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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나치독일의 괴뢰국 크로아티아 독립국은 파르티잔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영토를 잃었음


크로아티아군은 오스트리아로 철수중이었는데 보스니아 오드자크마을에 있던 우스타샤군(크로아티아 독립국 우스타샤당의 당군)사령관 페타르 라이코바치치는 철수를 거부하고 방어선을 건설하며 최후의 항전을 시도함


오드자크 북쪽과 동쪽에는 큰강(사바강,보스나강)이 있어서 방어에 유리했고 좌초한 독일 수송선에서 물자를 얻어 탄약도 충분했지만 1대 11이라는 전력차는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었음


왜 이들이 살자에 가까운 항전을 했는진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 고향을 떠나고싶지 않았던걸로 추정됨


병력은 라이코바치치의 850명,부관 이반 칼루시치의 1000명,민병대 수백명과 크로아티아군 일부를 합쳐서 최대 4000명정도로 추산함


전투는 4월 19일부터 시작됬고 파르티잔 53사단이 포위를 시도했음 초기엔 화력우세덕분에 파르티잔이 우스타샤군을 블라슈카 말라로 밀어내고 고지대인 카다르 산을 점령하는데 성공함


파르티잔이 승기를 잡았지만 우스타샤군이 후퇴한 블라슈카 말라는 구릉이 없는 완전한 평지로 백병전에 능숙한 우스타샤에게 최적의 전장이었음


게릴라전에 익술했던 파르티잔은 엄폐물이 없고 도망치기 어려운 이곳에서 큰 피해를 입었음


4월 25일 파르티잔의 25사단,18사단,53사단 일부가 블라슈카 말라로 진격했는데 우스타샤군의 반격이 거세서 16여단(53사단) 사령관과 정치장교가 전사하는등 큰피해를 입음 4월 19일부터 28일까지 630명의 파르티잔이 전사했음


1945년 5월 4일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됬고 4개 여단이 우스타샤 벙커를 공격하면서 돌파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음


5월9일에는 포격을 가한뒤 돌격하는 1차대전 전술로 돌파를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큰피해만 입었음


5월15일 크로아티아군이 항복했지만 라이코바치치는 항복을 거부했고 5월 23일까지 소모전이 계속되었음...


23일과 24일 파르티잔은 공군 2개 비행대대를 투입했고 공습으로 우스타샤 지휘부가 부상당하자 교착상태가 깨졌음 이걸 기회로 25일 자정부터 파르티잔은 집중공격을 가했고 4시간동안 치열한 전투끝에 332명의 우스타샤군을 사살하고 블라슈카 말라를 점령함 우스타샤군은 최후의 한명까지 싸웠기때문에 포로가 없었다고함


이후 파르티잔이 사바강과 보스나강이 만나는 프루드 지역(오드자크 동쪽)에서 잔존 우스타샤군을 격파하고 지역을 점령하면서 1945년 5월 25일 2차대전 유럽전선의 마지막 전투가 공식적으로 끝남


블라슈카 말라가 함락되기 직전 파르티잔 14여단의 포위망을 뚫고 우스타샤군 170명이 탈출했는데 30명은 1947년까지 전투를 계속했음


사령관 라이코바치치도 함께 탈출한걸로 추정되는데 자 결했다는 설과 스페인으로 도망쳐 잘 살았다는 설이 있음


오드자크에 진입한 파르티잔들은 프루드병원에서 부상자와 간호사 84명, 항복한 우스타샤군 200명을 전부 처형했음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1971년까지 전투사실을 숨겼는데 아마 전쟁범죄 때문이었을지도


파르티잔 전사자는 1200~10000명으로 정확하지 않고 우스타샤군은 1500명정도 전사한걸로 추정됨(민병대,민간인 포함 2500명정도?)


파르티잔이 수적우세에도 전사자가 많았던 이유는 우스타샤군이 독일국방군보다 높은평가를 받을정도로 정예였고 파르티잔은 게릴라전에만 익숙해서 전면전엔 잘 대처하지 못했음 그리고 파르티잔은 전차와 전투기가 적어 벙커나 참호를 효과적으로 돌파할수 없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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