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최초의 자원입대자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뉴질랜드 육군에 입대한 날 촬영된 파쿠랑가 출신의 잭 리브스, 1939년 9월 20일
러틀랜드 거리의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지원자는 제4 와이카토 기마소총대 파쿠랑가 부대(향토 방위군) 소속 18명이었다.
그들은 월요일 밤부터 훈련장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대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훈련장에서 조금 떨어진 헛간에서 잠시 쉬고 새벽 4시 30분 전에 각자의 대기줄로 돌아갔다.
등록 테이블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파쿠랑가 부대의 J.W. 리브스 중사였다
이날 단 하루 만에 북부 군사 지구의 젊은 남성 2,631명이 뉴질랜드 안팎에서 복무할 6,000명 규모의 특수 부대에 자원입대했다. 모병 첫날 밤 9시에 오클랜드 훈련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오클랜드 도심과 교외 지역에서 1,279명의 지원자가 등록했다.
존 윌리엄 리브스 중위(John William Reeves, 1907년 8월 15일생)는 그리스 전역, 크레타 섬 전투,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종군했다.
그는 1942년 12월 16일 리비아에서 전차전 도중 포탑 큐폴라로 날아온 포탄에 전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공식 전사 통보를 받기 전에 <뉴질랜드 헤럴드>의 긴 전사자 명단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리브스 중위는 1941년 12월 30일 바르디아 공격에서 용감한 행동을 보여 무공훈장(MC)을 받았다.
그는 실제 전차와 더미 전차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아군 전차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어 적군이 대규모 전차 부대에 맞서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또한 위험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고, 크루세이더 작전에서 100명이 넘는 포로를 잡았다. 전우들은 그를 지옥불 리브스(Hell Fire Reeves)라 부르곤 했다.
'기만 장교'가 제너럴 스튜어트 전차 더미 몇 개를 가지고 사령부에 도착했고, 공격 전날인 12월 30일, B중대와 C중대는 많은 수의 전차가 그 지역에 집결한 것처럼 꾸며 적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밤 동안 약 15개의 스튜어트 더미를 '차체 매복' 자세로 배치하고, 브렌건 캐리어 부대가 시동을 껐다 켜고 기어를 바꾸는 등 잦은 움직임을 통해 적절한 음향 효과를 연출했다.
31일 새벽, C 중대 스튜어트 전차 4대를 지휘하게 된 리브스 중위는 더미 사이를 오가며 적 방향으로 모든 화기를 발사하여 공세를 시작했다.
이 공격은 적의 포격을 효과적으로 유도하여 더미에 50~60발을 쏟아부었고, 대부분의 더미가 쓰러졌다. 더미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맥컬리 중위가 병력을 이끌고 와서 연막을 쳤는데, 공교롭게도 이 연막이 적의 소총 사격을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스 중위는 굴하지 않고 걸어서 전진하여 더미를 다시 세웠다. 이 작전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리브스 중위는 전투 중 침착한 대처로 무공훈장(Military Cross)을 수여받았다.
- 무공훈장 상신 내역
리브스 중위는 1942년까지 제2 뉴질랜드 원정군이 참전한 모든 작전에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불지옥칭호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