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18년 신년사에서 “전체 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바라던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틀어쥐었습니다”라며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2017년까지 전쟁이 임박한 듯한 극단적인 대결 국면에서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이 시기 대일정책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재팬패싱’이라는 용어로 포현되는 일본에 대한 전략적 무시였다. 김정은 정권은 선대의 대일 외교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이 지속적으로 경로의존적인 대북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러한 기조가 유지되는 한 더 이상 일본을 활용한 외교전략을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2002년의 ‘평양선언’ 이후 일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자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전제로 경제적 보상을 포함하는 국교정상화가 기본 틀이었으며, 국교정상화회담, 평양선언, 6자회담, 스톡홀름 합의 등 경험을 토대로 한 경로 의존적인 접근을 해왔다. 이를 기초로 취해진 아베 정부의 적대적 대북전략은 여러 측면에서 당시 진행되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괴리를 보였다. 또한 6자 회담에서 어렵게 도출된 2·13 합의 직후, 일본은 납치문제를 이유로 경유 제공을 거부하며 협상 성과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러한 행동은 일본 정부가 다자간 합의를 자국의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뒤집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북한에게 일본과의 협상결과에 대한 불신을 느끼게 했으며, 주변국들로 부터 비판을 받았다.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하락함에 따라 대안책이 부상한 것 역시 북한이 일본을 외면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일본이 대북 관계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여겨졌던 주된 이유는 경제력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까지 일본은 북한이 개방되었을 때 대규모 재정지원, 경제협력 그리고 민간투자를 위한 경제력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유일한 역내 국가였다. 북일 협상의 핵심은 북한의 안보위협과 일본의 경제보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중국과 한국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4차례 중국을 방문하며 전통적인 우호관계가 회복되었음을 과시했다. 중국 역시 다양한 경제적 및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북미 간의 지나친 밀착을 견제하고,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역시 과거와 달리 북한 개혁·개방에 대한 경제적 협력 의지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운영을 통해 대규모 경제 협력의 경험을 쌓았으며, 구조적인 어려움에 처한 한국경제 돌파구로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모색하였다. 이처럼 중국와 한국의 대안적 역할은 기존 일본이 갖고 있던 경제협력의 독점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의에서 비핵화 후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일 대화를 설득한 사실은 일본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함을 시사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우호적이고 능력 있는 중국와 한국을 배제하고 껄끄러운 북일 관계를 우선 추진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또한, 연이은 양자 간 합의 이행 실패 경험은 북한이 북일관계 개선을 원하더라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더 신중하게 대응하도록 만든 요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상황이 악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대외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관계는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일환으로 2018년 7월 베트남에서 일본 내각정보관 기타무라 시게루와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김성혜가 비밀회담을 실시했고 10월 몽골에서도 비밀회담이 이뤄졌다. 2018년 8월에는 2년만에 평양에서 북한일본 대학생들의 학생교류, 토론이 이뤄졌다. 북한은 비공식적 정부 접촉과, 민간 차원에서의 접촉을 통해 대화 소통창구를 열어둠으로써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이는 북일 관계의 고착화를 피하고, 한미 간의 평화적 분위기에 집중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무대응을 선택한 결과였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시정 연설을 통해 외교와 경제정책의 방향을 명확히 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며 “제재 또한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여 현재의 대외환경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대외적인 환경의 개선 가능성이 희박해진 가운데, ‘자립’과 ‘자력’에 기반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강조하였다.


 또한, “동력과 연료, 원료의 자급자족”을 강조하면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에 입각한 대외경제 협조와 기술 교류, 무역활동”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대외 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전통적인 자립경제 노선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하노이 노딜’로 인한 최고존엄의 훼손을 복구하고 내부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였다.


 북한은 2019년 3월부터 다시 일본에 대한 비난언론을 재개하였으며 8월 15일 광복절에 과거사 문제 언급을 시작으로 집중적으로 비난 성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유아교육, 보육지원제도인 일명 <아이키우기 지원법>에서 ‘재일조선어린이’들이 제외된 것과 관련하여 8월 19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 간 매일 비난성명을 내고 종국에는 외무성 성명을 통해 “조선학교 유치반 원아들에게 무상화를 적용하는 것은 일제식민지정책의 피해자들의 후손들인 재일조선인자녀들을 응당 보호하고 우대하여야 할 일본당국의 피할수 없는 도덕적의무이며 책임”이라고 밝히며 해당 문제가 “과거청산문제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힌다”라고 주장하였다. 일본에 대한 비난은 대부분 특정 시기에 ‘과거사’나 ‘납치문제’ 등을 중심으로 집중되었으며, 이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던 일이었다. 반면 일본정부 행정정책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비난 대상의 확장이라는 측면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는 측면에서 기존 비난들과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고 대내위기가 고조되는 이 시기에 이러한 점은 대내결속 활동의 예로 볼 수 있다.


(중략)



러우전쟁 이후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장기적 교착이 이어지고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함으로 상황은 더욱 변화했다. 불법적인 침략행위로 국제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제재에 대한 거부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며 북한과의 전략적 유대를 강화하려 했고, 이로 인해 유엔 차원의 대응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회의에서 북한은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없다”고 강조하며 ‘핵사용원칙’을 법적으로 규정했다. 이는 대외상황을 활용하여 핵 억지력 강화를 목표로 한 군사적 목적과 동시에, 제재와 코로나 봉쇄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군사 강국’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부각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북일관계 정상화에 관하여 북측 담당자인 송일호 대사는 성명에서 “오늘의 조일관계형세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번져지겠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일본정부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라고 언급했다. 이는 불안정한 대외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위기 발생 시 일본을 통해 위험부담을 완화하려는 속내가 보이는 일종의 헷징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최근 북한은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이유가 없으며 다카이치가 평양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담화도 발표했다


출처


북한의 대일정책 변화와 결정요인에 대한 연구(1955~2024),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안보정책전공 노진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