홈런쳤고, 일본도 100년 전국시대 끝나고 조선 비상식적인 규모로 쳐들어온 거자너; 조선도 전력 회복도 사르후ㅡ이괄의 난ㅡ정묘ㅡ병자 순으로 존나 꼬이고 청군이 존나 빠르게 수도따먹기 해서 조선의 전략적 선택지 존나 제한해서 진거지 결국 진쟈로 개혁할 수 있었던
솢홎(mtriobel12)2018-09-26 16:20
시간도 적고 기회도 적었다고 보자고 하는게 내 조선을 위한 변명임...뭐 17 18세기에도 관련된 고민 많았고 한성 지키자 남한산성 지키자 외각에서 막자 내부에서 한타 모아서 막자 등등 고민 여러모로 많이 했는데 결국 실전 없었던 거고. 근데 또 실전 없었던 것도 결국 주변 국제상황 보면 또 당연한거 않이냐,,,사실 싸워서 또 인명 몇만 날리는것보다 안싸우
솢홎(mtriobel12)2018-09-26 16:23
는게 낫지 않냐;
솢홎(mtriobel12)2018-09-26 16:23
사르후전투는 예시로 좀 안맞지 않냐? 애초에 명군이 근접단병전 맡기로하고 조선군이 원호하는식으로 짜여져서 그리 간건데 그 근접전 맡아줘야하는 명군이 먼저 광탈한 상태에서 숫자도 밀리는 조선군이 뭘 할수가 없었는데
익명(175.117)2018-09-26 16:51
조상님들이 다리에 힘풀렸던건 죄가 아닙니다...
익명(39.7)2018-09-26 17:26
사르후전투에 조선군 병종 비율이 그렇게 된건 명군의 요청떄문이라는건 위의 댓글에서도 뭐 언급했고 감안해야 될 문제임은 분명한데 사료들을 보면 살수와 같은 보조병과도 분명 따라갔다는게 보여지더라. 책중일록이나 속잡록에 살수와 관련된 언급이 나옴. 원정 출발 몇달전에 광해군일기에 자세한 병종 구성이 나오는데 포수 3500명에 사수 3500 그리고 살수 3000명의 구성임. 거기에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5000의 포수가 더 더해지게 됨.포수가 과반이 넘는 기형적인 편제이지만 살수가 따라가지 않은건 아니지. 어쨌거나 병종 비율 아쉬웠던건 사실이고 이런 병종 비율 구성의 막장화는 조선후기 내내 따라다니는거라 명군 요청에 의한 일시적인 편제라 하기도 좀 뭐하다고 본다.
익명(180.67)2018-09-26 20:21
충청도 속오군의 병적기록부를 보면 1600년대 속오군의 병종비율의 76퍼센트가 무려 조총병임. 조선군이 플린트락 머스킷들고 총검꼽고 다니는 전열보병으로 홀로 진화한것도 아닌데 이건 비정상적인 비율이 맞지. 이런식이면 전면전시 회전에서 절대 제대로 못싸운다고 본다. 성곽이나 진지 끼고 수세적으로 나가는것 밖에 답이 없음
근접전으로도 해볼만했네 근데 오로라는 누구여
북로남왜시절 게릴라성 왜구상대로나 하는 소규모 접전에나 유리할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근데 원앙진 특성상 구성원의 훈련도나 실전경험이 수반되지 않으면 난잡해질듯
논문준사람
ㅇㅇ 남병 자체는 숙련도 높았제
오로라 블로거 아니냐
ㅇㅇ
시기가 약간 늦은거 같긴해. 총을 다수 쏴버린다라는 무식한 대안?이 가능한 시대라서리.
띵군도 기본적으로 화력우위 가진 상태에서 쓴 거임 ㅇㅇ
시기가 늦은 시대는 아니지 서양도 다양한 근접병과 수반한 테르시오가 대세이던 시절이고 전열보병의 에고편인 선형전술이 테르시오 몰아낼려면 반백년은 더 있어야 하는 시절
그러니깐 조선도 너무 혁신적으로 가지말고 냉병기도 같이 쓰는게 더 좋았다라는 말이지? 흠...
그런데 조선은 활과 궁기병에서 바로 화승총 트리를 탄거 같아. 근접전 할 병사들을 못 구한게 아닐까? 정 변명하자라면야...
지속적으로 삼수병 체계에 의거해서 최소 총병의 1/3만이라도 살수 확충하려고 했는데 일부 사례 빼고는 잘 안된듯함. 그래서 야전축성에 크게 의거했는데
이건 16C 서구와 유사함.
의존*
조선의 야전축성이라....그것도 어메이징한데. 차라리 총검이 더 답이 있을거 같다.
ㄴㄴ 실제로 잘 써먹은 전투도 여럿 있음
화승총 부대의 공세적 운용 이야기니깐 결국 테르시오 나온거 아녀. 그 테르시오조차 야전은 힘들고.
