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나 복원품을 보면 배 난간이 툭 튀어나와서 노를 수직으로 꽂아쓰는 모습으로 많이 나옴.
그런데 2021년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판옥선 복원도에서는 배의 난간이 튀어나와있지 않고 배 옆구리에 꽂은걸 볼 수 있음.
복원도가 바뀐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튀어나온 배의 난간"은 전통용어로 "궁지"라고 부름.
그림 속 "멍에뺄목"에 세워진 "신방" 뒤에 빈 공간이 "궁지"임.
그런데 영~정조 시기의 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이 말년에 "우리도 더 나은 군선을 만들자"라는 제안서인 "병선론"이란 책을 씀.
병선론에서의 주장은 "배의 멍에(가목)을 뱃전 보다 3척(약 90cm) 정도를 더 길게 만들어서 노 저을 공간을 확보하면 지금보다 추진력이 좋아질거다"라는 내용임. 만약 이전부터 궁지(배의 난간)가 튀어나와있었다면 신경준이 이런 주장을 할 필요도 없을거임.
이를 주장한 연구사도 있고 신경준이 1781년에 세상을 떴음을 감안하면 적어도 정조 시기의 군선들은 궁지가 없다는걸 알 수 있음.
(각선도본 속 판옥선)
(이의병 수군조련도 속 판옥선)
(제목 미상의 수군조련도)
따라서 순조(1800~1834) 재위 때 이전의 배는 이렇게 궁지가 없는 형태였고, 임진왜란 때가 배경인데 궁지가 있는 판옥선/거북선은 고증오류란 얘기임
근데 한선의 바리에이션이라는게 엄청나게 다양하다는건 감안해야 함.
그 바리에이션을 감안한 글임. 그 변화 중 하나가 정조 이후의 궁지달린 판옥선
@사비타는중 시대별도 다르지만 지역별 심지어는 만드는 장인별로 다를텐데
@착쌍구쌍 신경준 주장대로 안만든 수영도 있었긴 하겠지
@착쌍구쌍 예시 좀 가져와줘 너무 추측성이잖아
@ㅇㅇ(220.116) 전라도 순무사(全羅道巡撫使) 이세화(李世華)가 나갔다. 그 응행 절목(應行節目)에 이르기를,"전선(戰船)의 체제는 크기·높이·두께를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하여 말하는 것이 여러가지이니..." 숙종(1675)때 군선들 규격이 다르다고 함
@ㅇㅇ(220.116) sillok.history.go.kr/id/ksa_10103009_005
순조이후는 궁지생김? - dc App
@국뽕조선뽕국군뽕정부뽕관존빌런 그러니까 판옥선 복원을 그렇게 하는거겠지?
궁지에 몰리다 할때 그 궁지랑 같은 한자 쓰는건가
와 그 궁지가 저기서 나온 말이었던거야?!
窮地는 궁할 궁(난처하다)이라서 아닐거 같음
@착쌍구쌍 아닐거 같긴 한데 같은 한자 쓴다면 이유는 알거같음 배 몸체 위에 있지 않고 들보랑 널빤지 믿고 올라가는 부분이라 올라갈때 살떨렸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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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정약용이 쓴 책보면 같은 놈이 만들어도 다른 배가 나온다고 한탄함
ㄹㅇ 병조에서 설계도 내려보내는 것도 아니라 현지에서 알아서 만들어 썼을거아냐
그런데 저 부분은 격군이 노를 젓는 방식하고 상관있으니까 공통이었을 것 같음
앉아서 노젓는데 배 안에서 노젓는거보다 배 밖에서 노젓는게 좋다고 생각한 이유가 뭘까
노꾼들의 공간확보임. 좁은데서 노질하는거보다. 90cm 넓어진게 낫다는거
@사비타는중 노는 수직보다 수평에 가까울 수록 더 효과적이지 않나? 수직에 가까운 노는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겠네.
@ㅇㅇ 일본배들은 서서 젓긴했는데 영조실록 등 기록에는 한국배는 앉아저었다고 함
그렇네. 그럼 확실히 앉아서 저었겠네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근데 왜 저랫을까
조선 초기 선박도 저래서 계속 변화없이 썼던걸거임
없었을때 배끼리 부딪히면 노 저을공간없다고 한건가 - dc App
ㅇㅇ 그거임
판옥선 난관부분이야기.
난관 아니고 난간
이런 맛도리글 그것도 선박 너무좋아
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