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보고 만들어봄.
전열보병 시대의 결합 전술.
기마병·방진·기마포의 통합 운용 .
1. 머리말
전열보벵(line infantry) 시대라 카는 기, 머시매로 17시기 후반에 부싯돌식 활강총(flintlock musket) 카는 기 쫙 풀리뿌던 그 무렵부텀, 1860년대에 후장식 강선총이 마 천지로 들오뿔 때꺼정의 그 어간을 카는 기라.
보벵, 기벵, 포벵, 이 시 가지 벵종이 서로 모지래는 데를 살째기 메꽈주는 식으로 굴리지는 짜임새, 그라이까네 「통합 운용(combined arms)」이라 카는 기 윽수로 야물딱지게 영글어뿐 시절이었데이.
그 중에서도 젤로 짜인 듯이 정혱적이고 젤로 모진 조합이 머꼬 하모, 「기마벵이 먼첨 들이닥치가 우협을 디리뿌가 보벵들로 하여금 방진(square, carré)을 짜라꼬 떠밀어뿌고, 그 담에 기마포(horse artillery, artillerie à cheval)를 들이대가, 빼곡허이 뭉치뿐 방진에다 대고 야물게 쏴재끼는」 그 차례 아이가.
2. 전술적 전제 — 방진의 짜임새와 함정
전열보벵의 표준 대헝은 시 줄 횡대(line of three ranks)였다. 1791년 8월 초하룻날 자 프랑스 보벵 규정에 이기 똑디 박힜뿌고, 영국이고 프로이센이고 러시아 보벵 규정도 큰 틀에서는 이거하고 매한가지로 갔다 아이가.
이 대헝이 정면 화력은 윽수로 쎘는데, 옆구레하고 디가 마 휑하이 무방비라가, 기벵이 쾅 박는 충격에는 본질적으로 영 시들했다. 이거를 우째 메꿀라꼬 나온 표준 대응이 바로 방진이다.
방진은 보통 대대(bataillon) 단위로 니 면 중공헝(hollow square)이나 충실헝으로 짜졌다. 바깥쪽 두서너 줄은 무릎쏴, 엎디리쏴, 서서쏴 이래 층층이 자세를 잡고 총검은 바깥으로 쭉 내미는 식이라.
후련 야물딱지게 받은 방진은 어지간한 기벵 돌격 가지고는 도저히 뚫을 도리가 없었데이. 사실상 못 뚫는다꼬 봐도 되겠다.
그란데 방진이라 카는 기 본질적으로 약점을 끼고 있었다. 단위 면적에 들어가는 사람 부피가 횡대보다 두세 배는 더 빼곡했고, 움직이고 기동하는 기 꽉 막힌 거맨치로 째매이 모해됐고, 바깥 니 면에 화력을 갈라가 뿌리야 되이까네 한쪽으로 모디는 기 안 됐다 아이가.
거다가 그래 뭉치뿌가 있으이 포벵 입장에서는 이만한 표적이 없는 기라. 여덟 푼짜리, 열두 푼짜리 활강포에서 쏘는 산탄(canister)·포도탄(grape)은 방진 한 면을 비끄렁이로 마 싹 씰어뿔 수 있었고, 구탄(round shot) 한 발이라도 종심을 뚫고 들오모 한 줄에 다섯서 열 멩까지 댕강 절단해뿐다.
3. 결합 전술의 짜임새
결합 전술이라 카는 기는 우에서 말한 그 어긋남을 일부러 이용해 묵는다. 차례는 보통 네 단(段)으로 정리된다.
첫째 단 — 기벵이 먼첨 나서는 단.
갱기벵(輕騎兵, light cavalry)이나 흉갑기벵(흉기벵, cuirassier) 중에 한 부대가 보벵 전열에다 대고 우협할 만한 거리, 그라이까네 보통 사백 메다(meter)서 육백 메다 안쪽꺼정 살째기 다가선다. 이 단에서 진짜로 쾅 박는 충격 돌격은 안 하고 묶어두는 경우가 많다. 좌우 옆구레 쪽으로 쫙 펼치가 「옆구레로 돌아갈란다」 카는 우협을 눈에 띄게 보이주는 거다.
둘째 단 — 방진을 짤 수밖에 없게 떠미는 단.
우협받는 보벵 대대장 입장에서는 우짤 도리가 없다. 부대를 방진으로 안 바까모 안 된다. 와 카모, 횡대로 가만 있어뿌모 옆구레로 들오는 돌격에 마 산산조각 날 우럼이 윽수로 크기 땜시라. 그란데 횡대서 방진으로 바까는 데 후련 야물딱지게 받은 부대조차도 예순서 아흔 초는 걸린다. 이거 자체가 부대 움직임을 딱 멈차뿌고, 앞으로 쭉 치고 들어가던 진격을 끊어묵아뿐다.
시째 단 — 기마포가 바짝 다가서는 단.
