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 좌수사 원균(元均)은 전에 수령으로 있을 적에 고적(考績)이 거하(居下)였는데 겨우 반 년이 지난 오늘 좌수사에 초수(超授)하시니 출척 권징(黜陟勸懲)의 뜻이 없으므로 물정이 마땅치 않게 여깁니다. 체차를 명하시고 나이 젊고 무략(武略)이 있는 사람을 각별히 선택하여 보내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선조실록25권, 선조 24년 2월 4일 신미 1/1 기사 / 1591년 명 만력(萬曆) 19년
간원이 초수된 전라 좌수사 원균의 체차를 청하다)



도내(道內)에 감사(監司)가 없으니 모든 적변(賊變)을 당연히 신이 아뢰어야 합니다. 신이 도내에 있으면서 여러 성이 함락된 사유와 여러 장수들이 패전한 상황을 목격하였는데, 말하는 자는 모두 ‘군졸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적과 대진하자 무너져 흩어졌기 때문에 장수가 속수 무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이 본 바로는 좌수사(左水使) 박홍(朴泓)은 화살 한 개도 쏘지 않고 먼저 성을 버렸으며, 좌병사(左兵使) 이각(李珏)은 뒤이어 동래(東萊)로 도망하였으며, 우병사(右兵使) 조대곤(曺大坤)은 연로하고 겁이 많아 시종 물러나 움츠렸고, 우수사(右水使) 원균(元均)은 군영을 불태우고 바다로 나가 다만 배 한 척만을 보전하였습니다. 병사와 수사는 한 도(道)의 주장(主將)인데 하는 짓이 이와 같으니 그 휘하의 장졸(將卒)들이 어찌 도망하거나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양산(梁山)의 가장(假將) 밀양 부사(密陽府使) 박진(朴晉)도 창고와 병기(兵器)를 불태우고 도망하였습니다.

(선조실록27권, 선조 25년 6월 28일 병진 4/14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


저런 놈을 승진시킨 선조가 잘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