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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수요일 쾌청

(이토) 대사는 아직도 長谷川(하세가와 요시미치) 대장의 저택에 있었다. 오늘 오전 9시 30분 남대문 발 열차로 林(하야시 곤스케) 공사, 都筑 서기관장, 室田 귀족원 의원, 鍋島 서기관, 山口 부관 등과 함께 수원 방면으로 사냥하러 출발하였다. 하늘은 맑고 기온은 따뜻하여 일행은 매우 만족스레 많은 사냥감을 갖고 오후 6시 30분 안양 발 열차로 경성으로 돌아왔다.

열차 발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어둠을 깨고 喝聲이 울림과 동시에 3치 크기의 화강암 파편을 대사를 목표로 던진 자가 있었다. 돌은 차창의 유리를 5치 4부 정도로 깨고 대사 등 쪽의 판을 맞고 열차 좌석에 떨어져 대사는 겨우 돌에 맞는 것을 면했지만 깨진 유리파편이 그 신변에 떨어졌기 때문에 왼쪽 볼에 3곳, 왼쪽 눈 위에 1곳, 왼쪽 귀 아래쪽에 1곳 모두 합쳐 5곳의 상처를 입어 다소의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경미한 부상이었다고 한다.

수행원의 응급처치가 적절하였으므로 바로 지혈되었다.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호위 헌병인 조장 1명과 헌병 2명이 즉각 하차하여 범인의 수사와 체포에 종사하고 대사는 그 후 이상 없이 오후 7시 30분 경성에 도착하여 곧바로 長谷川 대장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在京의 수행원 일동은 이미 대장으로부터 만찬의 초청에 응하여 오늘 저녁 그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돌아 온 수행원과 함께 본국의 여러 관헌에게 전보를 보내어 대사의 조난을 보고하였다. 대사의 부상에 관하여 小山 의사가 橋本 박사에게 보고한 바는 다음과 같다.

‘대사의 부상은 要部를 피하여 깊이가 피하에 도달치 않았고 가벼운 腫脹이 있다. 기분 변화가 없다.’




일각에선 기록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엄연히 남아있음.

출처 주한일본공사관의 외교문서 "(3) 伊藤 大使 韓國往復日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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