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초반 임오군란 시기를 보면


조선군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 영국제 스나이더 엔필드 소총으로 무장한 신식군대 '별기군'을 80명 정도 만들었는데..


그마저도 임오군란으로 박살나고.. 이후 대원군이 재집권했을때는 군사체제도 별기군 창설 이전으로 되돌려놔서..


조선 중앙군은 다시 5군영 체제가 되고.. 화승총으로 무장한 구식군인들이 주류를 이루게 됨..


반면에 청나라는 양무운동의 성과로 대규모 신식군대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고..


임오군란 당시 조선 조정의 출병 요구를 받아 3천명의 회군을 신속하게 파병했는데..


그 결과는 당시 조선군의 경군이자 중심이라 할수 있는 임오군란 주도 세력을 별다른 저항도 없이 일망타진하고..


국왕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압송해버리고.. 청일전쟁 발발 시점까지 12년간 조선에 주둔하며 조선의 운명을 좌지우지함..


조선이 청나라의 양무운동처럼 1870년대부터 서구국가들의 무기체계만이라도 착실하게 도입했으면 어땟을지 많이 아쉬운 대목임..


조선군이 신식무기를 대규모로 도입하기 시작한건 1880년대 중반부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