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CC
챗봇에게 물어보니
프란츠 칼 아하르트(Franz Karl Achard)가 1801년 세계 최초의 사탕무 설탕 공장을 세우며 정립한 방식입니다.착즙 및 가열: 사탕무를 갈거나 으깨서 즙을 짠 뒤, 커다란 솥에 넣고 직접 가열하여 끓였습니다.불순물 제거: 끓이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거품과 불순물을 일일이 손으로 걷어냈습니다.설탕 빵(Sugar Loaf) 제조: 농축된 시럽을 원뿔 모양의 틀에 붓고 며칠간 굳혀 '설탕 빵'이라 불리는 딱딱한 덩어리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 라는데 이 정도면 조청하고 비교해도 될 듯
익명(except2820)2026-05-10 16:18:00
답글
@ㅇㅇ
ㅇㅎ... 그러면 그때도 추출 가능했겠네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6:18:00
답글
@VLCC
조금 더 물어봤는데,
일제가 20세기 초에 사탕무를 시도했다고 함. 근데 기후적으로 재배적지인 함경도보다는 공업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평안도에 공장세우고 근처에서 재배했다가 장마맞고 뿌리썩음 + 싱거워서 당함량 낮음 + 대만산 설탕의 경쟁력에 못 버팀 그래서 실패했다고
하지만 조선시대라면 함경도쯤에서 생산하면 곡물을 소비하는 조청대신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을 거라고
익명(except2820)2026-05-10 16:27:00
답글
@ㅇㅇ
평안도 쪽에 재배 시도하다 망한 건 나도 들어봄. 뭐 그거랑은 별개로 당시 조선 상황 생각해보면 함경도 쪽에 재배해서 설탕 만드는 건 좋은 발상 같던데.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6:28:00
답글
@ㅇㅇ
다만 1801년 처음 산업화할 때 사탕무는 현재것대비해 개량이 덜 돼서 당함량이 무척 낮았다고 함
조선시대 수준에서 그걸 생물 100근을 투입하면 설탕덩어리 2~3근을 얻는 정도였겠지만 그래도 할 만은 했을 거라고 말해주네
익명(except2820)2026-05-10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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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ㄹㅇ ㅋㅋㅋㅋ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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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사실 제일 좋은 건 스테비아지만 이것도 감자랑 원산지가 동일함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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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CC
그렇네. 아 댓글지운 건 내가 잘못써서. 무산은 철광이라서.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노천 석탄이 없지는 않아서, 만약 생각만 했다면 그게 연결될 수 있었을지도
근데 이러면 진짜 산업혁명트리니까 이야기가 너무 커지네 ㅋㅋ
익명(except2820)2026-05-10 16:36:00
순무의 겨울이 가능하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됐을듯
익명(except2820)2026-05-10 15:59:00
답글
맨땅에 밀어넣는 거 보단 낫긴 했겠지만...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5:59:00
그냥 감자 고구마가 더 역사을 많이 바꿨을거 같음
익명(3ql2hvsobdx6)2026-05-10 16:02:00
답글
결국 저 지역 개척은 아메리카 대륙과의 접촉이 관건이네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6:04:00
답글
@VLCC
애초에 감자가 척박한 땅에 완벽한 작물이니까 ㅈ같은 땅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존버 가능해짐
익명(3ql2hvsobdx6)2026-05-10 16:06:00
한국 기후상 사탕무 못 자람 - dc App
URAnIuM(cym852456)2026-05-10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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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쪽은 자생지랑 비슷할텐데? 거기 빼면 나머진 시원찮겠지만. - dc App
VLCC(income5813)2026-05-10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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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CC
그리고 팔 데도 없음. 당시 명나라는 설탕이 시장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수입했으니 그냥 왕실에 진상하는 용도가 전부였을테니 - dc App
쌀농사랑 별개로 상업작물 키우면서 저거 한다는거지? 저런게 후기부터 가능하긴 했는데
뭐 저거 심어서 설탕 만들면 때돈 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유도하면 어떨까 이 생각이긴 함 - dc App
감자가 있어야지 - dc App
저때 감자는 신대륙에만 있었다 보니 - dc App
@VLCC 사탕무도 지구 반대편 돌아와야되는 건 매한가지임. 그리고 저때만 해도 개량안돼서 들여와봤자 설탕 못뽑을거 - dc App
@HK885 개량도 개량이지만 정제법이 문제지. 사탕무로 설탕 뽑을때 부산물 많이 나오는지라. - dc App
너무 어려워 농사는 유지가 핵심인데 그게 어려워 - dc App
그냥 어떨까 이 생각. 사실 주식 농사가 어려우면 거기서부터 답 나오지. - dc App
@VLCC 그래도 설탕이라는 건 소금만큼으로 귀중한 자원인건 자명된 사실이기도 해 그거 때문에 문명 자체가 없어질 정도니까 - dc App
@qkrtntjd ㄹㅇ... - dc App
그거 제대로된 가격에 사주실 양반들은 계시고?
