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에 있던 적은 원래 약 6개 대대였으나, 우리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점차 증강되었다. 우리가 공격을 개시했을 때는 수비병력이 12개 대대와 6개 보병중대로 증강되어 있었다. 주둔병력은 주로 유럽 아프리카 부대로 구성된 정예부대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3개 포병대대, 1개 공병대대, 1개 전차 중대, 200대의 화물차량을 가진 1개 수송부대, 그리고 14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1개 비행대대가 주둔중이었다. 전체 주둔병력은 총 16,200명이었다.
이 병력들은 3개 구역으로 구분되어 상호 지원이 가능한 49개소의 방어거점으로 구성된 집단전술기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각 거점은 기동예비와 포병의 지원을 받고, 교통호와 유자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종합방어기지'의 모습을 갖췄다. 각 기지는 자체방어가 가능했고, 각 구역은 여러 개의 강력한 예하기지들로 구 성되었다. 각 기지는 전체적인 집단전술기지뿐만 아니라 각종 지하시설과 보조 교통호(유자철조망, 지뢰지대 등) 체계와 매우 강력한 포병 체계에 의해서 방어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진지는 므엉타임에 있었는데, 이곳이 지역의 중심인 중앙방어구역이었다. 적군의 약 2/3(8개 대대, 3개 대대는 기동예비)가 이곳에 집중되었다. 많은 방어기지들이 지휘소, 포병 진지, 군수 기지와 비행장을 방호했다. 동쪽에는 매우 강력한 요새가 구축되어 있었다. 특히 ALL, C1, D1, E1고지는 이 구역의 가장 중요한 방어체계였다. 적은 디엔비엔푸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겼다. 그들은 포병과 기갑부대가 평지를 통과해오는 우리의 어떤 접근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어떤 돌격도 확실히 격퇴할 수 있을 듯한 유자철조망과 교통호를 둘렀고, 기동예비가 항상 반격과 파쇄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적들은 우리의 포병진 지가 적 포병의 사거리 안쪽, 계곡을 향한 전사면에 배치되어 쉽게 탐지할 수 있 으므로, 차량화보병과 공군을 통해 포병진지를 쉽게 소멸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디엔비엔푸를 감제하는 고지-비행장 간의 거리는 12km였다)...(중략)
집단전술기지는 적이 인도차이나에서 새로이 고안한 방어형태였다. 집단전술기지는 지난 1951년에 화빙, 1952~1953년에 자르스 평원(라오스)과 나싼에서 휠 씬 단순하고 규모가 작은 형태로 등장했다. 이제 가장 발전하고 가장 강력한 집단전술기지에 직면하게 되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저 집단전술기지를 공격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격하지 말아야 하는가?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는 우리 군이 아직 미약했고, 적은 소규모 진지를 구축해 아군의 소규모 부대를 상대로 싸웠다. 그리고 우리 군대가 소규모 진지를 격파할 능력을 갖추자, 적은 진지체계를 발전시키고 보강하여 강력한 주둔부대와 화력을 갖춘 요새화된 거점과 대규모 반격부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훗날 우리 군이 확대되고 요새화된 거점이 유린될 위기에 처하자, 적은 철수를 택하거나 보다 많은 군사력을 투입해 진지를 보강하고 집단전술기지로 방어체계를 발전시켰다.
집단전술기지는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고안한 침략 무기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주의자들은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을 막기 위해서 '고 슴도치'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방어체계를 사용한 사례가 있다.
피아간의 전투력 균형이 상기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가능한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어떤 전술을 채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작전적, 혹은 전술적 해결책을 찾을 때마다 항상 적 부대 격멸과 성공이 확실할 때만 타격하라는 전략적 방향의 근본적인 원칙에서 출발했다.
