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신문을 읽고 있는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영국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도시는 폐허가 됐지만,

이를 복구해야할 영국 젊은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바다와 땅 그리고 하늘 속에 잠들었거나,

혹은 독일과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기약없는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 영국의 인구 정책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원래 영국은 상당히 높은 출산율을 보여왔던 나라고,

특히 중하류 층의 높은 출산율은 인구를 증가시키고 시장을 확장하는데 큰 힘이 됐으며,

이는 영국 내에서 노동자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인력을 보내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던 힘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중하류층은 사라져 버렸고, 영국 경제가 복구 및 성장 가도에 오르게 되자 영국 기업과 정부는 다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그 전까지 허울만 있었던 인구 정책이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만들어 실행하게 됩니다.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인도 제국이 해체되고 인도 제국 아래에 관리되고 있던 식민지들은 해방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케냐 등 아프리카 식민지들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카리브의 섬들이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었고,


자치령이었던 뉴질랜드와 호주, 뉴펀들랜드 또한 영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남아있었습니다.



영국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들 식민지와 자치령들은 영국을 위해 막대한 병력을 제공했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샘처럼 상당한 인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줘도 영국에 와서 일을 하고자 할게 분명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식민지와 속주, 자치령들에서 일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영제국의 시민인 이들에게 비자 면제 혜택과 대영제국 여권을 발급해줌으로써 이들이 영국으로 건너와 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시기 아프리카와 인도, 자메이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더 나은 삶의 꿈을 품고 영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공장과 식당, 건설현장, 농장에서부터 증권가, 병원, 로펌,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영국 사회의 곳곳에 스며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 회복을 시작한 영국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사회를 구축하고 국가를 경영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 영국 인구 중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도계 영국인, 카리브계 영국인, 아프리카계 영국인 사회는 이 시기에 형성됐습니다.


그리고 런던과 맨체스터, 에든버러 등 영국 웬만한 도시들에 있는 수많은 인도 요리점들과 아시아 요리점들도 이 시기 형성됐고요.




호주와 뉴질랜드 또한 영국, 남아프리카 등과의 자유로운 인구 이동으로 전후 인구 구조에 가해진 충격을 상당히 회복할 수 있었고,


영국-호주-뉴질랜드의 삼각 관계는, 비록 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 다시 한 번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면 이야기가 재미가 없겠죠.


1962년부터 1972년 사이의 기간을 거치며 영국의 인구 정책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