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때 저화(종이돈) 유통한다고 강제로 쓰게 해놓고 결국 백성들한테 쌀 삥뜯는 용도로 쓰고 내팽개치고,
상가는 주작대로 육전에 설치하고 한양 양반들은 그걸로 됐다고 금난전권 부여하고,
민간 상업자본 수공업도 끝까지 조이고 관에서 수공업 독점하려다가 결국 손들고
이런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고 기술이 낙후되지가 않을 수 있을까?
임진왜란 때 돈 들고 밥 사먹으려던 명군이 그 돈 쓸 시장이 없어서 돈으로 밥을 못 사먹어서 약탈을 하던 상황은 솔직하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함.
500년간 아무 발전 없이 정체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성리학 근본주의에 빠져서 경제정책이 매우 탁상공론에 이념적이었고,
경제적으로 맞지 않는 정책 속에서 가난하고 낙후된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부정직한 주장이라고 생각함.
후쿠자와 유키치가 1866년에 서양사정 썼을 때 초판을 15만 찍었을 거다. 1866년이면 일본도 흑선 사건이 1854년이니 개항 10여년 후인데,
유길준 서유견문이, 지금 자료를 못 찾겠다만 5만은 고사하고 1만부를 못 찍었던 걸로 안다.
기본 체력과 인프라 자체가 19세기에는 이미 달랐던 거.
조선 왕조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한반도 생산력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
조선 왕조의 경제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러나 결국 그 빈곤 국가가 반세기만에 선진국이 된 데는 유교적 토대의 잠재력이 작용했단 것도 부정할수 없음
일본과 잠재력 자체가 달랐던 상황이고 한반도 국가가 만주 상실하고 몽골침입-무로마치 막부 개창즈음이면 이미 역전되고도 남았지.
중앙집권적 행정제가 시대적 발전상을 이루는건 맞지만 봉건제에 비해 아쉬운 점이 지방 개발이 다소 뒤쳐진다는게 크지. 일단 관료 자체가 영주가 아니다보니 자기 재산 불리듯 통치를 안하거든
난전은 오늘날 같은 자유로운 상공업 활동이 아님. 정부조달 입찰을 두고 경쟁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는 게 맞음. 본격적인 민간 상업경제는 애초에 발달할 수가 없었음
이것도 조선에만 적용하는 엄근진 잣대임 조선이 전왕조랑 다르게 경제정책을 편것도 아니고 특별히 상업억제한것도 아님 오히려 민간시장 출현은 조선시대에 처음 이루어짐 중농억상따위의 프레임은 당시 동아시아 국가는 다 하던거고
조선은 어떻게 500년갔나?가 우선이지 조선은 왜 500년만에 망했나?는 별로 이제와서 논쟁거리도 아니라고봄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미 거상 이름이 역사에 몇 번을 등장함. 에도 시대 일본 상업 계층은 지금까지도 연속성을 가진 사업체들이 있고. 중농억상의 프레임은 있어도 그걸 실제로 저렇게까지 실현시킨 것에 정책의 영향이 없다고 봐야 할까?
왕조가 길게 이어졌다는 것은, 자기 권역을 철저하게 통제했다는 이야기일 뿐임. 대한민국은 6공화국이지만 북한은 3대 승계했다고 북한이 더 나은 체제가 되지는 않음.
@outis 그게 환경차이지 중국도 춘추전국시대는 경쟁하면서 유럽열강들처럼 발전하다가 통일하고 안정화되니까 바로 분서갱유해버리고 유교의 국교화가 그쯤부터 이루어지잖아 일본은 중앙의 통제가 없던 각자도생 분권적 성향이 컸고 무엇보다도 16세기 대항해시대 항로에 일본은 지형적으로 인접했던 반면 조선은 빗겨가있었던 것도 있었고 거기다 중국은 해금정책하던 시절이고
@outis 왕조가 그렇게 탈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사례가 흔치않음 그걸 그저 통제잘했다고 퉁치기엔 실제 그렇게할수있는 나라가 얼마나되나고 묻는다면 손에 꼽음 3대도 간당간당한 북한 비비는건 언발에 오줌누기꼴이고
@ㅇㅇ 그리고 그렇다고해서 당시 한반도에 일본같은 봉건제 분권구조가 필요했냐고 묻는다면 그랬음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에 먹히는 속도가 빨라졌을거라 생각함 조선왕조가 한계는 있었을지라도 당시 한반도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 방식을 택했고 그게 근대라는 변화가 있기전까지 가장 주효했을뿐임
신라 시전은 국영상점이었음? - dc App
@ㅇㅇ(220.94) 동시전 서시전 말하는거면 그건 국가감독기관이지
@ㅇㅇ ㅇㅎ 근데 고려도 벽란도 같은곳에 민간상점 있지않았으려나 상업을 천시하진 않았잖아 - dc App
@ㅇㅇ(220.94) 벽란도같은 곳은 결국 국가통제아래에 상행위가 허가된것뿐임 그것도 당시 송나라 상인들이 활발하게 드나든 영향도 컸고 지방에서도 본격적인 시장이 출현한건 조선시대임
@ㅇㅇ(220.94) 사실 벽란도로 따지면 신라 울산항이 그것보다 규모도 더 컸음 근데 그것만으로 상업의 발전을 논하지않음
조선 후기는 임상옥 같은 상인이 등장하고 화폐유통도 활성화되었는데, 기득권층이 상업은 말업이라며 권력욕을 놓지 못한 게 문제. 북한 장마당 억제의 순화 버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