그래도 판다면 사지 않을까나 싶긴 한데 - dc App
생각해보니 저것들 설탕추출 의미있게 하는건 산업화 이후에나 가능했네 ㅋㅋㅋㅋㅋㅋ 안될듯 ㅋㅋㅋ
사탕수수보다 정제 과정이 복잡한지라... - dc App
@VLCC 조청도 만들어먹었는데 뭐
@ㅇㅇ 사탕무에서 설탕 추출하는 게 조청보다 더 까다로움 - dc App
@VLCC 챗봇에게 물어보니 프란츠 칼 아하르트(Franz Karl Achard)가 1801년 세계 최초의 사탕무 설탕 공장을 세우며 정립한 방식입니다.착즙 및 가열: 사탕무를 갈거나 으깨서 즙을 짠 뒤, 커다란 솥에 넣고 직접 가열하여 끓였습니다.불순물 제거: 끓이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거품과 불순물을 일일이 손으로 걷어냈습니다.설탕 빵(Sugar Loaf) 제조: 농축된 시럽을 원뿔 모양의 틀에 붓고 며칠간 굳혀 '설탕 빵'이라 불리는 딱딱한 덩어리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 라는데 이 정도면 조청하고 비교해도 될 듯
@ㅇㅇ ㅇㅎ... 그러면 그때도 추출 가능했겠네 - dc App
@VLCC 조금 더 물어봤는데, 일제가 20세기 초에 사탕무를 시도했다고 함. 근데 기후적으로 재배적지인 함경도보다는 공업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평안도에 공장세우고 근처에서 재배했다가 장마맞고 뿌리썩음 + 싱거워서 당함량 낮음 + 대만산 설탕의 경쟁력에 못 버팀 그래서 실패했다고 하지만 조선시대라면 함경도쯤에서 생산하면 곡물을 소비하는 조청대신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을 거라고
@ㅇㅇ 평안도 쪽에 재배 시도하다 망한 건 나도 들어봄. 뭐 그거랑은 별개로 당시 조선 상황 생각해보면 함경도 쪽에 재배해서 설탕 만드는 건 좋은 발상 같던데. - dc App
@ㅇㅇ 다만 1801년 처음 산업화할 때 사탕무는 현재것대비해 개량이 덜 돼서 당함량이 무척 낮았다고 함 조선시대 수준에서 그걸 생물 100근을 투입하면 설탕덩어리 2~3근을 얻는 정도였겠지만 그래도 할 만은 했을 거라고 말해주네
@ㅇㅇ ㄹㅇ ㅋㅋㅋㅋ - dc App
@ㅇㅇ 사실 제일 좋은 건 스테비아지만 이것도 감자랑 원산지가 동일함 - dc App
@VLCC 그렇네. 아 댓글지운 건 내가 잘못써서. 무산은 철광이라서.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노천 석탄이 없지는 않아서, 만약 생각만 했다면 그게 연결될 수 있었을지도 근데 이러면 진짜 산업혁명트리니까 이야기가 너무 커지네 ㅋㅋ
순무의 겨울이 가능하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됐을듯
맨땅에 밀어넣는 거 보단 낫긴 했겠지만... - dc App
그냥 감자 고구마가 더 역사을 많이 바꿨을거 같음
결국 저 지역 개척은 아메리카 대륙과의 접촉이 관건이네 - dc App
@VLCC 애초에 감자가 척박한 땅에 완벽한 작물이니까 ㅈ같은 땅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존버 가능해짐
한국 기후상 사탕무 못 자람 - dc App
함경도 쪽은 자생지랑 비슷할텐데? 거기 빼면 나머진 시원찮겠지만. - dc App
@VLCC 그리고 팔 데도 없음. 당시 명나라는 설탕이 시장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수입했으니 그냥 왕실에 진상하는 용도가 전부였을테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