집단전술기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오랜 기간 작전을 수행해 온 우리 군도 격파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적의 방어 중심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적 정규군 을 기지에 고착견제하는 동안 아군 정규군을 적이 노출된 지역에서 운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화빙 전역에서 이 전술을 사용했다. 적이 화빙에 병력을 집중시키 고 집단전술기지를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주공을 기지로 지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지향해 적 증원군을 격멸하고 다강, 북부 삼각주의 적 후방지역에 구축된 진지들을 파괴했다. 이후 적이 나싼 집단전술기지에 집중했을 때는 얼마간의 교전끝에 적 일부를 격멸했지만, 우리의 손실도 컸다. 따라서 우리는 집단전술기지에 대한 공격을 연기하기로 결정했었다. 베트남 의용군은 팟헷 라오스 해방군과 협조 하에 나싼 남서쪽의 북부 라오스에 공세를 가해 대단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전술은 유일한 방책이 아니었다.... (중략)
반면, 우리가 디엔비엔푸 집단전술기지를 파괴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적의 모든 강점을 파악하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약점도 예측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승리를 위해 모든 난관을 극복하려는 군과 인민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디엔비엔푸는 여타 집단전술기지에서 확인된 모든 종류의 거점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진지의 특별한 힘은 광활하고 언덕이 많은 지역 한 가운데 있는 고립된 진지라는 데 있었다. 이 특징은 진지에 대한 보급과 증원이 오직 항공수송으로만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일 이 보급선이 차단되거나 막혀버린다면 이 강력한 기지의 모든 취약점이 노출되고, 그곳에 주둔중인 군대는 점차 전투력과 주도권을 상실하며, 수세로 전환한 후보다 많은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안전한 철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적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출처는 이 책.
유익한 회고록이니 일독을 권함. 뭐 공산주의자였다보니 자기 사상 표출하는 부분은 각자 감안해서 걸러보고.
- dc official App
공산주의자인거랑은 별개로 능력은 상타치 아닌가 - dc App
능력은 진짜 현대전 몇손가락 안에 드는 양반이지 ㄹㅇ - dc App
ㅆㅅㅌㅊ긴하지 오죽했으면 미군이 남베트남에 저런 장군 없어서 졌다고 한탄했으니
@축구는메시콜라는펩시(211.185) 공산주의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린 게 괜한 게 아니지 - dc App
12사도로 유다가 복권이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능력 개 ㅅㅌㅊ인 양반
ㄹㅇ 명장이긴 함 - dc App
@HK885 ㄹㅇ
@HK885 베트남 펑더화이인가
보응우옌잡의 디엔비엔푸 전술기지 언급
괴링이 스탈린그라드에서 대차게 망한거 보고도 똑같이 따라하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책임 ㅋㅋ
아 공중보급? - dc App
@HK885 미국이랑 서방 연합이 베를린 봉쇄 뚫는거보고 할수있다 나라면! 한게 아닐까
2차대전 이후 명장 꼽으면 첫손가락에 꼽힐만한 위인이 아닐까? 가진 전력에 비해서 주요 열강국들 상대로 말도 안되는 전과를 거둔 거고, 전술도 디엔비엔푸같은 회전에서부터 게릴라전까지 두루 섭렵하고 전략적 상황에 맞게 정확한 전술을 채택해서 승리로 이끌었으니.
ㄹㅇ이긴 함 - dc App
내가 본문을 제대로 읽은게 맞다면 정면으로 때리면 답이 안나오니 정규군으로 포위한채 적이 증원-보급할 수 있는 유일한 루트인 항공수송을 차단하는 식으로 싸웠다는 이야기인가?
ㅇㅇ 거기다 또 내가 안가져온 부분이 있음. 연공연진이라고 천천히 각 기지 점령해나가면서 포위망 좁히는 것까지 - dc App
@HK885 정식으로 사관학교라도 나왔나? 되게 정석적인데 정말 대응하기도 마땅치 않은 전략을 썼네
@19890604 중국에서 사관학교 나온 걸로 암 - dc App
태평양 전쟁에서 섬을 재낀 미군처럼 재끼면 안되나? 요새의 치명적인 약점이 기동을 못한다는건데 재끼면 지들이 어쩔건데?
그걸 했다가 안되겠어서 점거해나간거 - dc App
저걸 케산에서 반복했다가 엘랑과는 차원이 다른 보급수준으로 인해 케산 돌파는 실패했었지 아이러니한 건, 이유는 다르지만 케산에서도 미군이 발뺐지. 벳놈들은 최소 지들 땅에선 전략적인 목표는 가져갈 능력이 충분했다는 증거 - dc App
오호 - dc App
이름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ㅋ
근데 한자로 하면 무원갑이라 개빡셈 - dc App
ㄷㄷㄷ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