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어그로임.


모스코우 방공망 이야기는 없음. 대총 스탈린그라드 방공망이랑 비슷한 너낌적 너낌이었다 생각하면 될듯.




사실 소련 대공망에 대한 독일측의 평가는 일관되게 저 새끼들 대공망 아주 위협적임. 으로 정리할 수 있음. 특히 대공망과 직접 맞장을 떠야 했던 지상공격부대 StG나 SG의 평가는 일관되게 소련 방공망을 고평가하고 있음. 근데 이게 내용을 보다보면 뭔가 좀 앞뒤가 안맞거나 짜치는 부분이 있단 말임...?


일단 본론 먼저 쓰자면 낙지놈들이 패전국이다보니까 전후 분석을 명확하게 해 놓은 자료가 잘 없음. 그렇다고 소련이든 모스카우공국이든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상대비교와 분석을 하는 놈들도 아니고. 따라서 전반적으로 회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나마도 전쟁 끝나고 한참 지나서 나온 이야기들임. 앞뒤가 안맞는 부분은 여기에서 기인할 수 있음.


또한 1941년부터 4년 간의 독소전 기간 동안 소련군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음. 방공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뿐 아니라 전장 자체가 상당히 뒤바뀌었기 때문에 시기별 평가에 차이가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여기서는 1941년 6월 독소전 개전 시기, 1942년 스탈린그라드 시기, 1944년 대전 후기 시기 정도로 나눠서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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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독소전 개전


이게 문건들을 그대로 읽으면 내용이 굉장히 이상해지기 때문에 맥락 파악이 필요한 부분인데 1941년의 소련군 대공포대에 대한 독일측 평가는 일관되게 저것들 매우 강력함! 으로 정리됨.


- 한스 울리히 루델은 독일 공군의 주적이 소련 공군이 아닌 대공포였다. 고 회고함.

- 볼프강 다이리히의 경우 러시아 대공포가 매우 격렬하고 정확하며 위험한 사격을 퍼부었다. 고 회고함.

- 발터 슈바베디센의 경우 독일 지휘관들은 적의 대공화력의 효과에 대해 매우 놀랐다. 고 회고함.


다만 앞서 말했듯 맥락 파악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게 독일군 평가다보니 상대적인 인상이 있음. 반대로 말하면 소련 공군이 개줮밥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공포가 위협적이었다는 쪽이 좀더 정설에 가까움.


헤르만 호트는 적 항공세력은 작전 수행을 어쩌다 한번씩 방해했을 뿐 딱히 효과적인 저지를 하지는 못했음. 이라고 딱 잘라 언급할 정도였고, 이는 StG나 SG가 아닌 전투기 조종사나 폭격기 조종사들에게서도 일관되게 보이는 경향임. 그냥 바르바롯사 시기에는 소련 공군이 줄줄히 초토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항이란걸 하는 대공포가 존나 위협적이었던 것.


다만 위 발언자 중 볼프강 다이리히의 경우 KG51 지휘관이었는데, 얘네들은 슈투카가 저공 급폭을 Ju88로 하다가 호위기랑 시간 잘못 맞춰서 메서슈미트 도착할때까지 I-153한테 다구리맞고 항공기 잃었던 부대라 왜 저런 식으로 회고했는지 좀 의문이긴 함. 1941년 소련 공군이 거둔 아주 드문 성공 사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독일 입장에서도 특기할만한 케이스였을거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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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측의 대공망이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드문 케이스임. 예를 들어 파울-베르너 호첼은 동부전선에서 독일 공군이 맞닥트린 가장 격렬한 방공망으로 언급하기도 함. 이게 엄밀히 말하면 이런 케이스가 드물기 때문에 소련 대공망에 대한 평가가 가능한 케이스이기도 한데... 여튼.


호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주력 지상공격부대인 StG2의 지휘관이었음. 호젤의 평가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음.


- 소련군은 볼가강 연안과 점령한 시가지 전역에 대규모 대공망을 구축했음.

- 이 중 가장 위협적이었던 것은 20mm와 40mm 대공포.

- 종종 500-800m 고도에서 급강하하던 아군기를 맞출 정도.

- 중대공포 역시 4,000-5,000m 고도까지 꽤 정확한 명중률을 보임.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StG2의 주 손실 원인은 대공포 사격.

- 애초에 JG3이 스탈린그라드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음.

- 4개월간의 전투 끝에 StG2는 전투 주력을 상실함.


호첼의 회고를 정리하자면 스탈린그라드의 소련 점령지 전역에 중소구경 대공포가 깔려있었던 상황으로 지상공격부대에게 있어서는 주 저항세력이었고, 대단히 위협적인 적으로 회고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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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내용은 좀 고려해서 볼 필요가 있음. 일단 애초에 이 내용이 전반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 기간을 두루뭉실하게 잡고 있는데다, 애초에 언급 자체가 소련군의 대공망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이야기였다는 점임. 때문에 다소 편중되는 경향이 있음.


