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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전, A씨의 약력》
無名氏傳, A氏略歷

1931년, 춘원 이광수가 잡지 "동광"에 연재함. 다만 완결은 못 짓고 중간에 연재 중단돼서 뒷 일은 알 수가 없음

챗 지피티로 현대어로 다듬었지만 원문도 읽으려면 읽을 수 있을 거임. 출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근현대잡지자료임.

아직 이 A씨가 누구인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음. 당시 일본육사파가 몇 안 되기 때문에 특정은 쉬울것 같기도 함.





무명씨전
無名氏傳

춘원 이광수


무명씨(無名氏). 그에게도 이름과 성이 없을 리는 없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의 이름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일 뿐이다.

이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의 고향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조선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면 그만이다.

그 무명씨인 그를 편의상 A라고 부르자.

A가 열일곱 살 되던 해에 그의 고향을 뛰쳐나온 데에는 까닭이 있다. 아버지가 억울한 죄에 몰려 어떤 감사(監司)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수천 석 타작하던 재산의 대부분을 빼앗긴 것을 알게 되자 분을 참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때에는 나라 정치가 어지러워서, 당시 정권을 잡았던 M씨 일족이 감사니 목사니 하며 전국의 좋은 벼슬을 다 차지하고, 양민을 잡아들여 재물을 빼앗는 것을 업으로 삼을 때였다. 서울의 큼직큼직한 집의 기와장 하나라도 이렇게 빼앗아온 양민의 피가 아닌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A는 일본으로 뛰어가 얼마 동안 준비를 한 뒤 도쿄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때 육군사관학교에는 A 외에도 B, C, D, E, F의 무명씨들이 십여 명이나 유학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나이가 비슷하고, 또 일본에 온 동기도 대동소이하였다. 지금은 비록 천하를 말하고 국가를 논하지만, 애초에 집을 떠난 동기는 대개 권문세가에게 원통한 일을 당한 집안의 자제로서, 한번 통쾌하게 원수를 갚고 세상을 뒤흔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B는 양반에게 선산을 빼앗겼고, C는 그 아버지가 양반에게 수모를 당하였고, D는 그 아버지가 양반에게 재산을 빼앗겼고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는 동안 일본 군인의 의기와 애국심을 보고는, 처음 품었던 조그마한 동기를 버리고 천하와 국가를 경륜하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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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이 터졌다. 때는 마침 A씨 등이 사관학교를 마치고 견습사관으로 일본 군대에 있을 때였다. 하루는 A가 있는 연대의 연대장이 A를 불러 말하였다.

“A군. 오늘 아침 우리 연대는 출정 명령을 받아 이십사 시간 안으로 만주를 향해 떠나게 되었소. 그대는 외국 사람이니 출정할 의무도 없는즉 행동은 자유롭게 하시오.”

A는 서슴지 않고 말하였다.

“연대장님, 될 수만 있다면 나를 전지(戰地)로 데리고 가 주십시오. 일본 군인이 어떻게 충용하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지를 보고 배우고 싶습니다. 소관도 종군한 이상에는 귀국 군인과 꼭 같은 충성으로 귀국을 도우려 합니다. 이번 기회에 귀국에서 우리를 교육해주신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

연대장은 곧 그 용기를 칭찬하고 A의 출정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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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 일본군을 따라 만주에 출정한 이는 A 외에도 사오 인이 있었다. 그들은 A와 꼭 같은 정신으로 군대에 복무하였다. A와 B와 C 같은 이는 제일선에서 한 부대를 지휘한 일조차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이 개선할 때에 A씨 등도 함께 개선하여 훈장까지 받았다. 그리고 A, B, C 등 몇 사람은 서울에 머물며 한국주찰 일본군사령부(韓國駐剳 日本軍司令部)에 근무하였다.

그들이 공부를 한 목적이 일본 군대에서 사관 노릇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때에는 한국에는 그들을 써줄 만한 군대가 없었다.

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 군대에서 장관이니 영관이니 귀관이니 하는 자들은 대개 양반집 도련님들이어서, “기착”, “우로 나라니”도 모르는 화초 장교들이었다.

군대란 치안을 유지하거나 외적을 막으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의 구경거리나 되고 양반집 일 없는 자식들의 밥벌이판이 될 뿐이었다. 그중에 한두 명 군인다운 군인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이들은 도리어 천대를 받아 마음을 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일본에 다녀온 “생도”들은 모두 김옥균·박영효 일파의 혁명사상을 가진 자들로 여겨져서, 요로의 대신들과 양반들이 밉게 보고 의심할 때였다. 이런 때였으니 좋은 무관 공부를 하고 왔건만, 본래 시골 상놈인 A, B, C 등은 써주는 데가 없어서 일본 군대에서 견습사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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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본국으로 돌아와 보니 나라 일은 엉망이었다. 바깥 세력은 조수처럼 밀려들어오는데, 정부에서 권력을 잡은 양반들은 서로 물고 뜯으며 세력 다툼만 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A는 B, C, D, E, F 등의 동지들과 더불어 가끔 청루주사(靑樓酒肆)에 모여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통곡하며 가슴에 찬 불평을 잊으려 하였다.

