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의 고성능 컴퓨터 센터들로 구성된 중앙통제허브를 필두로,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300-400개의 중간허브와 전국토에 연결된 약 7000개 시설망으로 전 소련을 망라하는 자동계획경제운영망(Network)을 구성할 계획이였다. 또한 중간허브는 이후 집단이용 컴퓨터센터(вычислительных центров коллективного пользования)으로써, 시설망의 연결뿐 만이 아니라, 시설망을 구성 못하거나, 부족한 컴퓨터 장비를 보충해주는 지원시설의 역할과, 중앙허브의 용량이 초과하는 복합/대형계획안의 정보처리보조도 맡을 수 있었다.

통제시스템은, 두가지 모드로 형성되며, 평화상태와 전시상태의 자동운영시스템으로 나뉜다. 평화 상태는 모든 자동운영을 경제와 행정, 연구계획에 치중하는 구조이지만, 전시상태로 돌입하면, 군사작전으로 전환된다. 키토프는 중앙경제통제시스템의 도입으로 소련 계획경제를 ‘자동화’로 재구축하려고 한 것이며, 이러한 전산계획경제를 책임질 자동운영시스템의 개발,조율,운용을 위한 전 소련 정치적 협의체 – 고스코무프르(Госкомупр)를 제안했다.

또한 키토프는 소련 전국에 네트워크 망을 구성하기 위하여 컴퓨터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흐루쇼프에게 호소하였지만, 컴퓨터 생산량에 대한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급진적인 경제체제 변경이 필요한 자동운영시스템의 도입에는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소수의 지지자들이 있었지만, 국방부의 ‘통합간 경제와 군사의 간섭문제’를 이유로 거부했으며, 또한 키토프는 이러한 제안을 한 이유로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고 대령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다만, 중앙경제통제망의 기초 시설망은 1964년, 리베르만, 벨킨과 같은 경제학자들의 효율대비 비용에서 비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상인 코시긴의 지지를 얻어 우크라이나 리보프 지역에 시범적으로 개설되었다.



흐루쇼프는 이 능력있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과학자의 말을 들었기에, 그는 영원히 까여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저 키토프라는 사람은 소련 최초의 컴퓨터 센터(국방부 소속)의 센터장으로, 로켓 개발에 필요한 주요계산을 책임진 숨겨진 '공신'중 하나였다. 그런 사람을 호소좀 했다고 바로 짤라버리는 공산당 쏀쓰;



로켓은 소련에게 최고의 딸따리를 칠수 있게 했지만, 정작 소련이라는 기본적인 시스템의 기술적 개선은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