먼저 손실의 핵심이 대공포인 것은 맞지만 소련군 전투기에 의한 손실이 적지도 않았을 거임. 천왕성 작전 전에는 JG3 전체와 I./JG52까지 해서 강화된 1개 게슈바더가 피톰닉에 주둔하면서 소련공군의 5개 전투기사단+@를 상대로 대량격추를 해대며 미쳐 날뛰고 있었긴 하지만 사실 전투기전력만 비교해도 5배 규모의 소련 전투기세력을 맞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커버를 제공하는 상황은 아니었음. 이 시기의 StG2의 전투손실은 8월 16기, 9월 16기, 10월 17기 인데, 개별 손실 사유 파악은 어렵지만 주로 대공포에 의해 손실했고 일부 전투기에 의한 손실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듯.


스탈린그라드 포켓 형성 후에는 피톰닉이 대규모 작전운용을 지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JG3 예하에 슈타펠 몇개, 채 1개 그루페가 안되는 규모만이 작전을 할 수 있었고, 작전대상도 대규모 방공망이 깔려있던 스탈린그라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손실의 상당수가 적 항공세력에 의한 것(공중에서든 지상에서든)임. 이 시기의 손실기록은 11월 18기, 12월 6기로 이 시기 손실은 대부분 적 항공세력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는게 맞을 거임.


위의 언급은 대공망이 낙지 지상지원 전력에게 저 정도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고 이해하는 게 적절하지 싶음.



1944년 대전 후기


고정방공

독일 측에서 본 소련 방공 변화는 먼저 방공 중점화임. Akte 215을 보면 대전 후기 소련 방공망은 전투의 규모를 좌우하거나 이후 작전 전개에 있어 중요한 부대 또는 목표물에 중점적으로 배치된다고 평가하고 있음.


이는 야전군의 기동, 철도, 비행장을 가리지 않고 중심축에 대공포를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독일의 접근을 거부하고 정찰을 방해하고 공습 효과를 반감시키는 등 다층 방공체계를 구성함. 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는 아예 그냥 방공을 포기해버리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함.


이런 집중화된 표적을 타격하는 것은 꽤 어려운 문제여서, 독일공군 쪽에서는 표적 상공 체공시간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방향으로 폭격 교리를 발전시킴.


단 독일 입장에서는 양면적인 문제였는데 중요한 표적을 때리기 어렵기도 했지만 반대로 적의 공세 주력이나 지원에 핵심적인 표적을 대공망 배치로 판별해서 요기를 본격적으로 때리면 되겠네? 하고 정보를 파악하는 단서가 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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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방공

또한 큰 변화로 소련군의 야전방공의 개선이 있음. 대전 후기에 이르면 StG 및 그 이후 재편된 SG는 사실상 서부전선에서는 제대로 된 작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반면 동부에서는 여전히 날뛰고 있었고, 소련군 입장에서는 수시로 치고 들어와서 로켓이며 폭탄을 날려대는 슈투카나 포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임.

특히 전차/차량화제대를 중심으로 배치가 이루어짐. 소총병제대는... 뭐 누워서 대공사격해야지.

- 군급에는 아예 대공포 사단을 붙였는데, 편제상 중대공포연대 1개, 경대공포연대 3개로 구성되었고, 무장은 85mm 대공포 16문, 37mm 대공포 48문, 12.7mm DShk 64정으로 구성됨.

- 전차/차량화군단에는 경대공포연대 1개씩을 배치했고 각 연대는 37mm 대공포 16문, 12.7mm DShk 16정 정도로 구성되었음.

- 전차/차량화사단급에는 대공기관총중대가 붙었는데 이건 들쭉날쭉함. 대개 2개 중대 정도가 배속됐던듯 하고 중대당 DShk 9정씩이 들어갔었음.

- 전차/차량화여단급에도 대공기관총중대가 1개씩 붙는 게 일반적이었음.

이렇게 배치된 대공포는 뫄 제식화된 양상은 아니었지만 야전에서 열심히 차량화 해댔음. 37mm나 DShk를 차량에 올려서 차량화대공포로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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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예 대공포 제대로 배치된 전력만 방공망으로 쓴 것도 아니고, 소총, 기관총, 대전차총, 야포까지 가용한 모든 무기를 동원해서 대공사격에 투입해 사격을 퍼부었음. 어떤 식이든 저항은 지상공격기의 공습 효율을 떨어트릴 수 있었으니까.


이런 야전부대의 자체적 차량화 노력과 오만 화기의 대공사격 전환은 실제로 성과를 거두어서 독일군 평가로는 1943년까지만 해도 적 방공세력은 돌파제대보다 24시간쯤은 늦게 따라붙었는데 이제는 꽤 짧은 시간 안에 따라붙어서 엄호를 제공한다고 평가하고 있음.


