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할 수 있다’ 현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수 많은 지도자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우리의 지구주딱 트황상 각하도 똑같이 생각하셨다.




냉전이 무르익어 가는 1980년도 당시 미국은 ‘핵전쟁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억제 장치가 있기에 핵을 이용한 ‘선제’공격을 걱정이 아니라




‘핵전쟁’이 통제가 가능하도록 제어하는게 문제였다.





생각해보자 군갤도 처음엔 티키타카로 시작했다가



분탕이 몰려오고 논쟁이 격화 되면서 서로가 다중국적이 되지 않는가?



임마들은 어땠을까?



본 정보글은 기밀해제된 문서와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미국인들도 궁금하여 1983년도에 실시된 proud prophet이다



‘오만한 예언자’ 이름부터 야무지다 얼른 알아보자




훈련의 배경을 알아보자면

당시 블루팀과 레드팀의 지도자는 레이건과 안드로포프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며 비난하고



모두가 한번쯤 들어봤을 ‘스타워즈 계획’ 또한 진행 중 이었다.




소련 또한 거품을 물며 강경노선을 걷고 있었다.




본 훈련의 목적은


1. 전쟁 촉발 원인에 대해 익숙해지도록 한다

2. 비정규전이 전략적의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3. 책임 있는 전쟁 종결을 위한 기회를 모색한다. 등이다.


훈련은 매우 실제처럼 이뤄졌다



전 세계에 있는 지휘통제소와 실제로 연락하고



펜타곤으로 직접 이동해 통신하며, 국방부 산하 대학 비밀 시설에서 진행되었다.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 대표로 구성된 합동작업반이 핵심 보급품목 목록을 작성했고, 각 통합전투사령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품목과 무기 체계로 구성되었다.




보급품 소비량은 각 전문가들이 만든 모델을 통해 계산되었다.




군붕이들은 훈련 방법보다 과정이 중요할테니 넘어가겠다.





1983년 6월 13일 훈련이 시작되었다.




소련군은 폴란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내부에서 대규모 훈련을 시작한다.

그 훈련을 위한 기동은 점점 서독쪽으로 넘어간다.



갑자기 독일의 ‘본’에서 시민들이 원인 불명의 질병에 걸린다.



블루팀은 생각했다 ’어 설마 생화학 테,러?’



하지만 단지 의심만으로 개전을 할 수 없는 것 블루팀 지휘부는 추가 정보를 기다린다.





맞았다. 생물학 작용제가 살포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전쟁이 그들에게 찾아왔다

블루팀은 나토의 병력을 440마일 길이의 방어선에 배치했다.



곧 전투가 시작되었고 상황은 전개되었다.




독일군과 미군은 중앙 및 남부전선에서 잘 싸우고 있었지만



곧 소련군은 람슈타인 공군기지와 근처 나토 기지에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그 결과 CAS를 위한 출격이 줄어 들었고, 북부 전선에서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군이 후퇴를 시작했다.




전쟁 5일째 소련군이 함부르크 외곽까지 접근하고 벨기에-네덜란드 전선이 붕괴위기에 빠졌다.




결국 블루팀 지휘부는 결정했다.



지휘부는 전술핵무기의 제한적 최초 사용을 승인했다.



1킬로톤 이하의 전술핵 11발을 투하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게 15킬로톤)


그 중 일부는 중성자탄을 포함함.




전술핵의 사용은 소련군의 진격을 어렵게 만들었다




블루팀의 초기 목표는 확전을 ‘통제’하는 것이고 레드팀도 이에 동의했다.



전술 핵 사용이 시작되자 레드팀도 저위력 핵포병을 사용하였다.



초반에는 상대방 진지를 타격하는 정도로 시작했지만 점점 범위가 넓어져 증원병력의 후방까지도 타격을 시작했다.






전선은 점점 두꺼워졌다. 핵 공격이 점 형태가 아니라 넓은 띠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핵전쟁 첫날은 지나갔고 전선은 다음과 같았다


소련군의 진격은 멈췄다.



한 참가자는 말했다 “ 그 망할 무기가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전격적을 진지전으로 바꿨죠”




처음엔 희망적이었다. ‘이렇게 국지적 교전만 이뤄지는게 아닐까?’




하지만 점차 장거리 무기로 바뀌었다.



“통제가 불가능하다” 지휘부는 느꼈다.




점차 미사일과 전폭기를 사용하였고, 전술핵을 넘어 전구핵까지 사용하였다.(히로시마 떨어진거의 3배)




공격 대상은 다음과 같았다.

-항구 -공항 -보급기지 -수송로 -지휘부 -통신인프라


모두 정당한 목표가 되었다.








3일째 되던날 전선이다




함부르크와 로테르담의 항만시설은 증발했다.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공군기지도 소멸하였다.



블루팀 레드팀 모두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지고 있다고 느꼈다.



소련은 미국의 선을 몰랐고 단지 핵폭,발 보고만을 받았다.



참가자는 말했다 “우린 정보의 50%만 알았다”




오른쪽 위의 원은 발티스크 해군기지와 핵무장 공군기지를 공격한 것이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호 형태의 공격은 나토가 폴란드 비스와강의 교량을 파괴한 것이다.




나토는 이때 2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1. 교량이 너무 튼튼했다




2. 교량은 대다수 도시에 있었다.



교량 파괴를 위해선 시민의 희생이 필요했다.



나토측은 핫라인을 통해 교량 파괴가 목적이었다고 설명했고,





소련측 또한 항만시설의 공격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둘 다 서로를 믿지못했다.






모두가 시민의 피해를 줄이려 했지만 시민의 희생이 필요하다는걸 받아드리고 있었다.




전쟁 7일차의 지도이다.




군사시설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카운터 포스’ 


도시의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카운터밸류’ 이제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상황에 몰입했고 감정까지 격해졌다.




다음의 도시는 핵공격으로 소멸했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브뤼셀
독일과 폴란드의 주요도시


이외 다음 지역이 핵공격받았다.

-스위덴
-벨라루스
-발트3국
-일본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하와이와 알레스카



일주일만에 전 세계가 불바다가 되었다.



미국본토와 러시아 유럽 지역은 공격에서 제외되었지만


사망자는 2차세계대전의 숫자를 넘어섰다.





양쪽 다 항복은 선택지가 아니였다.




나토의 핵무기 사용은 교리를 따랐다. 무서운점은 아직까지 ‘전술’ 단계라는 것이다




1. 직접방어 2. 의도적 확전 단계를 넘어서 전면 핵 대응 단계로 넘어갔다


‘전면 핵 대응’은 “전체 핵 위협, 군사목표, 도시-산업 목표물에 대한 대규모 핵 공격“이다



한마디로 인류 멸망이다


이번 훈련은 더 이상 싸울 사람이 없을때까지 진행되었다.




의사소통은 실패했으며 핫라인은 무너졌다.





마지막 핫라인 메세지는 나토 수장이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보낸 것이다.





“너희는 여기서 불타게 될 것처럼, 지옥에서도 타오르기를 바란다”





훈련은 끝났다. 아니 인류의 역사가 끝났다.







분명 통제할 수 있을거라고 했는데 참가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핵 강경론자였던 사람들도 인식이 바뀌었다.



한번 시작하면 아무도 멈출 수 없다





참고하면 좋을 정보글




자료 찾아보면서 느낀건데 진짜 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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