이때였다.

A는 몸에 육혈포를 지니고 ×보국의 집을 찾아갔다.

×보국은 세도가 집안이요, 또 조선의 일부(一府)로서 그야말로 부귀가 쌍전한 사람이었다.

뜻밖에 찾아온 청년 사관을 ×보국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 군인이라면 당시 한국의 대신들도 쩔쩔맸기 때문이다.

A는 ×보국을 보고 공손히 절하여 어른에 대한 예를 표하였다.

×보국은 이 까닭 모를 청년 사관을 붙들어 일으켰다. ×의 늙은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하였다.

“대감, 저를 아시겠습니까?”

하고 청년 사관 A는 입을 열었다.

“내가 영감을 알 수가 있소?”

하고 ×보국은 A를 유심히 보았다.

이윽고 ×보국의 낯빛은 흙빛이 되었다. 왜냐하면 ×보국은 A의 얼굴에서, 자기가 혹독한 고문을 다하여 반생반사로 만들어 놓았던 A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국의 낯빛이 흙빛이 되는 것을 보고 A는 말하였다.

“이제 대감은 내가 누구인지 알겠소? 대감이 혹독한 고문을 다하여 폐인이 되게 만들었던 내 아버지는 그 뒤 일 년도 못 되어 세상을 버렸소. 그가 마지막으로 유언한 말이 원수를 갚아달라는 것이오. 내가 이렇게 십여 년간 공부를 한 것도 내 아버지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오. 오늘 내가 대감을 만났으니, 대감의 운수도 오늘이 끝인 줄 아시오.”

하고 군복 바지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육혈포를 꺼내 ×보국의 가슴에 겨누었다.

뜻밖의 일을 당한 ×보국은 예불하는 모양으로 두 손바닥을 마주 붙이고 A의 날카로운 눈을 우러러보며 말하였다.

“영감! 영감! 잠깐만 참으시오. 내가 선대감께서 가져온 재산을 이식까지 붙여 조용히 영감께 드릴 터이니, 이 늙은것의 목숨만 살려주시오.”

하고 오동잎 지는 말 설한풍에 벌거벗고 밖에 선 사람처럼 덜덜 떨었다.

“과연 전에 잘못한 것을 뉘우치시오?”

하고 A는 ×을 노려보았다.

“뉘우친 지는 오래외다.”

“그러면 대감이 뉘우친 표를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겠소?”

“하다뿐이오? 목숨만 살려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소이다.”

A는 육혈포를 다시 집어넣고 말하였다.

“내가 이제 대감에게서 돈을 받아간다면 그것은 내 사욕을 위한 것이니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오. 대감의 재산은 모두 백성의 재산이니, 이것을 풀어 첫째로 학교를 세워 교육을 일으키고, 둘째로 가난한 지사들을 도와 마음 놓고 나라 일을 하게 하고, 셋째로 총준자제(聰俊子弟)를 뽑아 외국에 유학시켜 나라 일을 할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겠소?”

“그저 영감이 하라는 대로 하겠소이다. 학교는 내일이라도 곧 세울 것이오. 가난한 지사라면 내가 아는 이가 없으니 영감이 소개해주시면 얼마든지 생활을 돌보아 드릴 것이오. 또 유학생도 영감이 천거하는 사람이면 보내겠소이다.”

“우리 단둘이 말한 것은 후일에 증거할 사람이 없으니, 대감이 친필로 지금 그 말씀을 종이에 쓰시고, 대감이 서명 날인하시고 또 대감 자제의 서명 날인도 하시오.”

×보국은 지필묵을 끌어당겨 다음과 같이 썼다.

> 光武 ○○년 ○월 ○일 A氏 처위고음사(爲考音事)
一. 학교 설립의 일
一. 지사들의 생활비 보조의 일
一. 총준한 자제를 외국에 유학 보내는 일
XOO 印
子名 印



A는 이 다짐을 받아 넣고 말하였다.

“대감이 이 다짐대로만 하시면 반드시 전국 백성의 숭앙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고 이 다짐을 어기시면 A의 칼과 육혈포가 언제든지 대감의 머리 위에 있는 줄 아시오.”

하고 ×보국의 집에서 나왔다.

그 뒤 A는 한 번도 ×보국의 집에 간 일이 없었으나, ×보국은 A에게 약속한 대로 우선 학교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이것은 몇 해 뒤의 일이지만, A가 벼슬을 버리고 나와 정당운동을 할 때에 많은 궁한 지사들이 A의 손에서 먹고살았는데, 그 돈 가운데 얼마는 ×보국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 있었고, 또 누구 누구 하는 유학생도 ×보국의 이름으로 일본과 미국과 유럽으로 파견되었다.

그 뒤 십 년간 파란 많은 A의 생활에서 제일 큰 삽화가 이 ×보국 사건이다.

