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갑갤에서 한국군의 대민지원만 부각되어있고 이점이 뭔가 미화되어있고 상황에 맞지않는다는 말이 있어 다시 고쳐봄.
잘보면 한국군의 통치도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마땅치는 않고, 애국가나 태극기에 대한 반감과 북한 당원들을 연행한 대신 임용된 남한 출신 공무원들이 대한 반감 등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모습이 나와있긴 함.
그래도 더 하드코어하게 써보긴 했지만.... 뭐... 코렁탕 먹는건 아닌... 당신 누구야 읍읍
아무튼 피드백 줘 시벌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2월의 정기 뿌리며...\"

소년은 노래를 부르며 들판 한가운데로 난 신작로를 걷고 있다. 풀을 먹어 빳빳한 붉은 스카프에 겨울바람이 와 닿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강냉잇대를 추수하고 남은 들판에는 미처 베다못한 강냉이대가 밤새 내린 눈을 뚫고 삐죽하니 튀어나와 있고, 군인 몇명이 쑥색무늬의 얼룩덜룩한 잠바를 입고 자동보총을 매고 -이런 풍경에 어울리지 않을 꼬락서니로- 경계근무라는 이름으로 들판 가장자리 신작로 양옆에 서있다가, 가끔 검문이라는 이유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여행증을 들여다 보곤 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선, 정문 현관의 초상화를 떼어낸 흔적이 어색하게 남은 면 인민위원회 건물위에는, 이들이 새로 달아놓은 태극기가 흰 페인트 자국이 말라붙은 게양대끝에 매달려 허옇게 늘어져 있었다.

면 인민위원회와 군인들이 보이자 소년은 노래를 멈춘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로 저 면 인민위원회 앞 게시판에 가사쓰인 대자보가 나붙고, 소학교에서도 합창을 시켜가며 가르쳤던 이 노래가, 이제는 더이상 부르면 안되는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소년은 북과 남이 통일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전해주던 면당위원장과 여맹위원장, 근처 인민군대 군관까지. 모두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통일 이야기를 듣기 두어 주 전, 아직 약하게나마 남아있던 가을 햇살이 불어오는 북풍에 맥을 추리지 못하고 모습을 감출 때의 일이었다. 영용한 인민군대가 저 남반부의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미제의 사주를 받아 준동하는 남조선 괴뢰군부대를 향해 멸적의 불벼락을 날려주었다고, 지금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는 면당위원장이 자전거까지 타고 와서 기쁜 목소리로 전해주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미제의 식민 통치하에서 핍박받고 억압받는 남조선 인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인민군 부대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영광스러운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영광의 새 소식이 들리자 집집마다 붉은 노동당기와 *홍람오각별기가 걸리고 사람들은 일제히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북남통일이 이루어질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을 어른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흉흉한 소식만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점차 믿을수 없는 흉흉한 소식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조선군대가 어데까지 완?\"
\"저 사리원까지 왔다데.\"
\"사리원? 아, 사리원은 발쎄 지났디. 저 피양[平壤]은 금방이구 박천까지 왔다고 남조선 방송에서 그랬댔어.\"

남조선 군대가 점점 다가올 수록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식만이 나돌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서는 남조선 사회에선 남남북녀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고했다. 자본주의적 물욕과 탐욕에 찌든 남조선 여자들이 눈이 높아서 남조선남자들과의 혼인을 꺼려하는 까닭에 남조선 남자들은 북조선 여자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곧 남조선 군대가 들어오면 여자에 눈이 뒤집힌 남조선 군대는 술에 잔뜩 취해서 사방에 총을 쏘며 여자 나오라고 소리를 쳐댈 것이다. 여자에 눈이 뒤집힌 남조선 군인들은 치마만 둘렀다면 팔순 노파부터 어린 소학생들까지 상관없이 모조리 범할 것이며, 또 북조선 남자들은 입을 막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모조리 총살한다는 말이 바람결과 함께 떠돌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잔악한 남조선 군대는 아이들을 붙잡으면 나무에 매어놓고 이를 과녁삼아 보총 사격을 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시간을 죽이는 낙이라는 이야기가 소년과 그 또래의 아이들을 괴롭혔다.