소위 테르시오로 일컬어지는 방진이 16C에 창병과 총병을 어케 조합하면 전투력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거고, 얘네들도 창기병이 각잡고 털면 털린 예 많음. 그렇지만 야전에선
창기병 공격도 여러 번 분쇄한 전과가 더 많다능
그리고 조선군은 후기로 가면 야전축성+지리적 이점+선형진 조합을 중시했다능
진법 탓에 병종 나누기는 서양보다는 동양쪽이 병종 구성이 확실히 정해져 있었음. 조선도 그랬는데 무예도보통지 보면 다른 무기의 각기 다른 병종들이 일정 인원수로 각각 짜여져 진을 이루게 함.
특히 중국이 그게 심했는데, 병종 구분 뿐만 아니라 병종별 병사수, 대열 위치까지 정해서 군대를 편제하기도 함. 중국은 군사수가 많으니까 고대부터 그런게 필수였던 듯
저렇게 감격먹고 절강병법 수입하고도 빠르게 삼수병체제로 넘어가고 그 삼수병도 제대로된 편제 못갖춘거 보면 조선이 단병접전은 진짜 유별나게 안되긴 했나 봄. 사르후때는 방포 한번하고 밀려버리는데 아무리 명군의 보조를 전제 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제대로된 근접병과가 아예 없을수가 있냐 ㅋㅋ 조총은 좋다고 도입한것 까지는 좋고 임진왜란때 까지만 해도 백병전 어떻게 잘해봐야 된다 수없이 말하더만 결국 그때 이르러서는 조총만 남게 됨. 뎃포 보좌하던 야리 아시가루들은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사르후에선 탄금대에서의 일본군 입장으로 싸웠는데 임진왜란과는 정반대로 보조 병과 부재로 밀려버렸고 김화전투나 광교산 전투 같은 승전은 사실상 지형과 목책이 근접병과의 역할을 대신한거나 마찬가지였지
사실상 결국은 수성전이나 진지위주로 전술을 짤수밖에 없는듯. 진짜 조선군에게 야전은 군붕이에게의 여자나 마찬가지인듯. 가까이 하고 싶은데 할수가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 방안에 틀어박힌 찐따가 됨
아 그만때려 뼈아파 진쟈 그래서 무예제보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 등등 나왔자늠; 또 18C 되서 군적 보면 의외로 창병 비중 괜찮게 나오는 예도 있으니가 넘모 때리진 말자 ㅠㅠ
진쟈 조나아프네 그 최강 스웨덴군도 찐따들이랑 싸우고 많이 깨지고 하다 십년동안 개혁원기옥 모아서 홈런쳤고, 일본도 100년 전국시대 끝나고 조선 비상식적인 규모로 쳐들어온 거자너; 조선도 전력 회복도 사르후ㅡ이괄의 난ㅡ정묘ㅡ병자 순으로 존나 꼬이고 청군이 존나 빠르게 수도따먹기 해서 조선의 전략적 선택지 존나 제한해서 진거지 결국 진쟈로 개혁할 수 있었던
시간도 적고 기회도 적었다고 보자고 하는게 내 조선을 위한 변명임...뭐 17 18세기에도 관련된 고민 많았고 한성 지키자 남한산성 지키자 외각에서 막자 내부에서 한타 모아서 막자 등등 고민 여러모로 많이 했는데 결국 실전 없었던 거고. 근데 또 실전 없었던 것도 결국 주변 국제상황 보면 또 당연한거 않이냐,,,사실 싸워서 또 인명 몇만 날리는것보다 안싸우
는게 낫지 않냐;
사르후전투는 예시로 좀 안맞지 않냐? 애초에 명군이 근접단병전 맡기로하고 조선군이 원호하는식으로 짜여져서 그리 간건데 그 근접전 맡아줘야하는 명군이 먼저 광탈한 상태에서 숫자도 밀리는 조선군이 뭘 할수가 없었는데
조상님들이 다리에 힘풀렸던건 죄가 아닙니다...
사르후전투에 조선군 병종 비율이 그렇게 된건 명군의 요청떄문이라는건 위의 댓글에서도 뭐 언급했고 감안해야 될 문제임은 분명한데 사료들을 보면 살수와 같은 보조병과도 분명 따라갔다는게 보여지더라. 책중일록이나 속잡록에 살수와 관련된 언급이 나옴. 원정 출발 몇달전에 광해군일기에 자세한 병종 구성이 나오는데 포수 3500명에 사수 3500 그리고 살수 3000명의 구성임. 거기에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5000의 포수가 더 더해지게 됨.포수가 과반이 넘는 기형적인 편제이지만 살수가 따라가지 않은건 아니지. 어쨌거나 병종 비율 아쉬웠던건 사실이고 이런 병종 비율 구성의 막장화는 조선후기 내내 따라다니는거라 명군 요청에 의한 일시적인 편제라 하기도 좀 뭐하다고 본다.
충청도 속오군의 병적기록부를 보면 1600년대 속오군의 병종비율의 76퍼센트가 무려 조총병임. 조선군이 플린트락 머스킷들고 총검꼽고 다니는 전열보병으로 홀로 진화한것도 아닌데 이건 비정상적인 비율이 맞지. 이런식이면 전면전시 회전에서 절대 제대로 못싸운다고 본다. 성곽이나 진지 끼고 수세적으로 나가는것 밖에 답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