(다음 호에 계속)



나는 A씨의 이야기를 있는 대로 다 쓸 수는 없다. 첫째는 지면 관계와 시간 관계 때문이거니와, 둘째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사정을 가진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띄엄띄엄 큼직큼직한 사실만을, 지면과 검열이 허하는 대로 쓰는 줄 알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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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그 뒤 일본군사령부를 나와 한국의 육군부위(陸軍副尉)로 임명되어 무관학교 교관, 시위대 중대장 등을 거쳐 불과 이 년 만에 육군참령(陸軍參領), 곧 대대장에 올랐다. 그때는 한국의 모든 것이 초창시대였으므로 벼슬자리에 올라가는 데에도 일정한 법도가 없었다.

“우로 나라니”, “앞으로 가”도 부를 줄 모르는 민보국이니 조판서니 하는 사람의 자제들이 열일곱, 열여덟 살에 벌써 육군참위니 부위니 하다가, 일 년 이태 사이에 참령이니 부령이니 원수부 부관이니 하는 판이었으므로, A씨 같은 이가 이태 안에 부위에서 참령으로 올라갔다고 놀랄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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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잠깐 말한 바와 같이, 도쿄 육군사관학교 동기생 또는 한두 해 전후 출신으로서 동지라 할 만한 사람이 A씨 외에도 B씨, C씨, D씨, E씨, F씨 하는 식으로 육칠 인은 되었다. 이 육칠 인은 당시 한국 육군의 신지식으로서, 벼슬자리는 낮을망정 위로 황제에서부터 정부 대신들에게까지 일종의 존경과 두려움을 받았다.

그들은 효충회(効忠會)라는 일종의 동창회적 성질을 띤 구락부를 조직하고, 때때로 장소를 정해 모여서는 크게는 동양 대세와 군국대사를 의논하고, 작게는 각 개인의 출처진퇴를 상의하였다.

그들 가운데 가장 선배인 B씨는 육군정령으로 무관학교 교장이었다. 이 사람은 키가 작고 몸이 뚱뚱하고 눈이 작아 겁이 없기로는 A씨와 같고, 살이 희고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호협하기로는 A씨보다 더하였다. 그는 술을 한량없이 마셨고, 술값이 없으면 군복을 벗어 전당포에 잡혔다. 한 번은 기생집에서 자고 화대가 없어서 군복을 벗어주고, 내복에 군도를 차고 외투를 입은 채 사령을 하였다는 말까지 있는 사람이다. 군대 해산을 의논하는 어떤 회석에서 바지를 벗고 똥을 갈긴 것도 그였고, 말을 타고 영문으로 들어오다가 군대 해산의 조서가 내렸다는 말을 듣고 칼을 뽑아 말의 목을 베고 끌어안은 채 하늘을 우러러 통곡한 이도 그였다.

그 다음은 C씨. C씨는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다. 그는 일개 병정으로부터 올라온 무관이다. C씨는 한문 책 한 권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지식이지만, 체격이 장대하고 눈초리가 관우 모양으로 위로 치켜 올라가고 목소리가 크고, 수염을 나는 대로 길러 얼굴의 삼분의 일을 가리고, 찢어진 옷을 입고 병정이 신는 구두를 신고, 병정과 함께 자고 먹으며, 참으로 병정의 부스럼을 입으로 빨아주고, 나라를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하며,

“내야 무식한데 무엇을 아오? 그저 동지네가 옳다고 하면 무슨 일이라도 하지오.”

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어느 진위대장이었다.

D씨는 시위 제2대대장으로, 맵시가 호초알 같은 이였다. 몸이 단단하고 근엄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밤낮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 군대 교련이었다.

그 다음은 E씨. 키가 크고 말이 적고, 한 번 약속한 것이면 말없이 지키는 사람.

그 다음은 F씨. 그는 어느 시골 부자의 아들이다. 키가 크고 뚱뚱하고 점잖기가 양반 같으면서도 영리하기가 백 리를 내다보는 듯하여 “전라도 아전”이라는 별명을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배일파(그때에는 이러한 지사파가 있었다. A씨 등은 다 이 파에 속하였다)에 가면 배일파의 동지가 되고, 친일파(그때에는 이런 파도 있었다. 요로의 대신들과 양반 계급의 대부분이 이 파에 속하였다)에 가면 친일파와 의기상투하였다. 그리고 군사령부에 가면 또 군사령관 이하 일본 사관들에게도 환심을 샀다.

무겁기는 천근 같고 둔하기는 물소 같을 듯하면서도, 그의 맑은 눈의 정기값을 하느라고 이렇게 영리하게 처신한 까닭에 동지 간에도 추호의 불신임을 받지 않았다.

이 가운데서 A씨로 말하면 키가 작고 몸이 단단하며 눈이 가늘고 빛나고, 목소리는 평소에는 부드러우나 한 번 노하면 쇳소리 같고, 비록 연설은 못하나 좌담에 능하고, 무슨 일을 계획하면 물 샐 틈이 없고, 한 번 한다고 작정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이 없고, 비록 몸은 작으나 만근의 무게가 있어 요로의 대신들과 합석하더라도 조금도 눌리는 바가 없고, 나라를 사랑함에 몸과 집을 돌보지 않고, 동지를 사귀는 데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친구를 한 번 믿으면 다시 의심함이 없고, 만일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는 당시 세계 사조이던 마키아벨리식 사상에 물들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라 할까.