그런 흉흉한 소문들을 조금이라도 잠재워 보기 위해 도당 보위부에서 입단속을 위해 두어차례 보위지도원들이 드나들었고 면당위원장은, 영용한 인민군대가 저 백두산 천지부터 한라산의 백록담까지, 승리의 깃발을 앞세우며 전진하고 있다고,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짧막한 모가지에 핏대를 세워가며 다그치다시피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도, 세상이 바뀔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고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의 헛소문이 한참 무르익어가며 고무풍선같이 부풀어오른 긴장감이 터지기 직전에, 아버지의 친구이자 같은 기업소에서 반장을 맡고있는 성일이 아저씨가 자전거까지 타고 와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던 것이었다.
대문간을 박차고 들어선 성일이 아저씨는 툇마루에 앉자마자 신발을 벗지도 않고 온 몸을 덜덜 떨어대기 시작했다.

\"야 너 무슨 일이간? 아새끼레 뭔 마라리야 걸린 것 마냥... 야아, 냉수나 한잔 먹구 속 좀 차리라. 임자 게 물하나 떠오오.\"

어머니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주자 아저씨는

\"아즈마니(형수님), 일없소, 일없소. 일없수다레.\"

연신 손사레를 치며 치우고는

\"아이고, 형님, 지금 이럴 시간이 없쉐다래. 아 기쎄, 형님은 그 남선군(南鮮軍) 아아들이 피양[平壤]에도 들어왔대는 얘기 못들었소?\"
\"뭐? 피양? 니 기거이 참말이니?\"
\"아이고 내 미쳈다고 거짓말 하갔소? 지금 남선군 아아들이 지금 피양에 들어왔소. 만수대구 뭣이구간에 사방팔방에 낯선 기빨(깃발)이레 걸리구, 남선군 아아들이 저 보위부를 장악해서 아 당간부건 일꾼이건, 당원은 닥치는대루 잡아다가 처넣구 있읍데다. 아이구 이레 세상이 바뀌었으니... 자, 못믿갔으문 보시요. 내 어데 거짓말을 하나 안하나.\"

그러면서 아저씨는 로동신문을 보여주었다. 평양 위의 평성(平城)서 사왔다는 신문은 중앙당과 원수님의 치적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싣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그날 따라 한장짜리 호외로만 나와 있었다.
로동신문이라는 제호와 양옆의 노동당 구호가 무색할만큼 완전히 딴판인 내용을 담고 있는 호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한민국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였다
만수대, 내각 등 괴뢰 파쑈통치기관들을 완전히 해방시켰다

여기는 평양이다.
남북통일의 최전선에 나선 대한민국 국군은 김정은 역적패당의 패악한 남침도발에 맞서 반공격을 개시한지 단 열흘만에 대한민국 육군 수도사단을 필두로 하여 제 삼사단, 이십오 사단 군부대를 앞세워 평양시에 입성, 소위 혁명의 수도인 평양을 완전 해방시켰다.
입성한 부대들은 련못동의 파쑈 보위부 청사와 각 보안서에 정치범의 탈을 쓰고 억울하게 구금된 죄없는 인민들을 해방하고 김정은 파쑈 괴뢰통치배들의 소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를 비롯하여 만수대, 내각, 조선로동당 중앙당 및 중요한 도로·교량·체신·철도 및 각 중요시설들을 완전히 해방시켰다.

오래 갈망하여 맞이하던 온 조선 인민의 해방자 대한민국 국군을 전체 평양 인민들은 열렬한 환호로서 환영하였다.
삼대에 걸쳐 조선인민을 착취하며 봉건 독재적 파쑈통치를 일삼던 북남 조선인민의 만고역적 김정은 역도들과 그 개들은 이미 27일 오전중에 평양시에서 도망하였다.
또한 평양시를 짓밟으며 김정은의 개 노릇을 하여 조선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던 소위 인민군 부대들은 우리 국군의 맹렬한 공격에 의하여 그 대부분이 섬멸되었으며 평양시부터 도주하였다.

지시를 절대 신임하라!
전체 평양 인민들이여!
대한민국 국군은 정의의 총검으로 평양시를 해방시켰다.
혁명의 수도인 평양은 완전히 조국통일의 수도가 되었으며 전체 조선인민들의 거리로 되었다.
이제 여러분들은 김정은 독재 파쑈정권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이제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태극기 기빨 아래 살게 되었다.
반동의 소굴이었던 치욕의 도시는 이제 진정한 인민들의 거리로 되었다.

전체 평양 인민들이여!
북남 통일혁명의 수도이며 당신들의 거리인 평양시를 질서정연하게 고수하라!
대한민국 군경의 지시를 절대 신임하고 반동분자들의 온갖 모략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반동들은 교묘하게 모략 선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토당토않은 허위선전임을 이때까지의 경험을 통하여 당신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체 평양 인민들이여!
반동들의 사보타지와 *데마 테로(테러) 방화 파괴 등에 최대의 경각성을 돌리라!
반동을 제때에 적발하라!
그렇게 함으로서 당신들의 손으로 혁명의 수도를 튼튼히 고수하라!

