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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될뻔한 CVH-b


1950년대 후반 원자력 잠수함의 등장으로 잠수함의 잠항속도가 증가하자 같은시기에 등장한 대잠 헬기를 수상함의 대잠망 전,측면에 배치해서 탐지확률을 높이는것을 구상했었고 따라서 헬기만 전문적으로 굴리는 헬기항모를 계획함


대잠헬기 18대와 S-2 고정익 초계기 6대를 탑재하는 기준배수량 23000톤급 CVH-a와 대잠헬기 18대만 탑재하는 기준배수량 11000톤급 CVH-b이 고려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CVH-b형이 낙찰됨


해자대는 CVH 1척, DDG 1척, DDA 2척, DDK3척으로 구성된 대잠소탕군을 구성하려고 했음


당시 방위청에서는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1960년 건조를 결정했지만 당시 일본은 안보투쟁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워 2차 방위력 정비계획의 국방 회의 상정 자체가 지연되었고 동시에 대양으로 나가고 싶어하던 해자대와 전수방위를 고집하던 방위청(현 방위성)과의 마찰때문에 2차 방위력 정비계획 예산안에 CVH가 포함되지 않았으며 그후로 CVH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36대 자위함대 사령관을 지낸 코우타 요지 해장이 CVH 계획의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1. 100억엔에 달하는 높은 건조비용 - 당시 해자대 함정중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건조비용이 높았으며 따라서 해자대의 다른 건함계획에 차질을 줄 가능성이 있었음. 그 예로 RIM-24 타터를 굴리는 미사일 구축함 아마츠카제는 당시 그 절륜한 성능에 해자대가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98억엔이라는 높은 건조비 때문에 자매함의 건조는 이루어 지지 않았음


2. 대잠헬기를 이용한 대잠작전의 미숙함 - 1960년 당시에는 시킹의 초창기 모델조차 실용화 되지 않은 상태였고 소노부이를 이용한 대잠전 노하우도 축적되지 않아 대잠헬기를 이용한 대잠전 시스템이 잘 돌아갈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음.


아무튼 CVH-b 계획은 폐기되어 다시는 예산안에 등장하지 않았고 항공모함형 헬기모함의 등장은 하루나급-시라네급을 거쳐 휴우가급에 가서야 실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