이러한 연소기예한 신진 무관들은 전부 시골 사람이었다. 그중 오직 하나 시위 제2대대장 D씨만이 서울 태생이었으나, 서울에서도 중인이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와 갑오경장 이후 조선의 계급이 타파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요, 나라의 모든 기관은 여전히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하는 양반들의 손에 잡혀 있었다. 오직 한국의 마지막 내각은 (삭제).

그때 군대에도 참장이니 부장이니 하는 자들이 민 무슨 호, 민영 무엇이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령·부령 중에서도 실권 있는 자리는 아무 판서의 손자요 아무 대신의 사위였다.

영국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조약국장, “우로 나라니”도 모르는 육군부장, 교육이라는 글자도 모르는 학부의 무슨 국장 무슨 과장, 재정학·경제학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탁지부의 무슨 국장·무슨 과장, 이러한 벼슬들은 나라 일을 하기 위해 있다기보다는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는 양반님네의 밥벌이와 호강자리로 있는 것 같았다.

메이지 30년대의 한창 불길처럼 일어나는 새 일본을 보고 온 이 젊은 사관들의 눈에 이러한 한국의 정계가 어떻게 비쳤을까 하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삭제)

“하고 K진위대장 C씨는 울퉁불퉁한 상놈스러운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쳐서 안주 그릇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그 썩어빠진 대가리놈들(대신들이란 말)부터 모조리 집구덩이에 담가다가 똥물에 튀겨야 해!”

하고 제일 선배인 B씨도 급진적 혁명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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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D, E, F 등 젊은 사관들의 목표가 어디에 있었던가는 이상에서 그들의 성격을 말한 데서 대강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군대를 자기네 세력 안에 넣고, 곧 자기네 손에 쥐고, 이것을 오늘날의 유명무실한 군대에서 참으로 힘 있는 군대로 만들어, 썩은 양반 계급에 대하여 혁명을 일으켜 한국의 국권을 신진 평민 계급의 손에 넣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서지 아니하였으나, 이 계획은 결코 전혀 실현성 없는 공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A, B, C… 이들은 원수부, 시위대, 진위대, 무관학교 같은 군부의 각 기관에 들어갔고, 또 그들의 실력은 나날이 조금씩이라도 실권을 장중에 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젊은 무관들의 단체인 효충회는 일종의 비밀결사였다. 가장 선배인 B씨가 회장격이고, 가장 모략과 신망이 있는 A가 참모격이고, 근엄한 시위대장 D씨와 열렬한 진위대장 C씨는 평시에는 동지 권유의 임무를 맡고, 거사할 때에는 각기 군대를 거느리고 혁명군의 앞장을 서게 될 것이며, 돈 많고 교제 잘하는 F씨는 한국 정부와 일본군사령부의 주요 인물들과 사귀어 알아볼 것은 알아보고, 인연을 맺어둘 사람은 맺어두기로 하였다.

또 F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나, A 이하 일반 동지들이 생각하기에는 필요한 때가 오면 군자금도 내리라고 믿었고, 또한 진위대장인 E씨는 C, D 양씨와 더불어 장차 거사할 때 한목숨 바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짜놓고 시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A는 또 한편으로 군인 외의 동지를 구하여 하나의 정당을 조직할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A씨가 정치적 포부를 가지고 ○○회라는 정치적 결사 — 그것은 독립협회를 제외하고도 아마 조선에서 처음인 애국적 정치결사였을 것이다 — 를 만든 사실을 자세히 말할 이유는 없다. 다음 어느 기회에 ○○회의 주요 인물과 그 회에 관한 대강의 사실을 말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정치적 결사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그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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껑충 뛰어 이야기는 광무 ○○년 여름으로 옮아간다.

효충회(効忠會) 동지들이 모여 비밀리에 시사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있는 자리에 편지 한 장이 왔다. 그것은 물론 우편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어떤 병정 하나가 가져와 A씨에게 주고 달아났다.

그 편지를 뜯어본 A씨의 낯빛은 해쓱해지고, 눈초리는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소리는 높아졌다. 좌중은 모두 A씨의 이 태도를 보고 마치 일시에 숨이 끊어지고 몸이 굳어진 듯이 말이 없었다.

“군대를 해산하기로 오늘 내각회의에서 내정이 되었다오!”

하고 A씨는 그 편지를 좌중에 내던졌다.

그 편지는 궁중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각회의를 엿들은 사람의 편지인 모양으로, 궁녀체의 순 언문으로 내각회의 때 총리대신 R(주: 이완용), 내무대신 S(주:임선준 추징), 탁지대신 K(주: 고영희 추정), 농상공부대신 C(주:송병준 추정), 군부대신 R(주:이병무) 등 여러 대신들이 토의하던 말 가운데 중요한 구절을 매우 요령 있게 적은 것이었다.