1. 대한민국 만세!
1. 전체 조선인민의 해방자이자 온 조선반도 통일의 주역, 경애하는 최고 령도자 ㅇㅇㅇ 대통령 만세!

신문지를 든 아버지의 손이, 방금 전의 아저씨의 그것처럼 말라리아에 걸린 것과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성일이아저씨가 다른 집에라도 들렀는지 호외의 소문이 마을 어귀에 퍼졌지만 보위부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마을 어귀의 *분주소는 공화국 국기만을 나부끼며 조용히 멈춰 있었다. 툭하면 보위부에 냄새를 풍겨대서 마을 사람들에게 세빠또라 불리며 경원시를 당하던 철길건널목 옆 변전소 배전반의 김씨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면 인민위원회의 회색 시멘트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반듯하게 다림질한 인민복차림의 면당위원장이 고별사를 읽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가 여러분의 곁을 떠나지만 인민은 가슴 깊이 어버이수령님의 은혜와 주체조선의 당위성을 간직하고 투쟁의 대오로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년은,

\"아바지.\"
\"왜.\"
\"북남이 통일됐다는게 사실임까?\"

마치 다짐이라도 받아놓듯 아버지의 인민복 소매를 잡아 끌었다.

\"그렇다지.\"
\"그런데 왜 위원장 아저씨는 웁니까?\"
\"그건..\"
\"말씀해 보시오.\"
\"...\"

아버지는 씁쓸하다는 듯 갈색의 인민복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려다, 다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맹위원장이 저고리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곧이어 군관의 고별사가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지시에 따라 하나둘씩 *초상휘장을 떼 자신들의 앞으로 돌려지는 작은 통에 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가슴에 붙어있던 *쌍초상화의 초상휘장이, 아버지의 굵은 손가락에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기업소에서 퇴근하신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늘 초상휘장을 달고 있으셨고, 주무실때도 정중하게 초상휘장을 떼 머리맡에 놓고 주무셨다. 아버지의 입성은 꽤죄죄했지만, 쌍상이 박혀있는 붉은 초상휘장 하나만큼은 아버지의 가슴팍에서 언젠가 아버지가 가르쳐준 북극성 별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제, 그 초상휘장도 옛 일이 되었다.
마치 의장행렬이라도 거행하듯, 초상휘장을 담은 상자를 받잡은 인민군 병사들이 트럭에 올랐다. 남조선군 사령부에서 내려온, 18일 오후 2시까지 병영을 비우고 지정된 집결지로 가 투항하라는 지시를 따라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트럭에 시동이 걸릴때까지 그들의 행동은 꽤나 분주해 보였다.

인민군 군관과 병사들이 트럭을 타고 떠난 직후, 마침내 그 남조선 군인들이 들어왔다.
깃발이 휘날리는\"헌병\"이라 쓰인 하얀 모또찌클(오토바이) 두 대를 앞세운 채로 트럭을 타고 흙먼지를 끌며 들어온 남조선 군인들은 제각기 어깨에 멸공, 통일이라 쓰인 노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군인의 어깨에 둘러진 띠에 박힌 \"멸공\"이라는 까만 두 글자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군인들이 탄 트럭이 마을 어귀에 멎자 마을사람들 중 누군가가 만세를 외쳤다. 그를 따라 마을 사람 몇몇이 만세를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차의 시동이 꺼지자 다시 어느 누군가가 앞에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붙였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트럭이 멎자 짐칸에서 군인들이 뛰어내렸다. 이상한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총창을 단 *보총을 든 군인들 몇명은 면당위원회 건물로 뛰어들어갔고 나머지 군인들은 파란 트럭과 노란 트럭에서 과자와 빵을 꺼내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군인들이 무엇을 나눠주는 것에 마을 사람들은 지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몰래 강냉이 영양단지에 들어가 강냉이를 뜯어가던 것들도, 돼지를 끌어갔던 것도 군인들이었다. 소년의 친구 성칠이의 아버지는 수수를 가져가던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총을 쏜 군인들과 수수를 가져가던 군인들이 말뚝에 묶이고 총살당한 시체가 꼬박 사흘동안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남조선 군인들은 목이 마르다고 하면 노란 트럭에서 큰 물병을 꺼내 안겨 주었고, 커다란 사탕 봉지를 뜯어 아이들에게 한주먹씩 나눠주기까지 했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같았다.

