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사들은 싸움을 금지한 교회의 반대(아이러니하게도 성직자들은 특권의식을 과시하려 주위에 기사들을 두었는데 1063년 성령강림제 때, 힐데스하임 주교와 풀다 수도원장이 교회좌석에서 누가 상석을 차지하는 것이 옳은지 합의를 보지 못해 기사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교회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죽었다.)를 무릎쓰고 마상창시합을 계속했음.
기사로 산다는 것은 왕에 이르기까지 귀족계급 전체의 생활방식이었음. 그러나 이 위험한 놀이는 몹시 위험했으며 수백 년에 걸쳐 상당히 많은 희생 사례를 보여줌.
가령 1175년에 작센에서 16명의 기사들이 창시합으로 죽었고, 1240년에 쾰른에서 40명, 1500년 데인족 기사부대가 디트마르 농부들에게 맞아죽어 알레펠츠 가문 사람만 16명이 목숨을 잃었음. 이렇게 죽은 유명한 기사들중에는 1241년 길버트 폰 펨브로케, 1268년 요한 폰 브란덴부르크, 1294년 요한 폰 브라반트, 윌리엄 몬테큐는 1383년에 경기중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음.
1559년에는 프랑스왕 앙리가 창시합으로 죽었는데 상대인 친위대장의 창이 부러지면서 손잡이가 면갑의 눈구멍을 지나 눈과 뇌를 찔렀고, 안타깝게도 즉사하지 않아서 여러날동안 고통을 겪다가 죽었음. 친위대장은 살인혐의로 며칠간 가둬졌지만 결국 무죄로 방면됨.
위 사례로 불행한 결말이 났을 경우 상대 기사에게 부당한 처벌이 있진 않았을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죽은 앙리의 아내는 외국으로 도망친 친위대장이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그를 체포해서 변변찮은 이유로 처형했음. 광범위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온 이 결투는 기사들의 창시합이 점점 사라지도록 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줌.
창시합은 점점 사라지고 고전적인 기사가 사라져 기사도만 남았음. 따라서 기사도는 더 이상 창시합, 갑옷, 랜스차징과는 관계가 없어졌으며 이런 것들은 우리 시대에 와서 기사시합을 모방하여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사업으로만 남게 됨.
아직도 뮌헨 근교 마을 칼텐부르크에서는 여름에 기사들의 마상창시합이 열리는데 광고문에 따르면 "앵글로색슨 전문기사단과 왕립 바이에른 원탁기사단 사이의 흥미로운 싸움이 펼쳐진다! 200명 이상의 인원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안달루시아까지에서 벌어지는 기사놀이는 이곳 기사단을 당해내지 못한다."라고 써있음.
기사도란 치명적 게임에서도 상대방에게 공평성을 유지한다는 페어플레이를 뜻한 것만은 아님. 모범적인 것, 때로는 이익을 고려않는 비합리적인 것, 즉 "명예와 예절을 생각해서 심지어는 죽음과 고통까지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고귀한 기사'오이겐 왕은 장교들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여러분! 여러분의 목숨은 그것이 항상 모범적일 경우에만 정당한 것입니다. 동시에 아무도 그 점 때문에 여러분을 비난 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도 명랑한 방식으로 행해야 합니다."
기사도가 유지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상황과 영향력과 상호성이 필요했고 그렇지 않을경운 소멸되었음. 에드먼드 버크는 프라읏 혁명 기간에 기사도가 붕괴된 것을 보고 경악했는데, 사람들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함.
"그녀를 모욕하려고 한 이들을 벌주기 위해선 1만개의 칼들이 칼집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기사도덕의 시대는 갔다. 명예심, 순결한 자부심, 치욕을 상처로 느끼는 마음, 용기를 북돋워주고 그것에 닿는 모든 것을 고귀하게 만들어주는 그 마음은 가버렸다. 생각과 느낌이 결합된 이런 도덕체계는 중세의 기사개념에 뿌릴 둔 것이다. 그 체계의 원칙은 인간의 관심사가 바뀌며 모습은 변해도 긴 세월간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까지 그 색과 영향을 유지해갔다."
두 배는 긴데 너무 지루해서 중간에서 자름. 대충 "딱딱.....고얀....놈덜....." 요런 내용임.
이성보다 중요한 예절, 근본적으로 기사도를 중시한 프로이센의 귀족은 가망없는 상황에서도 정통성 없는 정권에는 반대했음. "실용적인 목적이 문제가 아니다."고 육군소장 헨닝 폰 트레스코브는 1944년 7월 20일에 히틀러 암살기도의 이유를 제시했음.
"전 세계와 역사의 앞에서 도이치 저항운동이 목숨을 걸고 결정적인 주사위를 던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에 비하면 다른 모든것들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
기사도....기사도가 전부다.
브레통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있다...!!!
기사도가 전부다!명예가 전부다! Gong-Lyong SEX
16명이 농부한태 뒤졌다고? 농부숫자가 얼마길래? - dc App
성난농부들이 장대넘기로 구덩이를 뛰어넘어서 말탄 기사들을 끌어내려 때려죽임.
농부한테뭔짓을했길래 얻어맞아죽냐? - dc App
나 기사인데
기계기사
개추
우리의 가슴속에...
크흙... 머독일 최후의 기사니뮤ㅠㅠ
디트마르라는데가 그 농민반란일어난곳아님?