그것에 의하면, R 총리대신이 모처의 의사라 하여 도저히 군대를 해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역설하고, 만일 한국이 자진하여 군대를 해산하지 않으면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찬성파와 반대파가 나뉘어, S 내무대신, C 농상공부대신, K 탁지대신 같은 이는 사직을 안정시키고 인민을 도탄과 어육에서 건지기 위해 저편의 요구대로 군대를 해산하자고 하였다. 기타 R 군부대신, R 학부대신, P 궁내부대신, K 원로 등은 군대 없는 나라가 어디 있으며, 또 남이 해산하란다고 자기 군대를 해산하는 못난이가 어디 있느냐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필경 하나씩 둘씩 총리대신의 말과 위협 — 반대하는 자도 개인의 지위는 물론이고 생명까지 위험하리라는! — 에 자라 목처럼 움츠러들고, 끝끝내 버틴 이는 두어 사람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정식으로 어전회의를 열어 군대해산의 조서에 각 대신이 서명하기로 하였고, H 내각서기관장이 해산조서를 기초할 것을 맡고, S 내부대신이 전국 관민에게 공문할 것을 맡고, R 총리대신과 C 농상공부대신이 상감의 뜻을 움직일 것을 맡고, R 군부대신이 일본군사령관에게 말하여 한편으로는 일본군대로 시내의 각 요지를 수비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 군대의 무장을 해제하여 병영을 일본군대에 내어주는 실행 임무를 맡기로 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은 곧 R 군부대신이 각 대의 간부를 불러 해산 명령을 전달하고, 아울러 해산 사무를 맡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본 효충회 출석자 — B, C, D, E, F 등 모든 장령들은 청천벽력에 얼빠진 것 같았다.

어떤 이는, C씨 같은 이는,

“한판 해보자!”

하고 팔을 뽐내고, 어떤 이는,

“이놈들을, 이 나라 잡아먹는 도적놈들을!”

하고 이를 갈고, 또 어떤 이는 실성한 듯 통곡하였다.

마침내 의논은,

“있는 힘을 다해서 군대해산에 반항하자.”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효충회 육칠 인 가운데 실제로 군대를 지휘하는 지위에 있는 이는 시위 제2대대장인 D씨와, 서울에서 얼마 멀지 않은 지방 진위대대장인 C씨뿐이었다. 군부대신 부관인 A씨나, 무관학교 교장인 B씨나, 있지도 않은 치중대장인 E씨 같은 이는 손에 한 소대 병정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옳다. 어디 겨루어 보자!”

하고 C씨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가오. 다들 웬걸 생전에야 만나겠소? 이 판에 살아나는 놈도 개자식 놈이오.”

하고 인사도 다 하지 않고 뛰어나가 버렸다. 그는 군대해산령이 내리기 전에 자기가 맡은 수비대로 가려는 것이었다.

B씨는 각 대의 통솔자를 찾아가고, F씨는 S 내부대신 — 이는 부총리격이었다 — 과 C 농상공부대신을 찾아가 군대해산이 불가하다는 것을 말하기로 하고, A씨는 R 총리대신과 R 군부대신을 찾아가 군대해산을 못하게 하도록 힘쓸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군대를 이상적인 군대로 만들어 보자.”

하여 애써오던 이 사람들의 실망과 분개는 형용해 말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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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

A씨는 곧 R 총리대신의 집을 찾았으나, 예궐하였다고 하여 만나지 못하고 그 길로 R 군부대신의 집을 찾았다. 그 역시 예궐하였다고 하나, A씨는 군부대신 부관인 관계로 R 군부대신 집 사랑에 들어가 군부대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뚱뚱한 군부대신은 술이 반쯤 취하여 인력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A씨는 예사롭게 부관답게 R씨를 맞았다.

“어, 자네 왔나?”

하고 군부대신은 육군 대례복의 금줄이 찬란한 군모를 벗어 곁에 선 상노에게 주려 하였다. A씨가 그 군모를 받아 마당에다가 탁 집어 동댕이쳤다.

“이 사람, 이거 웬 일인가?”

하고 R씨는 술이 번쩍 깨는 듯하였다.

“군대가 다 없어지는데 군모는 해서 무엇합니까?”

하고 A씨는 주먹으로 눈물을 쥐어 뿌리며,

“이 모자가 군대를 해산하려는 군부대신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것이 죄지요!”

하고 구둣발로 그 찬란한 군모를 짓밟고 비벼버렸다. 모자는 찌그러지고 흙탕물이 묻어, 해산당하는 군대처럼 참혹하게 화계 밑에 굴러가 자빠졌다.

군부대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네 어디서 무슨 말 들었나?”

하고 양실 응접실 의자에 걸터앉아 주먹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R씨는 A씨에게 물었다. 그 음성은 마치 죄지은 사람이 용서를 청할 때의 음성처럼 힘이 없었다.

“대감!”

하고 A씨는 상관에 대한 예절도 버리고 군부대신의 팔을 꽉 붙들었다.

“대감! 대감은 군인이외다. 내각 대신들이 다 썩고 물렀기로 대감마저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대감! 못한다고 반대하십시오!”