남조선 군인 한명이 소년에게 다가와 빵 한봉지를 건네 주었다. 얼결에 빵을 받아든 소년은 뜯을 생각도 없이,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남조선 군인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조선 군인이 다시 빵을 빼앗아 포장지를 뜯고, 무언가를 꺼내서 소년의 볼에 붙여주었다.
풀칠을 하지 않았음에도 볼에 착 달라붙은 그림에는 이상한 고양이인지 개인지, 모를 머리카락 난 짐승이 그려져있었는데, 소년이 그러고도 빵을 먹지 않자 남조선 군인이 다시 빵 한귀퉁이를 떼서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마치 독약이 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제야 소년은 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소년에게 빵을 준 군인의 *철갑모에는 작대기 네 개가, 어깨에는 초록색 견장이 붙어 있었다.

곧이어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면 인민위원회 건물안에 들어간 군인들이 면인민위원회 당원들을 앞세워 나오기 시작했다. 줄줄히 뒤통수에 손을 얹고 나온 당원들을 군인들이 거칠게 몸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화국이 대전을 해방시키고 부산으로 진격중이라며 기세등등했던 당원들은 풀죽은 얼굴로 양 팔을 들고 남조선 군인들의 몸수색에 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빵과 과자를 나눠주던 군인 한명이 끌려나온 면당위원장을 권총 든 손으로 불러세웠다.

\"선생님이 여기 면당위원장입니까?\"
\"예, 그렇습네다.\"

군인은 들고있던 권총을 허리에 찬 권총집에 쑤셔 넣고 건성으로 거수경례를 올려붙이며,

\"육군 제 XX사단 제 2중대가 선생님과 당원여러분의 신병을 인수합니다. 이제부터 선생님과 여러분은 포로로 분류되며, 저희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그건 그렇고, 저거 왜 안내렸습니까.\"

군인의 손가락 끝은, 면 인민위원회 건물의 옥상 위에서 펄럭이는 공화국의 홍람오각별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없었댔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인수인계할 준비를 마치시라고, 저희가 군당(郡黨)을 통해서 분명히 시간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
\"2중대장님. 이거 죄송하게 됐습네다. 사실은 얼마전에 군당으로 나가는 전화선이 남선군 포격으로 파괴됐습네다. 그래서 군당하고의 연락이 잘 되지 않습네다. 이해해 주십시오.\"

기세등등했던 면당위원장은 젊은 군인 앞에서 고개숙여 빌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던 군인은 머쓱한듯 아이들을 드안아들던 다른 군인들을 불러세우고는,

\"알았습니다. 야 거기 손호준이 이리 와 봐!\"
\"병장 손호준.\"
\"호준이 너네분대에서 애 한 두세명 빼서, 저거 빨랑 내리고와라.\"
\"예 알겠습니다.\"

군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인 두어명이 다시 면 인민위원회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그들이 옥상에 모습을 나타냈을때 옥상에 걸린 홍람오각별기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깃발이 내려가자 마을 사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깃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각자 제각기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허탈감과 분노, 슬픔.... 어쩌면 이 모든것이 한데 범벅이 되어 얼룩진 표정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철민아, 게 똑똑히 보라.\"

뒤에서 손을 뻗어 소년의 뺨을 감싸고 있던 아버지가, 소년을 향해 귓속말로 속삭였다. 국기대의 꼭대기에서 드높이 펄럭이던 공화국 국기는 이제 채 반도 남지 않았다.
공화국의 국기가 내려간다. 수령님이 교시하신 자랑스러운 깃발이 내려간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우에 역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매일 월요일 아침마다 국기대에 국기를 올리며 부르던 이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더이상 부르지 못하겠구나.
소년은 내려가는 국기를 보며 공연히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던 깃발이 국기대에서 완전히 내려지자 군인들은 깃발을 내려 아래로 던졌다. 붉고 푸르른 공화국 국기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아래로 떨어졌다.
곧이어 새 깃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나는 붉은 색과 푸른색으로 나뉘어 으르렁대는 붉은 원에 검은 막대들을 덧그린 흰 바탕의 깃발이었고, 하나는 초록색 바탕에 새싹이 그려진 노란 원이 들어간 깃발이었다.
공화국 국기가 내려갈때는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있던 남조선 군인들이, 새 깃발이 올라가자 일제히 보총을 올렸다. 소년에게 빵을 쥐어주었던 녹색 견장의 군인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이미 마을 자체가 헐어빠졌는데 새마을은 해서 무엇하간.\"

소년의 아버지가 나부끼는 초록색 깃발을 보며 한 말이었다.
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건물 현관의 캐노피에 매달린 군인 한명이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를 떼어 아래로 내동댕이 친 것이었다.
그렇게 소년은 김일성과 작별했다.


좆같이 안올라가서 상하 나눔
하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