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 도착해 보니 적은 이미 하륙(下陸)하여 성을 포위하고 참호(塹壕)를 메우곤 하였습니다. 준이 바라보니 왜적 한 놈의 갑옷과 투구가 특이하므로 그것이 적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하여 즉시 활을 쏘니, 화살이 몸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개의하지 않고 매우 급히 준을 뒤쫓아 와서, 긴 창이 금방 준의 몸에 닿게 되었습니다. 마침 큰 소만한 바윗돌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준이 바윗돌을 넘어 달아났는데 적은 화살 맞은 상처 때문에 빨리 달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한 백정 【우리 나라에는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사냥과 유기(柳器)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았으니, 편호(編戶)의 백성과 다르다. 이를 이름하여 백정(白丁)이라고 하는데, 곧 전조의 양수척(揚水尺)이다.】 이 적을 쏘아 화살 두 개가 다 맞았는데도 땅에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소기파(蘇起坡)가 먼 곳에서 바라보고 준(浚)이 해를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분연히 뛰쳐 나와, 큰 소리로 외치며 말을 급히 달려 적진에 돌입하면서 연달아 화살 세개를 맞히니, 적이 비로소 쓰러졌습니다. 즉시 말 위에서 칼을 빼어 머리를 베어 가지고 돌아오니 적병이 어지럽게 동요하며 적대하려는 뜻이 없었습니다. 이권이 거느리는 군사가 이어 들어가서 어지럽게 쏘니, 적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자가 무수하였습니다.




삼포왜란 당시 기사인데
아지발도 재림한줄 ㅋㅋ
서양 판금갑 갈거없이 동양 갑옷도 제대로 갖춰입으면
저격이나 근접해 벌집만드는거 말곤 답이 없는거 같더라.
여진족과의 교전에서도 야인들이 갑옷으로 화살 튕겨내고 탄속 느린 철전은 보고 피하거나 아예 날아오는걸 잡고 그걸 역으로 쏴버리는 기록도 있고 그래서 탄속높은 편전 더 필요하다는 기록도 있는데


활이 날고기어도 결국 냉병기구나 느낀다. 조선이 북방에서 야인잡는데는 총통이 최고다 하던데 활과 총은 장단비교 하며 비교할 대상이 아닌듯. 동양도 서양처럼 한 14세기쯤엔 활이 퇴역수순 밟는 수준의 중무장이었으면 사수포수 조합이건 뭐건 전부 총으로 도배되었을듯.뭐 실제로도 조선후기엔 그 수준까지 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