“낸들 왜 반대를 아니 해보았겠나.”

하고 R 군부대신은 숙였던 고개를 기운 없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들 아니 할 수는 없다고 하니, 내가 혼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들이라니요? 대감은 반대신데 다른 대신들이 해산을 주장한단 말씀이시지요?”

하는 A 참령의 다짐에 R씨는 다만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릴 뿐이었다.

“대감은 분명 반대십니까?”

“암, 반대지. 내야 설마 찬성하겠나. 하지만 수상(首相)의 뜻이 기울어진 걸 어찌한단 말인가. 애초에 발론을 수상이 했거든. 그야 수상도 자기 뜻이야 아니겠지. 뒤에 내려누르는 데가 있어서 그러겠지만, 수상의 뜻이 정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 안 그런가.”

하고 R씨는 연해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는 회의가 끝난 뒤 궁중에서 축하?의 뜻으로 한 잔 마신 것과, A씨가 대드는 바람에 어색해진 것이 합쳐져 이마와 등골에서는 몸에 있는 물이 다 나오려는 듯 땀이 흘렀다.

“이제는 또 수상의 뜻이 해산으로 기울어졌으니까, 대감의 뜻은 아니지만 내일은 대감이 앞장을 서서 대감의 손으로 군대를 해산해버릴 직분을 맡으셨단 말씀이야요? 그래 대감의 목은 이런 때에도 좀 내밀어 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끼면 천년이나 만년 갈 듯싶습니까?”

R 군부대신은 대답이 없었다.

“설사 대감이 목을 내밀고 못한다고 크게 다투지는 못할망정, 내일이면 없어질 군부대신 자리를 발길로 차고 물러나올 기운도 없습니까? 그러고는 무엇을 먹겠다고 제 손으로 제 군대를 해산하고, 제 손으로 제가 있는 군부대신의 자리를 팔아먹을 염치가 어디서 난단 말씀이십니까?”

“……”

“대감!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단연히 군대해산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이 자리에서 쓰십시오!”

“글쎄 나 혼자만 버틴다고 일이 되나. 총리대신이 한다는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면 총리대신만 대감처럼 말을 돌린다면, 대감은 끝끝내 반대하시렵니까?”

“암, 그렇지.”

하는 대답을 R 군부대신은 아니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대감께서 군대해산 불가라는 편지 한 장을 써주십시오. 소인이 가지고 가서 총리대신의 마음을 돌려보겠습니다.”

“그거 안 될걸.”

“되고 안 되는 것은 소인에게 맡기시고, 대감은 편지 한 장만 써주십시오.”

A씨의 비분한 태도와 정정당당한 이론에 눌려 R 군부대신은 더 피할 핑계를 얻지 못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 R 수상 각하
제국의 군대를 해산함은 도저히 차마 못할 일이옵기에, 소인은 죽기로써 반대하려 하오니 각하께옵서도 돌려 생각하시기를 복원하나이다. 자세한 말씀은 부관 A에게 하문하시옵소서.
○월 ○일 석
R 재배



R이 이 편지를 쓴 것은 반은 A의 열성에 감동된 것이요, 반은 A의 위엄에 눌린 것이었다. R은 A가 자기를 죽이기라도 할 듯 살기가 등등하게 느껴졌다.

“소인 곧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A는 R 군부대신의 집을 나서서 바로 R 수상의 집으로 가려다가, 총리대신을 방문하는 데 합당할 만한 예복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


---

十二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인력거를 타고 나서려다가, 한 번 전화로 물어보고 가는 것이 편하리라 하여 R 수상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세 번째 전화를 걸려 할 때, A씨의 귀에 댄 수화기에서는 R 군부대신의 음성이 들렸다. A씨는 깜짝 놀라 가만히 들어보니 그것은 전화가 혼선된 것이었다.

“지금 A가 소인의 편지를 가지고 댁으로 찾아갈 테니, 안 계시다고 하여 만나시지 마시지요.”

이러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히 R 군부대신이 R 수상에게 거는 전화였다.

“그러면 헌병대에 전화해서 A란 자를 잡아 가두라지요.”

하는 것은 분명 R 수상이었다.

“그럴 것까지는 없고요. 제가 놔두기로니 무엇을 하겠습니까. 대감께서 안 만나시면 그만이지요.”

하는 것은 군부대신이었다.

A는 당장,

“이 개 같은 놈들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꽉 참고, 들을 것을 다 들은 뒤에 수화기를 걸었다.

“아, 다 틀렸구나!”

하고 A씨는 발로 방바닥을 굴렀다.

A는 “우후후후” 하고 한참이나 소리를 내어 울더니, 벌떡 일어나 벽장에서 육혈포를 꺼내 12연발에 탄환을 재어 기계를 점검해보고 나서, 군복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육군참령의 정복을 정연하게 입고 인력거를 타고 나섰다.

十二

A씨가 인력거를 타고 바로 대문을 나서려 할 때, 마주 들어오는 우비 씌운 인력거 하나가 있었다. A는 그 인력거가 누구의 인력거인지도 알았으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그 인력거를 비켜 인력거를 몰았다.

