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시기에 역적의 건물이 중원에 있을수 없다며 다 부셔버렸다고 이거 뻥이 아니라 현지 주민들이 삼국지 관련 보러온 사람에게 위나라 유적은 명나라 시기에 파괴되었다며 정 삼국지 분위기 느끼고 싶으면 청두 ( 촉한의 수도 성도)로 가라고 추천함 ㄷㄷㄷㄷㄷ
명나라 자체가 촉한정통론을 주류로 밀던 국가라서 조조를 아주 싫어해서 관련 유적들이나 건물들을 깨긋하게 박살내버린 반면 무후사+유비혜릉 같은 촉한 유적들은 심혈을 기울여 보존했다고 주원장의 아들이 무후사에 있는 유비혜릉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명사에 있을 정도
문화재 파괴는 짱평ㅋㅋ
미디어의 힘
주로 무언가의 정통을 반강제적으로 밀던 이들의 배경은 정통성 있다고 애써 강조해야만 하니까 였던거 같음
명이 위나라 유적 부순건 시대차이때문에 왕조교체등으로 인한 기록말소 그런거랑 궤가 좀 다르긴함
전대 왕조 지우기는 중국의 오랜 역사 항우의 함양 파괴 약탈처럼
촉평 - dc App
망탁조의란 표현은 이미 당나라 시기에도 발견되는거 보면 최소한 민중들 사이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조조가 역적취급이긴 했던 듯.
조조가 현대에 재평가 받은거 마오쩌둥이 좋아하서 자너 - dc App
이건 뭔 개소리야
인터넷에는 진짜 별의별 개소리들이 다 돌아다니는구나
위나라 유적이 파괴된 건 첫째 허창이 수도가 된건 얼마 안됨 업이 진짜 수도였기 때문에 애초에 건물이 남은게 얼마 없음 둘째 수나라가 통일하면서 위나라 건물을 모두 뜯어갔음 정치적인 경쟁자가 생길 위험을 제거할 목적이었음
진도 아니고 수?
@ㅇㅇ(220.120) ㅇㅇ 양견이 수나라 건국할 때 가장 큰 라이벌의 핵심 근거지였음 580년의 일임
셋째 허창이 위치한 곳은 하남성. 애초에 낙양이나 개봉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엔 남아있는 유적이 거의 없음 왜냐면 황하에서 홍수가 날 때마다 전부 다 쓸려갔기 때문. 1385년 명나라 초기에 황하가 크게 범람하였는데 이 때 하남성이 크게 파괴되었음 허창이나 업성에 남은 건물이 적은 이유가 이 때문임
툭하면 뭔 촉한정통론이니 뭐니 옛날 사람들이 주의나 이념에 매몰되어서 비이성적으로 행동한 것처럼 해석하는 썰이 존나 돌아다니는데 그건 현대 문화대혁명 같은 특수한 사례인 거지 고대 사람들이 그렇게 이념 때문에 헛 힘 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음
분서갱유 문화혁명 .. 이런건 그냥 중국 전통이었군ㅎ
현실적으로 보면 저건 겸사겸사 대는 핑계고 실제로는 재건축 하고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촉나라 오나라와 달리 위나라는 명나라때도 수도인 지역이었잖아
조조는 서기 200년경이고 명나라는 빨리잡아도 1400년경인데 1200년동안 조조가 세운 목조건축들이 그대로 유지됐을거라 생각하는거임?
사당이나 무덤같은거 - dc App
아 나도 그유튭 가끔 보는데 문혁때 파괴된것도 좀 있지만 의외로 명나라때 관리들이 파괴한게 많더라; - dc App
애초에 조조 이미지가 좋아진건 마오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