다만 대구경포 운용은 여전히 병신같이 쓰고 있다고 깜.


힛치홀트의 전후 심문기록을 보면 독일공군은 이에 대항해서 적의 공세축을 타격할 때는 먼저 전투기가 가서 적 전투기 세력을 줘패고, 그 다음에는 방공세력을 먼저 타격해서 억누른 다음 그다음에 대전차 공격을 수행했다고 함.


여전히 못패는건 아니지만 실질적인 타격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효과도 기존에 비해 더 낮아졌음을 알수 있음.


위장/기만


특히 대전 후기 소련 방공망 중에서 독일측이 고평가했던 부분은 사실 화력이나 화망 구성 그 자체보다는 소련군이 낙지 공군을 상대로 수행한 위장과 기만임. 대공포도 나름대로 이래저래 숨겼지만 여기서 숨기는 것의 핵심은 표적이었음.


- 철도의 경우 적재물을 위장망이나 천막, 나뭇가지, 짚단같은걸로 덮고, 기관차는 증기 배출을 다른 방식으로 하거나 하역장을 숲 속에 설치하는 등 항공정찰을 피해야 했음.

- 비행장은 적의 공격이 들어온다 싶으면 재빨리 항공기는 다 도망쳐서 다른 공역에 가서 숨어있고 지상요원은 방공호에 짱박혀서 때릴 것을 없애는 식으로 대응했음.

- 온 사방에 가짜 비행장이나 가짜 포진지를 지어대서 어느 게 진자 타격 표적인지 찾기 어렵게 만들었음.

- 행군 중인 부대는 적의 정찰기에 발견되면 재빨리 주변 수목으로 숨어들어서 표적이 되는 것을 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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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범은 많은데 정작 사진자료가 하나도 없네.


상당한 효과를 봤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앞서 언급되는 부분으로도 추측이 가능함. 독일공군이 적의 대공화망 밀도를 가지고 적의 주요 부대나 시설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평가한 것은 아마 이런 기만과 위장 때문에 얼핏 보고 판독해서 표적을 고르기가 어려웠던 영향이 있었을 것임.


언급하는 뉘앙스로 보면 위장과 기만 측면에서는 독일군보다 낫다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음.


고공방공?


다만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고도가 올라가면 답이 없었던걸로 보이는데...


- 고든 골롭의 전후 포로심문 문서를 보면 적의 대공망이 개선됨에 따라 접근고도를 기존보다 훨씬 높게 잡았으나 그래도 고도 4,000m 이상으로 갈 필요는 없었음. 이라고 언급하고 있음.

- 호첼 역시 회고에서 보면 고도 4,000m쯤으로 접근하면 해군 관측장교들이 대공사격 밖 극장 좌석에라도 앉은 것마냥 전투를 구경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음.


정리해보자면 핵심 표적 주변에 집중된 대구경 대공포가 집중 화망을 구성하는 말 그대로 주요표적 상공을 제외하면 고도 4,000m정도만 올라가도 엔간해선 피격당할 일이 없었던 것으로 보임. DShk는 사실 고도 1,000m정도만 가도 그다지 위협이라고 생각할만한 화기는 아니고, 소련은 여타 참전국가마냥 전기화된 사격관제체계가 있던게 아니었던지라 고도가 좀만 올라가도 명중률이 급감했던 것으로 보임.


뫄... 지상공격기 조종사들과는 달리 전투기 조종사들이 소련 대공포에 대해 언급이 거의 없다시피 한건 이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음. 기껏해야 하르트만 정도인데 이 아조씨는 일반화하기에는 너무 특이케이스라.


그 외에는 소련의 경우 야간방공능력이 아예 없다고 평가하고 있어서 야간에는 그냥 맘대로 드가서 폭격이 가능했다고 하는데 이쪽은 뭐 따로 쓸게 없긴 함. 실제로 야간방공능력이 없는 레벨이어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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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어떻게든 두체에게 환상적인 딥스로트를 제공해주고 킹타우갓을 받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저렇게 여기저기 위장기지 만들고 숨어가면서 기동할 필요가 어딨음? 다 격추해버렸을 것인데...




자료출처

Russian Reactions to German Airpower in World War II

The Evaluation of the Military Qualities of the Red Army in 1941 1945 by German Memoirs and Analytic Materials

CONVERSATIONS WITH A STUKA PILOT. Nov 1978.

HITLER’S WAR MACHINE - Luftwaffe Combat Reports

Akte 215. Nachrichten des Dienstes Fremde Luftwaffen Ost des Führungsstabes der Luftwaffe über den Einsatz der Flakartillerie des sowjetischen Feldheeres.

Akte 222. Nachrichten des Dienstes Fremde Luftwaffen Ost des Führungsstabes der Luftwaffe bei OKL über die sowjetischen Truppenfliegerabwe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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