“영감!”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우비 씌운 인력거 속에서 나오며, 머리를 쪽진 젊은 여자 하나가 내려서 지나가는 A의 인력거를 따랐다.

그러나 A의 인력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동 병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 여자는 추금(秋琴)이라는 기생이다. 그때에는 오늘날과 달라서 명기라고 하면 돈 있는 자보다도 지사를 따르는 기풍이 있었다. 추금이도 그러한 기생 가운데 하나로서, A씨의 사랑을 받고 A씨를 사랑하는 기생이었다. 그래서 가끔 추금은 밤이면 A씨 집을 찾아와 이튿날 아침에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오늘도 추금은 A씨를 위로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추금이는 A씨가 자기를 본 체 만 체, 자기가 부르는 소리도 들은 체 만 체하고 가버린 것이 불쾌하고 분해서 눈물을 참고 입술을 물었다. 그러나 추금이는 얼른 다시 생각하였다. 근래에 A씨가 도무지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혹시 만난다 해도 전과 같이 유쾌한 빛이 없을뿐더러 용모가 초췌한 것, 그리고 오늘 저녁 이처럼 A씨가 자기가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할 새가 없는 것은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있다면 무슨 곡절인가? 그것은 크나큰 국사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A에 대한 섭섭하고 분한 마음은 풀리고, 도리어 크나큰 국사로 노심초사하는 A가 한없이 동정되었다.

“가.”

하고 추금이는 인력거에 올라앉아 인력거꾼을 재촉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인력거꾼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어디로 모시랍쇼?”

하고 인력거꾼은 인력거 채를 들어 무릎 위에 놓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려 물었다.

“집으로 가.”

하고 추금은 기운이 다 빠지는 듯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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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三

그날 밤에 추금은 R 수상이 부르는 것도 물리치고 A씨를 찾아왔던 것이다. A씨를 향하여 R 수상의 부름을 물리쳤다고 한들 큰 자랑이 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한두 번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료 중에 추금을 사랑하는 사람이 R 수상 외에도 있었다. S 내대(내부대신), C 농대(농상공부대신) 같은 이는 그중에도 심한 편이요, 정력이 절륜하다는 R 군대(군부대신)도 이 미인을 지나쳐 보았을 리는 없지만, 그가 자기 부관인 A 참령의 애인인 줄을 안 뒤에는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대신들이 추금의 재색에 침을 흘리는 중에도, R 수상은 자기의 지위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것처럼 추금을 손에 넣는 데에도 자기에게 우선권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동 대감께서 아씨 부르시오.”

하고 인력거가 오면, 추금은 그 부르는 곳이 어딘가를 물어서 만일 백수(白水)라든지 화월(花月)이라든지 하는 일본 요릿집이면 가고, ×동 ○○정 댁이라고 하면 무슨 핑계든지 내어 거절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그 어미가 발을 구르고,

“이년아, 나 죽는 것을 보아라.”

하고 발악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날에는 R 수상이 추금을 ○동 ○○정 댁으로 불렀다. 그러는 것을 어디 가고 없다고 하여 돌려보냈다.

한성 정계에 풍운이 자못 급한 것은 추금이도 모를 리가 없었다. 헤이그(海牙) 평화회의에 밀사가 나타났다는 둥, 그 밀사가 만국회의 석상에서 연설을 하다가 비분한 나머지 배를 갈라 죽었다는 둥, 이 때문에 황제가 양위를 한다는 둥, 벌써 했다는 둥, 일본 군대가 남산 꼭대기와 남대문 누상과 대한문 앞에까지 대포를 설치했다는 둥, 인천에는 일본 군함이 수만 명 군대를 싣고 들어온다는 둥, 이제 큰 난리가 난다는 둥, 이러한 근거 있는 소리와 근거 없는 소리가 병문 지게꾼이며 행랑어멈, 행랑아범들 사이에까지도 이야기거리가 되었던 때다. 이러한 때에 지사와만 교제하는 명기 추금이가 정계 풍운이 급박한 낌새를 몰랐을 리가 없다.

이러한 때에 추금이가 A에게 대하여 가지는 생각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A씨와 그의 동지 되는 여러 지사들이 아마 시국을 바로잡고 난리를 평정하리라는 희미한 희망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풍운이 급박하면 손에 넉넉한 실력이 없는 A씨와 기타 지사들의 운수가 불길하리라는 근심이었다.

A씨가 여러 날을 두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을 때에 추금은 여자가 으레 가지는 마음으로, 혹시나 A씨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자기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질투를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 돌려 생각할 때에, A씨는 오늘날의 시국에서 집이나 아녀자에게 견권하는 정을 가질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였다. 그리고는 전장에 내보낸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가슴을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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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四

옷도 갈아입지 않고 머리가 아프다고 일컫고 자리에 누워 있을 때, 추금의 주정뱅이 오라비 M이 집을 헐 듯이 들어왔다.

“추금아, 추금이 있니?”