기마포벵은 도수포벵(foot artillery)하고는 다르데이. 와 다르노 하모, 포반원 다아 말을 타고 다니이까네 보벵이나 기벵 전열 속도에 마차가 같이 움직일 수가 있는 거다. 우협 단 끝나자마자, 아이모 기벵 옆구레 쪽서 기마포 중대(보통 여섯 문)가 쫙 펼치가 이백 메다서 사백 메다 거리서 산탄이고 포도탄이고 마 쏴재끼는 거다.
니째 단 — 와해시키뿌고 돌격하는 단.
방진의 한 면이나 두 면이 마 무너지뿌모, 그때꺼정 기다리고 있던 기벵이 쾅 박아 들가가 보벵을 싹 씰어뿐다. 그란데 이 차례가 거꿀로 되뿌모, 그라이까네 기벵이 먼첨 돌격해뿌모 멀쩡한 방진은 깨뿔 도리가 없다 카는 기, 19시기 전반의 거진 모든 전술 책에서 똑같이 내린 결론이라 카더라.
이 차례를 이론적으로 정식으로 박아 놓은 사람이 누고 하모, 조미니하고 클라우제비츠가 거진 같은 시절에 따로따로 해뿐 거다. 조미니는 Précis de l'art de la guerre(1838)에서 「기벵 하나만 가지고는 야물딱지게 짜인 보벵 전열을 절대로 몬 깬다, 포벵이 미리 사전 준비 사격(concours de l'artillerie)을 안 해주모 안 된다」 카는 거를 똑디 못 박아 놨다. 클라우제비츠도 매한가지라. Vom Kriege의 「시 벵종의 상호 관계(Verhältnis der drei Waffen)」 카는 장서 이거하고 똑같은 결합 원칙을 전술의 본바탕이라꼬 딱 박아뿟다 아이가.
4. 벵종별 전제 조건
4.1 기마포벵의 발전
기마포벵의 표준 짜임이 우디서부텀 시작됐노 하모, 7년전쟁 때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이세 그 양반 밑서 시작됐다(1759년에 여섯 푼짜리 마인포 중대가 정식으로 짜진 거 아이가).
그란데 결합 전술의 연장으로서 기마포가 야물딱지게 다 영근 거는 그때가 아이고 프랑스 헥명·제정기에 가서 그래 됐다. 1765년에 발족한 그리보발(Gribeauval) 짜임이 머꼬 하모, 야포를 갈벱게 맹글고 또 규격을 똑같이 마치는, 그래 갈벵화·표준화하는 거를 야물게 이뤄낸 짜임이다. 이거를 바탕으로 니 푼, 여덟 푼, 열두 푼 기마포가 1790년대 후반부텀 결정적인 화력 역할을 떡 맡아가 해낸 거다.
4.2 기벵의 갈라짐
같은 시절에 기벵이 두 갈래로 쫙 갈라졌다.
하나는 정찰하고 쫓아가고 견제하고, 그런 거 맡아 하는 갱기벵, 그라이까네 샤쇠르 아 슈발, 후사르, 우흘란 카는 부대들이고. 또 하나는 충격을 도맡아 하가 쾅 박아뿌는 중기벵, 흉갑기벵하고, 용기벵 중에 일부도 여어 들어간다 카더라.
결합 전술서 「먼첨 우협하는」 단은 갱기벵이 맡고, 「방진 와해시키뿌고 돌격하는」 단은 중기벵이 맡는 기, 그기 일이 야물게 굴러가는 호꽈적인 방식이었다.
5. 사례 따져 보기
5.1 프리트란트 싸움(1807) — 세나르몽의 기마포 굴리기
이 전술이 젤로 야물딱지게 들어맞은 본보기로 자주 들먹이지는 기가 머꼬 하모, 1807년 6월 14일 프리트란트 싸움서 알렉상드르-앙투안 드 세나르몽(Alexandre-Antoine Hureau de Sénarmont) 대령이 부린 제일군단 예비포벵의 굴리기다.
세나르몽이 우째 했노 하모, 포 다 합치가 서른 문(그 중에 마이가 기마포라)을 한 종대로 묶어가, 러시아 보벵 좌익을 향해가 첨에는 육백 메다서 시작해가, 그 담에는 삼백 메다, 종내 일백이십 메다꺼정 거리를 야금야금 좁히 들가매 산탄을 마 쏴재낀 거다.
그때 러시아 옆구레 쪽 보벵의 일부는 우째 돼 있었노 하모, 프랑스 기벵이 옆구레로 돌아갈란다 카는 우협에 대응해가 일부는 방진으로, 또 일부는 종대로 바깠뿐 짬짬이었다. 이기 머슨 말이고 하모, 세나르몽 포대의 산탄이 디지게 호꽈적일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까닭이 바로 이거였다.
에프스타인(Epstein)이라 카는 학자는 이 싸움을 두고 「포벵이 따로 떨어져가, 그것도 결정적인 화력으로 굴리진 게 첨으로 입증된 본보기」라꼬 매겼고, 킬리(Kiley)는 세나르몽이 올린 보고서를 뜯어보매 한 스물다섯 분 동안 사격에 사상자가 사천 멩에 가깝게 났을 끼라꼬 어림잡아 놨다 카더라.