하고 M은 누이의 방에 느린 발을 들이고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가르마 붙였던 머리카락은 앞으로 뒤로 옆으로 갈기갈기 늘어지고, 입에서는 퉤퉤하고 거품이 일었다. 본래는 그리 작지도 않은 눈은 졸려서 못 견뎌 하는 어린애 눈처럼 가느스름하게 반짝거리고, 모시 두루마기 고름은 한쪽이 뜯어져서 고 맨 것이 겨드랑이에서 드렁거렸다.

추금은 못 들은 체, 자는 체하고 돌아누웠다.

“얘, 추금아.”

하고 M은 추금의 곁에 들어가 앉으며 웃는 얼굴, 귀여워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얘, 추금아, 이를테면 내가 이렇게 술이나 먹고 망나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네 오라비거든…… 그렇지만 취한 것은 아니야. 내가 그것 먹고 취해? 안 될 말이지, 하하 하하. 얘 누이야, 동생아. 이 오라비 놈 술 좀 먹여주렴아.”

하고 잘 말을 듣지 않는 손가락으로 추금의 목을 간질인다.

“글쎄 왜 이래요?”

하고 추금은 귀찮은 듯이 팔을 들어 M의 손을 뿌리쳤다.

“오빠도 사내로 태어났거든 좀 사내답게 사내다운 일을 해보시구려. 나이 삼십이 내일모레인데도 밤낮 술만 잡숫고 — 내가 버는 돈이 어떤 돈이라고 그것으로 술을 잡숫고 다니신단 말이오? 동생이 부끄럽지 않아요?”

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정뱅이 M을 흘겨보았다.

“네 말이 옳다. 백 번 옳고 천 번 옳다.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고말고.”

하고 M은 척추뼈가 부러진 듯이 앞으로 푹 허리를 굽혀버리고 만다.

“병정 노릇이라도 좀 다녀보시구려. 그것도 못 하겠거든 순검 노릇이라도 좀 다녀보시구려!”

하고 추금은 엄숙한 낯으로 말하였다.

“남과 같이 영웅열사는 못 될망정 순경, 병정도 못 된단 말이오?”

하고 추금은 속으로 A 같은 사람과 M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M을 책망하다가, 그 주정뱅이가 죽여줍소사 하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생각이 나서 말을 끊고 말았다.

“추금아. 내 영웅이야 바라겠느냐마는 열사는 되마.”

하고 M은 이윽고 고개를 들고 몸을 똑바로 하며 얼굴을 엄숙히 하였다. 그의 낯에는 조금 전에 있던 취한 빛이 다 없어지고, 해쓱한 그 얼굴, 여문 눈에서는 찬 바람이 나는 듯하였다.

이때 대문에 찾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R 수상에게서 두 번째 온 인력거였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추금은 이번에는 아니 간다고 거절하지 않고 성큼 일어나 그 인력거를 탔다. (끝)




特告

좀 더 일반적인 독자를 획득하자는 생각으로, 『동광(東光)』은 더 쉽고 더 재미있는 잡지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번 호는 어느 정도까지 그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 호부터는 좀 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주 오락 본위로 떨어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 현실에서 알아야 할 만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도 안에서, 가장 평이하게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시에 한층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여 지금 고려 중입니다. 가을에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게 될 줄 압니다.

이번 호에는 이정섭(李晶燮) 씨의 대논문 「동양 대세와 조선의 장래」라는 것이 실릴 뻔하다가 끝내 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기사가 폭주하여 흥미진진한 양대 계속 기사 「무명씨전」과 「러시아 문호의 조선 기행」을 싣지 못했습니다. 「동광대학」이 겨우 한 편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번 호부터 매호 현상으로 독자 여러분의 글을 모집하기로 되었습니다. 글의 주제는 될 수 있는 대로 당면한 긴급한 문제, 유익을 줄 만한 문제, 사상적으로 뜻깊은 문제 등을 택하려 합니다. 여러분께서 붓을 갈고 닦아 많이 응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밖에 무슨 글이든 보내시면, 잘된 것은 게재하겠습니다. 조선에는 글 쓰는 사람이 아직 적습니다. 숨은 천재의 출현을 기다립니다.

그동안 우리는 시험적으로 『조선시화집』과 『문예독본』을 출판했었습니다. 그 책들의 성적에서 자신을 얻어, 앞으로 대대적으로 출판사업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 달에 발표하겠습니다만, 지금부터 여러분의 지지를 구해둡니다.

보리 가을이 지나가고 찌는 여름입니다. 물로 산으로 가시는 여러분이나, 또는 비지땀을 흘리며 일터에 있는 여러분이나, 다 같이 씩씩한 정신으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여러분! 한 호를 내보내기가 아들 낳기보다도 더 어려운 이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 8월호를 제 기일에 꼭 내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꾸준한 노력을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동광』을 찾는 이가 있습니다. 1호부터 16호까지 책으로 맨 것이 있습니다. 상하 두 권입니다. 한 권에 2원씩입니다. 원하시는 이는 청구하십시오.

7월 1일
동광사 백(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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