그란데 이 수효라 카는 기, 쏜 쪽서 올린 보고에 바탕한 기라가 윗선으로 봐야 되는 기 맞다. 그래도 한 가지는 똑디 확인된다. 한 포벵대의 화력 하나만 가지고도 야전 판세 전체가 갈라지뿔 수 있다 카는 거, 그거 하나는 학실하다 아이가.
5.2 워털루 싸움(1815) — 결합이 어설벘던 본보기
이 전술이 거꿀로 우째 어그러지노 카는 역사적 반증으로 자주 들먹이지는 기가, 1815년 6월 18일 워털루서 미셸 네(Michel Ney) 원수가 거하게 벌인 큰 기벵 돌격이다.
오후 니 시쯤 시작된 한 구천 멩 규모의 기벵 돌격이 영국이고 연합군이고 합치가 짜놓은 보벵 방진 아홉 개에 정면으로 쾅 박았다. 그란데 머가 글렀노 하모, 핵심적으로 기마포를 데꼬 안 갔다는 거다. 그 점서 마 두고두고 까이는 거다.
영국 왕립 기마포벵 G포대 대장이었던 카발리에 머서(Cavalié Mercer)가 써놓은 일지를 함 보모, 그때 영국 포벵이 우째 했노 하모, 「프랑스 기벵이 가차이 들오모 포반원들이 쏠 거 다 쏘고 옆에 있는 방진 안으로 살째기 피해 들갔다가, 기벵이 물러나뿌모 다시 나와가 포대를 굴리는」, 그 차례를 계속 되풀이했다는 기 똑디 적힜다.
이기 머슨 말이고 하모, 프랑스 쪽 기마포가 그 새에 영국 방진을 쏠 만한 자리에 펼치는 기 안 됐다는 거다. 그래가 후세 전술사 하는 학자들이 한결같이 머라 카노 하모, 네가 보벵하고 포벵하고 시간차로 야물딱지게 엮어가 굴리는 그 결합을 안 하고, 기벵 하나만 가지고 무대뽀로 박아뿐 거, 그기 결정적인 잘몬이었다 카더라.
6. 한정과 흠집
첫째, 시간 마치는 기 영 까다롭다. 기벵이 우협하고, 보벵이 방진으로 바까고, 기마포가 펼치가 쏘는 그 차례가 분 단위로 딱딱 마차 떨어지야 된다. 그란데 무선 통신이라 카는 기 없던 시절에 이거를 우째 마치노? 그기 결국 지위관 개인 안목하고, 밑에 거느린 부대 후련 정도하고, 멩령 전달하러 댕기는 기수(aide-de-camp)가 죽노 사노 거기에 다 매달리 있었다.
둘째, 땅바닥이 발목 잡는다. 기마포가 퍼떡 펼칠라 하모 펭평한 사격 자리가 있어줘야 되는데, 진흑탕이고 비탈이고 수풀이고 그런 데서는 호꽈가 팍 떨어지뿐다. 워털루 전장서는 6월 17일하고 18일에 비가 디기 마이 와뿌가 땅이 차진 진흑(점토질)으로 질척질척했는데, 이기 프랑스 포벵이 자리 옮기는 데 발목을 단단히 잡아삤다 아이가.
시째, 상대편 포벵이 가만 안 있고 받아쏜다. 기마포가 이백 메다서 삼백 메다 거리에 딱 멈차는 그 순간, 적 포벵한테는 이만한 표적이 또 없다. 그래가 결합 전술이라 카는 기는 결국 적 포벵을 미리 눌라뿌든가, 아이모 적어도 흩어뿌는 거를 전제로 깔고 들간다. 이 전제가 안 마치지뿌모 우째 되노? 결합 전술이고 머고 마 포끼리 맞붙어 치고받는 포벵 결투(artillery duel)로 변해뿌가, 결정성이라 카는 거를 잃어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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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르시카 사투리 수준 - dc App
저거는 브르타뉴 놈들이나 고라대는(말하는) 사투리고! 코르시카 사름들이라사 우리 제주도 말을 써사주게
베르티에는 신이야..!
크아악 크아아악 베르티에님
재밌어서 개추줌
겁나게 구수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요새 Guibert가 쓴 전술 에세인지를 읽는데 곧 이런 내용이 나오겠지??
글겠지? - dc App
코르시카 수준 진짜 ㅋㅋㅋ
으아아 죄송해요 표준어로 다시 올려주세요 못알아먹겠어요
아오 ㅋㅋㅋㅋ 이리 사투리 써버리면 쓰울 촌놈들은 해석이 힘들다 안카나
베르티에 점마도 전쟁후반가니까 나폴레옹처럼 맛탱이가서 예스맨 됬다고 하더라...
ㅆㅂ 못 읽겠다
나팔륜아, 교양있는 서울말을 써다오...
나폴레옹 그 사름이 무사 대구 말을 씀디게? 제주도 말로 해야 맞주게! 외쿡 사름들도 호꼼 알아먹게 제주 말로 마 싹 바꼬부러
마! 이거 서울 차별이야!
아니 시발 베르티에도 데려와야지
https://m.dcinside.com/board/war/490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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